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해서 남해 경계에 이르렀다.
이순신이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힘써 싸우다가 날아오는 탄환에 가슴을 맞았다.
좌우에서 부축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순신이 말하였다.
“전투가 한창 급하니 삼가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마라.”
말을 마치고 운명했다.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들려줄께요.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났어요.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던 전쟁이 있었어요.
이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이 쳐들어오는 것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와 사람들을 죽이고 집도 불 태우고 물건도 빼앗았어요.
갑자기 쳐들어온 일본 병사를 막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당했어요.
나라를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이러한 사람들을 의병(義兵)이라고 불러요.
의병들은 힘을 다해 일본 군사들을 무찔렀어요.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 군사들을 물리쳤어요.
칠 년 동안의 긴 전쟁을 치르면서 일본 군사들은 힘이 없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도망치려고 했어요.
이순신 장군은 1598년 11월 19일에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량진이라는 바다에 모인 500여 척의 배에 맞서 싸우게 되었어요.
이순신 장군은 화살과 총알이 쏟아지는 배 위에서 군사들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하며 명령했어요.
이순신 장군은 이 싸움에서 크게 이겼지만 일본 군사가 쏜 총알을 맞게 되었어요.
곁에 있던 장군들이 이순신 장군을 천막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어요.
이순신 장군은 총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다음처럼 말했어요.
“싸움이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마오.”
이 말을 남기고 이순신 장군은 두 눈을 감았어요.
이순신 장군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맞아요.
장군이 죽었다고 하면 군사들이 힘을 잃어 일본 군사들에게 질까봐 그렇게 했던 것이에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나라를 구한 분이에요.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생각하며 고맙게 생각해야 해요.
追至南海界. 舜臣, 親犯矢石力戰, 有飛丸中其胸. 左右, 扶入帳中, 舜臣曰 : 戰方急, 愼勿言我死, 言訖而終.
출처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李舜臣, 1545-1598)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명장(名將)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유고(遺稿) 전집(全集)이다. 정조(正祖) 19년(1795), 교서관(校書館) 검서(檢書) 유득공(柳得恭)의 감독(監督) 하(下)에 편집(編輯), 간행(刊行)되었다. 이순신(李舜臣)의 전집(全集)으로, 윤행임(尹行恁)이 왕명(王命)으로 편집(編輯)했다. 시문(詩文) 외(外)에 『난중일기(亂中日記)』등이 실려 있다.
이순신(李舜臣)은 조선 중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한성 출신이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만포첨사, 진도군수, 전라좌도수군절도사 등을 거쳐 관직은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뒤 선무공신 1등관에 추록되고 증 의정부우의정에 추증되고 덕풍군에 추봉되었다가, 광해군 때 다시 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고, 정조 때에는 증 의정부영의정으로 가증(加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