최근 야구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야구 규칙은 초보 야구팬이 넘기에는 쉽지 않은 장벽이다. 물론 야구 규칙을 잘 몰라도 야구를 즐기는 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은 “야구 규칙은 아주 상식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어느 스포츠나 그렇지만 규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단의 결정체다. 그런데도 야구 규칙이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심판 재량의 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왜 심판의 자율성이 큰 것일까?
“야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항을 명문화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계가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규칙집이 아주 간단하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원주나 부기 등을 통해 이런 플레이가 있을 때는 어떻게 판정한다는 식으로 세분돼 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어느 쪽이나 심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같다.” 프로야구 최초로 2,000경기에 출장한 명판관 이규석 대한야구협회 경기이사의 얘기다.
사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각종 야구 규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때로는 새로운 규칙이 생기고 때로는 기존 규칙이 폐지되며 정리돼 온 것이다. 즉 야구 규칙은 역사적 산물이며 앞으로도 개정 또는 변경될 소지가 크다는 의미다. 조 심판위원장은 “(야구 규칙이) 개정 또는 변경되더라도 뜬공을 바로 잡으면 아웃 되고 원바운드로 잡으면 아웃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며 “가능한 수비와 공격이 균형을 갖추며 공정성을 보장하는 게 대전제”라고 강조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 경기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플레이마다 심판이 판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야구 규칙집이라는 ‘헌법’이 있지만 모든 플레이가 명시돼 있지는 않다. 심판의 재량권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기에 그만큼 판정하는 게 쉽지 않다. <사진: 야구라
야구 규칙의 흔적 기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동물에는 진화론의 근거가 되는 흔적 기관이 있다. 흔적 기관은 사람의 꼬리뼈와 같이 예전에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존재 의의가 없어서 퇴화한 기관을 말한다. 야구 규칙 역시 진화의 단계를 밟아왔기에 과거 야구의 흔적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3 스트라이크를 포수가 포구하지 못하면 타자는 주자가 돼 1루로 달려가는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다.
원래 야구가 처음 생겼을 때는 스트라이크와 볼 따위는 없었다. 타자가 투수의 공을 치고 달리는 경기였다. 또한 투수는 타자가 지정한 곳에 던지는 일을 하는, 배구로 보면 세터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가 1858년 최초의 야구 규칙인 ‘카트라이트 규칙’에서 처음으로 타자가 치지 않은 공도 스트라이크로 선고되고 스트라이크 3개를 기록한 타자는 아웃이 아니라 1루로 달려야만 했다. 마침내 1880년 “제3 스트라이크를 포수가 직접 포구하면 타자는 아웃이 된다.”는 규칙이 제정됐다. 이 말은 거꾸로 포수가 직접 포구하지 못한 제3스트라이크를 당한 타자는 주자가 되어 1루로 달리는 게 변함없다는 의미가 된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정이 생겨난 것이다.
이 규정과 관련해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정규의 포구’란 무엇일까? 야구 규칙 6.05 (b) [원주]에는 “정규의 포구란 공이 땅에 닿지 않고 포수의 미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공이 포수의 옷이나 용구에 끼인 것은 정규의 포구가 아니다. 또 심판원에게 맞고 튀어나온 공을 포수가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다.”고 기재되어 있다. 즉, 타자의 스윙 여부와 관계없이 제3 스트라이크를 직접 포구하지 못했을 때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 성립한다. 또 다른 조건은 없을까
2스트라이크에서 헛스윙하면 스트라이크아웃이 된다. 그러나 종종 스트라이크아웃된 타자가 1루를 향해 달리는 것을 볼 때도 있다. 게다가 삼진을 당한 타자가 1루에 나가는 황당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야구팬이 적지 않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정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진: kaychae.com>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은 “제3스트라이크를 포수가 직접 잡지 못했을 때는 일단 무사나 1사에서는 주자가 1루에 없어야 한다. 2사 때는 주자가 1루에 있든 없든 무조건 성립한다”고 밝혔다. 무사나 1사에 1루 주자가 있을 때 성립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병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무사나 1사에서도 이 규칙이 적용되면 1루 주자는 무조건 2루로 진루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포수가 고의적으로 포구하지 않고 포스 플레이를 통한 더블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 되면 타자주자가 1루에서 세이프가 되든 아웃이 되든 상관없이 삼진으로 기록되며 투수에게는 탈삼진이 추가된다. 동시에 와일드피칭이나 패스트볼이 기록된다. 만약 타자주자가 포수의 악송구로 1루에 출루했다면 와일드피칭이나 패스트볼이 아닌 포수에게 실책이 주어진다.
