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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부경 하나부터 열까지" (이현숙 지음)에서 발췌 |
천부경(天符經) 해설
천부경(天符經)은 환국(桓國) 시대에 처음으로 녹도문(鹿圖文) 16자로 기록되었다. 이후 녹도문 16자로는 천부경(天符經)의 참뜻을 전달하기에 어려워 전자(篆字) 81자로 해석을 해 놓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전자(篆字)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라시대에 이르러 고운(孤雲) 최치원이 전자(篆字)로 쓰여진 천부경(天符經)을 당시의 한자로 옮겨 적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 어떤 이는 최치원이 녹도문(鹿圖文)으로 쓰여진 16자의 천부경(天符經)을 보고 현재 81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을 작성하였다고 믿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녹도문(鹿圖文) 천부경(天符經) 속에 숨어있는 참뜻을 모르면 그 내용을 알 수 없어 그렇게 명쾌한 해석을 할 수 없다. 더구나 신라시대에만 해도 우리 민족의 천부경(天符經) 사상이 퇴색되어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지원은 당대의 명문장가이기는 하나 사상은 기본적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스스로 유학자로 자처하였다. 동양의 모든 사상이 천부경에서 유래하지만 이들은 모두 천부경의 단편만을 받아들인 것이며, 그 또한 왜곡된 내용이다. 기록으로 남겨진 최치원의 일생을 미루어 볼 때도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우리의 한사상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천부경의 내용은 최치원이 한자로 적어 전하는 것이며, 원래 세로로 쓰인 것을 보기 쉽게 가로로 옮겨 쓴 것이다. 이 외에도 다수의 천부경들이 전해지나 자형(字形)만 다를 뿐 큰 뜻은 대동소이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여 해석한다.
천부경의 전체 문장을 보고 나서 시작한다.
天符經(천부경)
一 始 無 始 一 析 三 極 無 (일 시 무 시 일 석 삼 극 무)
盡 本 天 一 一 地 一 二 人 (진 본 천 일 일 지 일 이 인)
一 三 一 積 十 鉅 無 櫃 化 (일 삼 일 적 십 거 무 궤 화)
三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삼 천 이 삼 지 이 삼 인 이)
三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삼 대 삼 합 육 생 칠 팔 구)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운 삼 사 성 환 오 칠 일 묘)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연 만 왕 만 래 용 변 부 동)
本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본 본 심 본 태 양 앙 명 인)
中 天 地 一 一 終 無 終 一 (중 천 지 일 일 종 무 종 일)
1. 우주의 본질(本質) - 하나, 둘, 셋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천부경은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으로 시작한다. 이것을 一始無始(일시무시)에서 끊어서 ‘일(一)의 시작은 시작이 없는 것이다’라고 해도 되지만 마지막 구절인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과 짝(대구[對句])을 이루고 있으므로 보통 一始無始一로 끊어 읽는데 의미에는 변함이 없다.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은 ‘일(一)의 시작은 시작됨이 없는 일(一)이다’라는 뜻이다. 마지막 구절인 一終無終一은 ‘일(一)의 끝남은 끝이 없는 일(一)이다’라는 뜻이다. 一始無始一과 一終無終一을 연결해서 보면 ‘일(一)은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一)은 ‘한 일(一)’자로 ‘한’을 뜻한다. 즉, ‘한’은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자의 ‘한 일(一)’은 원래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우리말 하나는 ‘한’과 ‘나’가 합쳐진 것이며, 천부경의 맨 첫 글자 일(一)은 그 중에서도 ‘한’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말 ‘한’은 밝고 크며, 높고 넓은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 세상, 현 우주의 삼라만상이 존재하게 하는 힘 내지는 섭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우주의 본질 내지는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우주의 만물을 만들고 다스리는 조물주 내지는 하느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한’은 그러한 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천부경은 실존 철학으로 무(無, 없음)의 철학이 아니라 유(有, 있음)의 철학이다. 천부경은 세상에 만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 그 결과로 생겨난 만물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다. 태초에 신이 있어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생기고 하여 세상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과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며, 이 세상은 모두가 필연적으로 이렇게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 따른 결과물이 현세(現世)라는 것이다.
