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의 금슬이 저 꽃만 하랴--자귀나무꽃
저녁 잔 바람이 불어와 자귀나무꽃 /물위에 떠다니던 살얼음 한 조각
투명한 달을 향해 눈 사래를 친다
길 아래 도랑에는 모기들이 들끓는다 /모기들은 모기만 한 소리로 울고불고 /별들은 차 추돌한 아스팔트 바닥 /잘게 부서진 유리 알갱이 흩어져 빛난다
뼛속에는 구멍이 있어 /뼛속의 구멍은 /별까지 가는 외길이고 /나와 별 사이의 외길이고
상사병은 더 이상 번지지 않는다/달에서는 휴화산 분화구가 사라지지 않는다
상여들은 자귀나무 가지 위에 올라타고 /어딘가로 떠나간다
- 이윤학 시인의 <자귀나무>
소설가 이만교가 쓴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아직은 우리사회와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인 준영은 소개팅에서 조명 디자이너 윤희를 만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윤희는 의사를 만나 결혼을 시작한다. 결혼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은 연희는 준영 앞에 나타나 옥탑방에서 알콩달콩 살림을 차리다가 파국을 맞고 또 다시 준영을 찾아와 옥탑방 살림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무의미한 결혼생활로 삶은 즉흥적이 되고 마음이 변하면 다시 짐을 꾸리는 반복적인 생활이 계속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혼율이 심각한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갈라서는 젊은 부부들, 그렇게 된 이면에는 사랑보다는 개인관의 사소한 일이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이 나의 일이 되고 훗날 내 자녀의 일이 된다고 할 때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찌근찌근 골치가 아파온다. 이럴 때는 대전시청 분수공원에서 하늘거리는 자귀나무꽃을 감상하고 온다. 마친 꽃들이 우후죽순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날이라 자귀나무도 온통 노을빛 같은 꽃구름을 물고 있다.
노곤한 잠에 빠진 듯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 그래서 자귀나무꽃을 '잠자는 귀신꽃'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눈앞에는 녹음뿐인데 그 자리에 연분홍 꽃이 조용히 꽃구름으로 변해 몽실거리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속도 온통 연분홍 꽃물로 출렁거린다.
그 꽃구름 위에 올라 한 세월을 보낸다면 이것만큼 달콤한 삶도 없으리라. 공작의 깃털 같은 빗살무늬 꽃술을 활짝 펴들고 바람결 따라 하늘거리는 꽃에 눈길을 주고 있으려니 자꾸만 부부간의 애정문제가 떠오른다.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요즘, 부부간의 성격차이건, 가난 때문이건, 자녀 양육문제로 인한 갈등이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혼에 끝내는 파국을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혼시절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모자랄 것처럼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남남으로 쪼개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부부가 뭔지 삶이 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부부라면 사랑과 정으로서 뭉쳐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아도 헤어지는 꼴을 보면 부부사이는 어찌 보면 일회성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자식 때문에 그저 억지로 참고 산다는 부부도 많다. 농담이건 진담이건 자식 때문에 맹목적으로 살다보니 부부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런 가정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부간에 돈독히 정을 이어주는 신비의 명약이라도 있다면 그것에 기대를 해 봄직도 하다만은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이 자귀나무꽃은 보고만 있어도 부부간의 사랑이 굼실굼실 피어오를 것만 같다. 왜냐하면 자귀나무꽃은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꽃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에 '우고'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부인 조씨와 살았다. 부인은 단오가 돌아오면 자귀나무꽃을 똑똑 따서 햇볕에 말린 후 베개 속에 넣어 두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우울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부인은 그 꽃잎으로 술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는데 그 술을 마신 남편은 전보다 더욱 더 명랑해졌다고 한다.
자귀나무 잎들이 밤에 자는 모습을 보면 더욱 더 그것을 실감한다. 마주보고 있는 잎과 잎이 서로 딱 붙어 잠자는 모습은 부부가 한 이불 속에서 서로 꼭 껴안고 잠든 모습과 흡사하다. 그래서 자귀나무를 합환목, 홥환수, 야합수, 유정수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귀나무도 이처럼 감칠맛 나는 사랑을 하는데 툭하면 헤어지는 부부들을 보면 너무나 서글프지 않던가. 부부간에 파경을 맞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라. 꽃구름이 몽실거리는 자귀나무 아래에 앉아 다시 한번 옛날의 추억으로 돌아가 보자. 혹시 아는가. 자귀나무 아래를 거닐며 옛날의 추억에 잠겨보면 사랑과 정이 꿈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