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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곡산골에 꽃사태 났네
유진택추천 0조회 023.05.30 17:52댓글 0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5월을 향해 달리는데도 봄꽃들의 행렬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꽃샘추위에 시달리며 피어난 꽃들은 벌써 지고 그 뒤로는 다른 꽃들이 온 산자락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마치 마라톤을 하며 바톤을 이어받듯이 반복되는 꽃들의 행렬에 숨이 막힌다.
그 중에서도 무더기로 피어나던 벚꽃은 이제 서서히 제 흔적을 지우고 있는 중이다. 4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축제장에 내몰린 벚꽃들이 얼마나 행락객과 상인들의 행렬에 시달렸으면 미련 없이 꽃잎들을 떨어낼까. 꽃눈처럼 분분히 흩날리는 꽃들을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말이 벚꽃을 위한 행사지 순전히 사람들만의 볼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에 벚꽃인들 불만인들 없을까.
신안사의 왕벚꽃 나무,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그러나 충남 금산 쪽에 가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산 중에서도 군북면 산안리 깊은 보곡산골에서 피어나는 벚꽃을 보면 아직도 생기가 흘러넘친다. 벚나무를 뒤덮으며 탱글탱글 맺힌 꽃망울을 보면 보곡산골의 벚꽃 소문이 왜 산 아래 멀리까지 떠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신안사 경내의 왕벚나무
소문 그대로 차가 길곡리와 산안리를 지나 신안사에 닿으면 벚꽃이 절정에 다다른다. 제원면 신암산 국사봉 자락을 품고 있는 신안사는 이름 그대로 “심신이 편안한 절”이다.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는 소박한 절은 돌 축대를 배경으로 경내에 우람한 왕벚나무 한그루가 가지가 찢어질 듯 솟아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히 꽃들을 무더기로 흔드는 것을 보면 마치 꽃대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탐스러운 왕벚꽃에 반해 극락전과 대광전의 부처님들도 문을 활짝 열고 꽃 삼매경에 빠져있다. 불가의 스님들은 절에 피는 벚꽃을 보고 '피안앵’(彼岸櫻이라고 불렀다. 고단한 현실의 강 저쪽에 존재한다는 안락한 고향, 즉 극락을 생각하게 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희디흰 벚꽃을 보고 있으면 극락에 온 것처럼 저절로 마음이 편한 해진다는 것일까.
신안사의 돌탑이 이채롭다
임도 옆 산자락에 벚나무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한참을 서성거려도 스님들의 그림자는 종적 없고 대신 사진 마니아 몇 명이 한 짐이나 되는 카메라를 들고 왕벚나무에 렌즈를 맞추고 있다. 벚꽃 그늘 아래서 일행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더니 빨리 나오라고 손짓이다. 여기서는 사람도 렌즈 속에 들어가면 옥에 티가 되는 모양이다.
벚꽃에 취한 눈길이 신안사 경내를 돌아본다. 막고사의 말사인 신안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진덕여왕 5년에( 651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1400년의 역사를 이어오다가 한국동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극락전과 대광전만 남은 아담한 절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3000여명의 승려가 기거하였을 정도로 대찰이었다고 하니 굽이쳐 흐르며 역사를 만들고 지우는 세월의 거센 풍랑을 물리칠 수 없다. 신안사란 이름은 경순왕 때 지어졌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에서 수확할 때 가끔 이절에서 쉬었는데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고 해서 신안사라 지었다고 한다.
신안사 옆 산자락이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있다
꽃속에 묻힌 외딴집
신안사 주변 산자락도 탐스러운 산벚꽃들이 꽃물을 쏟아내고 있다. 산자락을 전세 낸 듯 맹렬히 타오르는 산벚의 행렬들 속에는 드문드문 조팝나무 군락들도 눈에 띈다. 근처에는 화원골이 있다. 예부터 꽃이 많이 피어 꽃동산으로 변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에서 열리는 조팝나무꽃 축제를 보지 못했다.