2사 이후에는 주자 유무와 관계없이 성립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투수가 기록할 수 있는 한 이닝 최다 탈삼진은 무한대가 된다. 이론은 이론, 현실은 현실인 법. 실제로 메이저리그와 한국 등에서 기록된 한 이닝 최다 탈삼진은 4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50여 차례가 나왔고 한국에서는 단 4번 기록됐다. 1998년 4월 13일 삼성의 호세 파라가 최초로 기록했으며 현대 김수경, 삼성 곽채진, LG 김민기가 한 이닝 4탈삼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2군에서 한 이닝 5탈삼진이 기록된 적이 있다.
1997년 8월 23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쌍방울의 경기는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 부른 희대의 해프닝으로 인구에 회자한다. 삼성이 4-1로 앞선 9회 초. 2사 1, 2루에서 쌍방울의 대타 장재중은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원바운드 볼에 헛스윙했고 김동앙 주심은 삼진을 알리며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삼성 포수 김영진은 공을 관중석에 던져 버렸다. 승리의 기쁨 반 팬 서비스 반.
그런데 쌍방울 벤치에서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상황이라고 알려 줬고 뒤늦게 장재중은 1루를 향해 달렸다. 삼성 벤치에서도 백인천 감독이 1루로 공을 던지라고 했지만 이미 공은 관중석에. 심판진은 4심 합의를 통해 삼진 선언을 번복하고 타자주자와 누상의 주자에게 2루씩 안전 진루권을 줬다. 결국 최태원의 동점 적시타 등이 터지며 쌍방울이 6-4로 역전승하며 공 하나로 승패가 뒤바뀌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자, 여기에서 심판이 타자주자와 주자에게 2루씩 안전하게 진루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근거는 무엇일까? 야구 규칙 7.05 (g) (1)에는 “송구가 관중석 또는 벤치에 들어갔을 경우” 타자주자를 포함해 모든 주자는 아웃 될 염려 없이 2개의 베이스를 진루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건 그렇고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과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어느 시점까지 타자가 주루를 시작해도 되느냐는 점이다.
2010년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계단을 포함해서) 더그아웃에 타자가 한 발이라도 들여놓기 전까지는 언제라도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인 것을 알고 1루를 향해 뛰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홈 플레이트 주위의 흙으로 덮인 원(Dirt Circle)을 벗어나 벤치 또는 자신의 수비 위치로 가려는 행위를 했다고 심판원이 판단하면 아웃을 선언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것은 타자가 삼진으로 처리되며 경기가 종료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늦게 1루로 달리며 경기 진행이 꼬이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변경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6년부터 규칙을 변경했으며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2007년에 개정됐다
올해부터 한국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정의 일부가 변경됐다. 타자가 홈플레이트 주변의 원을 벗어났을 때는 주루할 뜻이 없는 것으로 인정해서 아웃이 선언된다. <사진: 야구라>
공격 측을 보호하는 ‘인필드 플라이’
야구에서 타자가 친 뜬공을 야수가 노바운드로 잡으면 아웃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야수가 잡기도 전에 심판이 아웃을 선언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뜬공을 야수가 놓치더라도 아웃은 변하지 않는다. 인필드 플라이다. 야구 규칙 2.40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무사 또는 1사에 주자 1, 2루 또는 만루일 때 타자가 친 것이 플라이 볼(직선타구 또는 번트한 것이 떠올라 플라이 볼이 된 것은 제외)이 돼 내야수가 평범한 수비로 포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 포수는 물론 내야에 자리 잡은 외야수는 이 규칙의 취지에 따라 모두 내야수로 간주한다. (중략) 인필드 플라이가 선고되더라도 볼 인 플레이다. 따라서 주자는 플라이 볼이 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진루할 수 있고, 보통의 플라이 볼과 마찬가지로 리터치한 후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뛸 수도 있다. 그리고 타구가 파울 볼이 되면 다른 파울 볼과 같이 취급된다.”