벚꽃으로 뒤덮인 보곡산골, 꽃 속에 풍덩 빠지고 싶어라
신안사를 휘돌아 오르는 비포장도로를 넘어가면 산벚꽃이 일색인 보곡산골이다.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보곡산골은 지금 한창 산벚꽃 축제에 들떠있다.
국내 최대의 자생 산벚나무 군락지답게 200만평에 이르는 산자락이 온통 눈부신 벚꽂에 휩싸여 있다. 산 아래 도로마다 인공으로 심은 벚나무와는 달리 자생으로 자란 산벚나무는 꽃빛깔이 티 없이 맑고 순백하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청초한 산처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산 아래보다 기온이 몇 도 정도 낮아 아직도 벚꽃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벚나무
왕성한 벚꽃에 뒤질세라 사람들도 북적인다. 천막아래서 막걸리와 지짐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제 몸보다 큰 카메라를 둘러매고 있다. 그만큼 이 보곡산골은 산벚꽃에 심취한 사진마니아들을 불러 모을 정도로 200만평이 이르는 산자락이 연한 파스텔화로 점점이 수놓아져 있다.
산안리를 가쳐 자진뱅이, 상곡리를 잇는 장장 9킬로의 벚꽃길은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진달래를 보면“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오고 조팝나무꽃 행렬을 보면 마침 허기진 배에서 끄르락 소리가 난다. 멀리서 보면 조팝나무꽃은 영락없는 쌀밥이다. 휘늘어진 가지에 무더기로 밥알이 달라붙어 바람결만 스쳐도 낭창낭창 허리를 꺾는다. 수술 밥이 조를 닮아 조팝나무란 이름이 붙었다지만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쌀밥이 풍성하게 가지를 휘감은 것처럼 보인다.
산벚으로 덮인 보곡산골
상곡리의 담배건조실
그 옛날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산야에 무리지어 핀 꽃나무에까지 밥을 연관 지었을까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임도 아래로 아련히 펼쳐지는 산자락은 군데군데 꽃방석을 펼쳐 놓은 듯한 풍경이다. 연록색 숲을 지우며 한없이 번져만 가는 벚꽃 행렬이 숨쉬기도 벅찰 지경이다. 가도 가도 벚꽃 길이다. 세찬 바람결에 놀라 휘늘어진 가지를 흔들며 꽃잎들이 분분히 흩날린다.
벚꽃이 지고나면 이 보곡산골은 얼마나 허전할까. 그러나 아쉬워하기는 이르다. 벚꽃이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서로 어울려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산딸나무꽃과 병꽃나무, 국수나무, 자귀나무꽃이 마라톤을 하며 바톤을 이어받듯 겨울 한철을 빼고는 늘 꽃으로 뒤덮여 있다.
임도 9길로의 구간을 느릿느릿 걷다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처음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니 “봄처녀 정자”, “보이네요 정자” 가 다시 일행을 맞는다. 촌스럽지만 부르기에 멋스러운 이름들이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즉석에서 떠올린 이름을 현판으로 내건 정자는 꽃 세상에 어울릴 정도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밪나무 단지 아래로 굽이치는 오솔길
오솔길을 걷는 회원들
점심 먹을 자리를 찾다가 벚꽃 축제장에 쳐놓은 천막을 공짜로 얻어 점심 식사를 풀어놓는다. 주인에게 미안해서 덤으로 막걸리와 인삼 볶음도 시켰다. 긴 탁자와 의자가 구비되어 있어 명당을 잡았는가 싶었는데 차고 맵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 느닷없이 등허리를 후려갈긴다. 깊은 산골이라 바람 줄기 세차다.
상곡리에서 느껴보는 향수, 그 옛날 내 고향을 닮았네
자진뱅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산벚나무가 희디흰 손을 흔드는 황톳길이다. 자진뱅이는 자잘자잘한 논이 많다는 뜻이다. 지형이 산골이다 보니 손바닥만 논들이 고만고만하게 허리를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황톳길이라 차는 덜컹덜컹 요동을 친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달렸는데도 끝내 자진뱅이를 찾지 못했다. 길을 잘못 들은 탓이다.
대신 낡고 쇠락한 마을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도랑을 경계로 한쪽은 집 몇 채와 담배건조실 두어 개가 붙어있고 한쪽은 뿌리를 통채로 드러낸 느티나무들이 연두빛 새순을 틔우며 마을에 생기를 불어놓고 있다. 일행이 발자국 소리를 내자 느티나무에 묶인 개들이 무리를 지어 핏대를 세우며 짖어댄다. 몇 채 남은 집은 하나같이 따스한 기운조차 없다. 마당에는 시퍼렇게 자란 풀들이 길길이 날뛰고 무너진 흙담 옆으로는 녹슨 농기구들이 햇살에 뒹굴고 있다.
낡고 쇠락한 마을에도 산뜻하게 지은 집이 있다
상곡리의 담배건조실, 빈한했던 그 시절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농현상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시골을 황폐하게 만드는가. 계절 따라 꽃들이 피었다지고 쑥꾹새가 구성지게 우는 마을을 벗어나 문명의 정글에서 신음하면서 살아가니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사람들은 웰빙을 찾는다고 풍광 좋은 산천을 찾아 나서지만 이런 마을에서 살아 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얼마나 이중적인가. 동네 사람이 없어 마을 이름조차 알 수 없어 스마트 폰으로 추적을 해보니 상곡리라는 마을이다.
이제 상곡리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등지거나 외지로 떠나면 이 마을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갈수록 보기 흉한 폐가만 들어서고 목사리에 묶인 개들만 짖어대도 봄이 오면 보곡산골에는 산벚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겠지, 벚꽃이 지면 철 따라 온갖 꽃들이 바톤을 이어받으며 보곡산골을 화사한 꽃동산으로 수놓겠지, 산 아래 길거리의 벚꽃들은 문명의 냄새에 찌들어 하염없이 꽃눈을 흩날리는데 보곡산골의 산벚꽃은 산자락을 뒤덮은 구름처럼 아직도 희디흰 꽃물을 흘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그 중에서도 무더기로 피어나던 벚꽃은 이제 서서히 제 흔적을 지우고 있는 중이다. 4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축제장에 내몰린 벚꽃들이 얼마나 행락객과 상인들의 행렬에 시달렸으면 미련 없이 꽃잎들을 떨어낼까. 꽃눈처럼 분분히 흩날리는 꽃들을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말이 벚꽃을 위한 행사지 순전히 사람들만의 볼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에 벚꽃인들 불만인들 없을까.
신안사의 왕벚꽃 나무,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그러나 충남 금산 쪽에 가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산 중에서도 군북면 산안리 깊은 보곡산골에서 피어나는 벚꽃을 보면 아직도 생기가 흘러넘친다. 벚나무를 뒤덮으며 탱글탱글 맺힌 꽃망울을 보면 보곡산골의 벚꽃 소문이 왜 산 아래 멀리까지 떠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신안사 경내의 왕벚나무
소문 그대로 차가 길곡리와 산안리를 지나 신안사에 닿으면 벚꽃이 절정에 다다른다. 제원면 신암산 국사봉 자락을 품고 있는 신안사는 이름 그대로 “심신이 편안한 절”이다.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는 소박한 절은 돌 축대를 배경으로 경내에 우람한 왕벚나무 한그루가 가지가 찢어질 듯 솟아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히 꽃들을 무더기로 흔드는 것을 보면 마치 꽃대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탐스러운 왕벚꽃에 반해 극락전과 대광전의 부처님들도 문을 활짝 열고 꽃 삼매경에 빠져있다. 불가의 스님들은 절에 피는 벚꽃을 보고 '피안앵’(彼岸櫻이라고 불렀다. 고단한 현실의 강 저쪽에 존재한다는 안락한 고향, 즉 극락을 생각하게 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희디흰 벚꽃을 보고 있으면 극락에 온 것처럼 저절로 마음이 편한 해진다는 것일까.