볼 인 플레이(Ball in play)는 경기 중에 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거꾸로 플레이가 일시 중지된 상태를 볼 데드(Ball dead)라고 한다.
포스아웃 상황에서 주자는 상반된 두 가지 의무를 갖는다. 플라이 볼이 잡혔을 때는 이미 점유하고 있는 베이스를 리터치할 의무가 있으며, 플라이 볼이 노바운드로 잡히지 않았을 때는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의무가 생긴다. 예를 들어 주자 1, 2루에서 3루수가 내야 뜬공을 잡으면 누상의 주자는 베이스로 돌아가서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지를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3루수가 놓쳤을 때는 2루 주자는 3루로, 1루 주자는 2루로 나아가야 한다. 즉, 내야 뜬공은 주자에게 상반된 행동을 선택하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뜬공을 바로 잡았을 때 아웃.’ 누구나 알고 있는 야구 상식이다. 그러나 때로는 뜬공을 야수가 잡기 전에 아웃이 선언될 때도 있다. 인필드 플라이 상황이다. <사진: kaychae.com>
포스플레이(Force play)는 타자가 공을 쳐서 타자주자가 되면서 주자가 베이스의 점유권을 잃게 되면서 발생하는 플레이를 가리킨다. 주자 1루에서 타자가 땅볼을 쳐 타자주자가 되면서 1루 주자의 1루 점유권은 사라진다. 1루 주자는 무조건 2루를 향해 달려야 하며 주자와 타자주자보다 공을 가진 야수가 베이스를 밟으면 포스아웃(Force out)이 된다.
수비수는 주자의 행동에 따라 뜬공을 바로 포구하거나 일부러 원바운드로 잡아서 더블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다. 주자가 베이스를 리터치하면 원바운드로 잡으면 손쉽게 병살. 거꾸로 주자가 진루하면 바로 잡아서 포스 아웃을 시도하면 병살, 혹은 삼중살까지 가능하다. 공격 측이 아주 불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터. 그래서 1895년에 내야의 손쉬운 뜬공은 포구와 관계없이 아웃이 되는 인필드 플라이 규정이 제정됐다. 당시는 1사 만루와 1사 1, 2루만 이 규칙이 적용되었지만 1901년부터 무사(만루, 혹은 1, 2루)에도 확대 적용됐다.
앞서 본 야구 규칙(2.40)에는 배터리를 포함한 내야수만이 아니라 외야수도 내야수로 간주한다는 대목이 있다. 외야수가 내야수로 둔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규칙이 제정됐을 때는 내야수가 잡을 수 있는 타구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자 이 부분을 악용하는 이가 나타났다. 내야에 플라이 볼이 떴을 때 내야수들을 물러서게 하고 외야수가 재빨리 달려와서 원바운드로 처리하며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규칙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래서 외야수도 위치가 내야면 내야수로 간주하게 됐다.