신안사의 돌탑이 이채롭다
임도 옆 산자락에 벚나무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한참을 서성거려도 스님들의 그림자는 종적 없고 대신 사진 마니아 몇 명이 한 짐이나 되는 카메라를 들고 왕벚나무에 렌즈를 맞추고 있다. 벚꽃 그늘 아래서 일행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더니 빨리 나오라고 손짓이다. 여기서는 사람도 렌즈 속에 들어가면 옥에 티가 되는 모양이다.
벚꽃에 취한 눈길이 신안사 경내를 돌아본다. 막고사의 말사인 신안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진덕여왕 5년에( 651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1400년의 역사를 이어오다가 한국동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극락전과 대광전만 남은 아담한 절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3000여명의 승려가 기거하였을 정도로 대찰이었다고 하니 굽이쳐 흐르며 역사를 만들고 지우는 세월의 거센 풍랑을 물리칠 수 없다. 신안사란 이름은 경순왕 때 지어졌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에서 수확할 때 가끔 이절에서 쉬었는데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고 해서 신안사라 지었다고 한다.
신안사 옆 산자락이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있다
꽃속에 묻힌 외딴집
신안사 주변 산자락도 탐스러운 산벚꽃들이 꽃물을 쏟아내고 있다. 산자락을 전세 낸 듯 맹렬히 타오르는 산벚의 행렬들 속에는 드문드문 조팝나무 군락들도 눈에 띈다. 근처에는 화원골이 있다. 예부터 꽃이 많이 피어 꽃동산으로 변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에서 열리는 조팝나무꽃 축제를 보지 못했다.
벚꽃으로 뒤덮인 보곡산골, 꽃 속에 풍덩 빠지고 싶어라
신안사를 휘돌아 오르는 비포장도로를 넘어가면 산벚꽃이 일색인 보곡산골이다.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보곡산골은 지금 한창 산벚꽃 축제에 들떠있다.
국내 최대의 자생 산벚나무 군락지답게 200만평에 이르는 산자락이 온통 눈부신 벚꽂에 휩싸여 있다. 산 아래 도로마다 인공으로 심은 벚나무와는 달리 자생으로 자란 산벚나무는 꽃빛깔이 티 없이 맑고 순백하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청초한 산처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산 아래보다 기온이 몇 도 정도 낮아 아직도 벚꽃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벚나무
왕성한 벚꽃에 뒤질세라 사람들도 북적인다. 천막아래서 막걸리와 지짐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제 몸보다 큰 카메라를 둘러매고 있다. 그만큼 이 보곡산골은 산벚꽃에 심취한 사진마니아들을 불러 모을 정도로 200만평이 이르는 산자락이 연한 파스텔화로 점점이 수놓아져 있다.
산안리를 가쳐 자진뱅이, 상곡리를 잇는 장장 9킬로의 벚꽃길은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진달래를 보면“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오고 조팝나무꽃 행렬을 보면 마침 허기진 배에서 끄르락 소리가 난다. 멀리서 보면 조팝나무꽃은 영락없는 쌀밥이다. 휘늘어진 가지에 무더기로 밥알이 달라붙어 바람결만 스쳐도 낭창낭창 허리를 꺾는다. 수술 밥이 조를 닮아 조팝나무란 이름이 붙었다지만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쌀밥이 풍성하게 가지를 휘감은 것처럼 보인다.
산벚으로 덮인 보곡산골
상곡리의 담배건조실
그 옛날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산야에 무리지어 핀 꽃나무에까지 밥을 연관 지었을까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임도 아래로 아련히 펼쳐지는 산자락은 군데군데 꽃방석을 펼쳐 놓은 듯한 풍경이다. 연록색 숲을 지우며 한없이 번져만 가는 벚꽃 행렬이 숨쉬기도 벅찰 지경이다. 가도 가도 벚꽃 길이다. 세찬 바람결에 놀라 휘늘어진 가지를 흔들며 꽃잎들이 분분히 흩날린다.
벚꽃이 지고나면 이 보곡산골은 얼마나 허전할까. 그러나 아쉬워하기는 이르다. 벚꽃이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서로 어울려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산딸나무꽃과 병꽃나무, 국수나무, 자귀나무꽃이 마라톤을 하며 바톤을 이어받듯 겨울 한철을 빼고는 늘 꽃으로 뒤덮여 있다.
임도 9길로의 구간을 느릿느릿 걷다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처음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니 “봄처녀 정자”, “보이네요 정자” 가 다시 일행을 맞는다. 촌스럽지만 부르기에 멋스러운 이름들이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즉석에서 떠올린 이름을 현판으로 내건 정자는 꽃 세상에 어울릴 정도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밪나무 단지 아래로 굽이치는 오솔길
오솔길을 걷는 회원들
점심 먹을 자리를 찾다가 벚꽃 축제장에 쳐놓은 천막을 공짜로 얻어 점심 식사를 풀어놓는다. 주인에게 미안해서 덤으로 막걸리와 인삼 볶음도 시켰다. 긴 탁자와 의자가 구비되어 있어 명당을 잡았는가 싶었는데 차고 맵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 느닷없이 등허리를 후려갈긴다. 깊은 산골이라 바람 줄기 세차다.
상곡리에서 느껴보는 향수, 그 옛날 내 고향을 닮았네
자진뱅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산벚나무가 희디흰 손을 흔드는 황톳길이다. 자진뱅이는 자잘자잘한 논이 많다는 뜻이다. 지형이 산골이다 보니 손바닥만 논들이 고만고만하게 허리를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황톳길이라 차는 덜컹덜컹 요동을 친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달렸는데도 끝내 자진뱅이를 찾지 못했다. 길을 잘못 들은 탓이다.
대신 낡고 쇠락한 마을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도랑을 경계로 한쪽은 집 몇 채와 담배건조실 두어 개가 붙어있고 한쪽은 뿌리를 통채로 드러낸 느티나무들이 연두빛 새순을 틔우며 마을에 생기를 불어놓고 있다. 일행이 발자국 소리를 내자 느티나무에 묶인 개들이 무리를 지어 핏대를 세우며 짖어댄다. 몇 채 남은 집은 하나같이 따스한 기운조차 없다. 마당에는 시퍼렇게 자란 풀들이 길길이 날뛰고 무너진 흙담 옆으로는 녹슨 농기구들이 햇살에 뒹굴고 있다.
낡고 쇠락한 마을에도 산뜻하게 지은 집이 있다
상곡리의 담배건조실, 빈한했던 그 시절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농현상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시골을 황폐하게 만드는가. 계절 따라 꽃들이 피었다지고 쑥꾹새가 구성지게 우는 마을을 벗어나 문명의 정글에서 신음하면서 살아가니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사람들은 웰빙을 찾는다고 풍광 좋은 산천을 찾아 나서지만 이런 마을에서 살아 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얼마나 이중적인가. 동네 사람이 없어 마을 이름조차 알 수 없어 스마트 폰으로 추적을 해보니 상곡리라는 마을이다.
이제 상곡리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등지거나 외지로 떠나면 이 마을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갈수록 보기 흉한 폐가만 들어서고 목사리에 묶인 개들만 짖어대도 봄이 오면 보곡산골에는 산벚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겠지, 벚꽃이 지면 철 따라 온갖 꽃들이 바톤을 이어받으며 보곡산골을 화사한 꽃동산으로 수놓겠지, 산 아래 길거리의 벚꽃들은 문명의 냄새에 찌들어 하염없이 꽃눈을 흩날리는데 보곡산골의 산벚꽃은 산자락을 뒤덮은 구름처럼 아직도 희디흰 꽃물을 흘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