내야에 뜬공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인필드 플라이가 선언되지 않는다. 주자의 유무와 어느 야수라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인필드 플라이는 수비 측의 고의적인 병살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기 때문이다. <사진: kaychae.com>
그런데 이 규정이 추가되면서 더 큰 논란이 일어났다. 바로 인필드 플라이가 선고되는 내야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점이다. 베이스라인의 흙까지를 내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흙 뒤의 잔디도 내야수의 수비 범위로 볼 것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야구는 투포환 등과 달리 심판의 눈과 귀로 판정하기에 인필드 플라이가 적용되는 범위는 심판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다면 내야에 뜬 플라이 볼은 불문곡직하고 인필드 플라이가 될까? 당연히 그렇지가 않다.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은 “이 규칙의 목적은 고의적인 더블 플레이를 방지하는 데 있다. 야수가 내야에서 편안하게 잡을 수 있는 뜬공이 기준이다”고 밝혔다. 즉, 누구라도 잡을 수 있는 내야 플라이 볼은 인필드 플라이가 선고되며 그 판단은 심판이 한다. 내야에 몇 m로 뜬공은 인필드 플라이라고 명확한 규정이 있으면 좋겠지만 야구에서는 불가능하다. 플라이 볼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줄자로 잴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010년 5월 12일 롯데와 SK의 사직경기에서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5회 말 1사 1, 2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친 공이 SK 투수 송은범의 머리 위를 낮게 넘어가서 땅에 떨어졌다. 공을 잡은 송은범은 3루에 던져서 2루 주자를 포스아웃시켰고 3루수 최정은 2루로 송구했지만 1루 주자 홍성흔의 발이 더 빨랐다. 아웃카운트만 하나 늘어난 2사 1, 2루라고 생각하는 순간 심판진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4심이 모여 합의한 결과 2사 2, 3루가 됐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미 이대호의 타구를 1루심이 인필드 플라이로 선언한 것이다. 이것을 몰랐던 2루 주자 손아섭과 1루 주자 홍성흔은 다음 베이스로 뛰었고 송은범이 그 타구를 바로 포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리터치의 의무와 포스아웃의 의무는 사라졌다. 즉, 인필드 플라이로 타자주자가 아웃됐기에 주자를 태그아웃 시켜야 한 것. 그러나 3루수 최정은 손아섭을 태그하지 않고 3루에서 포스아웃하고 2루로 던졌기 때문에 주자가 모두 세이프로 판정된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해 어느 심판위원은 “"타구가 애매했지만 인필드 플라이로 보기는 어렵다. 그냥 내야에 떴다고 인필드 플라이가 아니라 쉽게 잡을 수 있는 플라이 볼인데 1루심이 잘못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인필드 플라이를 선고할 권한은 주심을 비롯해 모든 심판이 동등하게 갖고 있고 한 사람이라도 선언하면 적용된다. 1루심의 선고로 인필드 플라이가 적용됐지만 주자들과 수비수는 물론이고 1루심을 제외한 심판들도 그 사실을 몰라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인필드 플라이 상태에서 태그하지 않은 최정에게는 실책이 주어졌다. 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최정에게 실책이 기록된 것일까?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은 “상황에 변화가 있으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주자 1, 2루가 2, 3루가 됐기 때문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해서 최정 선수는 억울하겠지만 실책으로 기록된 것이다”고 밝혔다.
번트와 라인 드라이브는 인필드 플라이가 적용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번트는 주자의 진루를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번트를 댈 때 이미 주자는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린다. 그런 상황에서 공중에 뜬 번트 타구를 바로 잡아서 더블 플레이를 시도하는 것은 수비 측의 정당한 권리로 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플라이 볼이 파울이 됐을 때는 어떻게 될까?
“파울 라인 근처에 공이 떴을 때 심판은 ‘인필드 플라이 이프 페어’를 선언한다. 페어이면 인필드 플라이가 되고 파울은 그대로 파울이다. 파울이 되면 타자주자가 아웃 되지 않는다.” 이규석 대한야구협회 기술이사의 설명이다.
고의낙구와 베이스 점유권
인필드 플라이와 혼동하기 쉬운 게 고의낙구다. 고의낙구는 타자가 친 공을 내야수가 의도적으로 떨어뜨렸을 때 적용되는 규칙이다. 야구 규칙 6.05 (l)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사 또는 1사에 주자 1루, 1·2루, 1·3루, 또는 1·2·3루일 때 내야수가 페어의 플라이 볼 또는 라인 드라이브를 고의로 떨어뜨렸을 경우 이때는 볼 데드가 되어 주자는 원래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한다.”
알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이 멍한 설명이다. 조종규 위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내야에 뜬 타구를, 플라이 볼만이 아니라 라인 드라이브와 번트 등도 포함해서, 보통의 수비라면 손쉽게 잡을 수 있다고 심판이 판단했지만 수비수가 글러브나 손으로 고의로 떨어뜨렸을 때 적용한다.” 즉, 고의낙구는 인필드 플라이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누상의 주자도 그렇고 번트나 라인 드라이브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기록위원이 안타와 실책을 판가름할 때도 등장하는 ‘보통의 수비’는 리그와 각 수비 위치에서 평균적인 기량을 가진 야수의 플레이를 의미하며 날씨나 그라운드 상태 등도 고려해서 판단한다
고의낙구에서 중요한 것은 공이 야수의 글러브나 손에 맞고 떨어졌느냐이다. 단, 인필드 플라이가 선고됐을 때는 인필드 플라이 규정이 우선한다. <사진: kaychae.com>
고의낙구가 선언되면 타자주자는 아웃이 되고 볼 데드가 된다. 누상의 주자는 이미 점유하고 있던 베이스로 안전하게 돌아가고 진루할 수 없다. 인필드 플라이와 마찬가지로 심판 중 한 사람이라도 선언하면 적용된다. “수비수가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기준 역시 심판의 판단에 따른다. 조 위원장은 “고의낙구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타구가 글러브나 손에 맞고 땅에 떨어졌느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같은 타구라도 글러브에 맞고 땅에 떨어진 타구는 고의낙구가 되지만 글러브 등의 방해 없이 땅에 떨어진 것은 고의낙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은 7회 말 무사 1루의 기회를 맞았다. 당연히 후속 타자 김태룡은 주자를 2루로 보내기 위한 희생번트를 댔다. 그런데 번트를 댄 타구가 내야에 떠올랐다. 낙하 지점에서 미리 기다리던 해태 투수 선동열은 1루 주자 김성현이 뛰지 않은 것을 보고 땅에 떨어진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해 병살 처리했다. 삼성 벤치에서는 고의낙구라고 항의했지만 선동열이 글러브 등에 맞지 않고 땅에 떨어진 공을 처리했기에 야구 규칙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선동열이 글러브로 타구를 떨어뜨렸다면 고의낙구가 되어 1루 주자는 아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선동열의 송구를 받은 1루수 김성한의 플레이에 따라 병살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무슨 말일까. 1루 주자 김성현은 2루로 가지 않고 1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공을 받은 김성한이 취한 행동의 순서에 따라 더블 플레이의 성립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김성한이 먼저 베이스를 밟고 나서 1루 주자를 태그 했다면 타자주자만 아웃이 된다. 김성한이 1루 베이스를 밟은 것은 타자주자를 먼저 아웃 시킨 것을 의미한다. 타자주자가 아웃이 됐기에 1루 주자는 2루로 진루할 의무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1루 주자가 베이스를 밟고 있다면 태그를 해봤자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기’일 뿐이다. 거꾸로 1루수가 주자를 먼저 태그하고 베이스를 밟으면 타자주자도 1루 주자도 아웃이 된다.
그렇다면 같은 베이스에 두 명 이상의 주자가 옹기종기 모여 반상회를 열면 어떻게 될까?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베이스에 3명의 주자가 대면한 아주 진귀한 장면이 있었다. 1926년 8월 15일 에베츠필드에서 있었던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다저스는 6회 말 무사 만루의 득점 기회를 잡았다. 신예 베이브 허만은 우측 펜스를 때리며 홈팬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느림보 2루 주자 대지 밴스는 3루를 돌아 홈을 향하다가 도중에 귀루했다. 그러나 3루에는 이미 1루 주자 척 퓨스터가 도착한 상황. 게다가 앞만 보고 달리던 타자주자 허만도 2루를 돌아 3루를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결국 3루에서 삼자대면을 하게 된 것. 브레이브스 3루수 앤디 하이는 3명의 주자를 차례로 태그했고 심판은 1루 주자와 타자주자를 아웃으로 판정했다. 야구 규칙 7.03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두 주자가 동시에 같은 베이스를 차지할 수는 없다. 인 플레이 중에 두 주자가 같은 베이스에 닿고 있으면 그 베이스를 차지할 권리는 앞 주자에게 있으며 뒷 주자는 태그 당하면 아웃 된다.”
흔히들 야구를 육체 능력을 다투는 스포츠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뇌’는 필요하다. ‘야구 IQ’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