천부경의 첫 글자인 일(一)은 ‘한’을 뜻하며, ‘한’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우주가 생겨나게 되는 ‘씨앗’이라 할 수 있다. ‘한’에서 비롯하여 우주가 형성되고, 하늘과 땅이 생겨나며, 식물과 동물이 번성하게 되며, 사람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은 개념적으로는 상상이 되지만 무어라 꼭 집어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천부경의 첫 글자인 일(一)은 ‘한’을 가리키므로 ‘한’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의 첫머리에서 도(道)를 언급한 내용과 동일하다.
잠시 예를 들어 보면,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앞으로 도(道)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는데, ‘도(道)라고 하는 것은 이름을 도(道)라고는 붙였지만 꼭 도(道)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떤 이름을 붙일 때 그 이름을 사용하지만 꼭 그 이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라는 내용이다.
析三極(석삼극)
析三極(석삼극)은 삼극으로 나눈다는 뜻인데 그 주어가 되는 것은 一(일)이다. 즉, 一析三極(일석삼극)이란 말이며, ‘한’을 삼극으로 나누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는 천부경에 여러 번 나온다. 연결되는 문구에서 중복되는 글자를 생략하는 기법이다. 천부경은 81자에서 한 자라도 생략하면 그 뜻이 통하지 않는다. 완벽한 조화미를 갖춘 아름다운 문장이다.
※ 천부경의 一析三極(일석삼극)에서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 즉 ‘하나를 집으면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으면 하나로 돌아간다’는 말이 나왔으며, 이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이론이며, 이를 모방한 것이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이다.
無盡本(무진본)
無盡本(무진본)은 ‘그 본(本)은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한’은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
‘한’은 시작됨이 없이 원래 존재하는 ‘한’인데 이를 삼극으로 나누어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라는 뜻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천일(天一)이 하나(一), 지일(地一)이 둘(二), 인일(人一)이 셋(三)이라는 뜻이다. 天一, 地一, 人一에서 사용된 일(一)은 극(極)을 뜻한다. 앞서 一析三極(일석삼극)에서 ‘한’을 삼극으로 나눈다고 하였으므로 천일(天一)의 일(一)은 극(極)을 뜻하며, ‘한’을 삼극으로 나눈 것이 天一, 地一, 人一인 것이다. 그 뒤에 오는 일이삼(一二三)은 우리말 하나, 둘, 셋이다. 즉, 우리말 하나는 천일(天一), 둘은 지일(地一), 셋은 인일(人一)을 뜻한다. 우리말 하나, 둘, 셋의 뜻은 녹도문(鹿圖文)으로 쓰여진 천부경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하나는 천일(天一), 천극(天極)을 뜻하는 것으로 하늘(天)의 속성을 품고 있다. 하늘의 속성은 만물을 낳는 것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말 하나는 ‘한’과 ‘나’가 합쳐진 말인데 ‘나’는 ‘낳다’에서 온 것이다.
둘은 지일(地一), 지극(地極)을 뜻하는 것으로 땅(地)의 속성을 품고 있다. 우리말 둘은 ‘두르다’에서 나온 것으로 땅의 속성은 ‘둘러서 기른다’는 것이다.
셋은 인일(人一), 인극(人極)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人)의 속성을 품고 있다. 셋은 세상(世)에서 생겨난 말로 사람의 속성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세우고, 다스려서, 밝은 사람(明人, 명인)이 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의 일(一)이 극(極)을 뜻하지만 천극(天極)으로 표현하지 않고 굳이 숫자 일(一)로 표현한 것도 깊은 뜻이 숨어있다. ‘한’을 삼극으로 나눈 것이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며, ‘한’이 불변이듯이 천일(天一)이라는 것도 ‘하늘의 진리’로 불변이라는 것이다. 지일(地一)은 ‘땅의 진리’이며, 인일(人一)은 ‘사람의 진리’로 그 근본(本)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일(天一)은 하늘의 속성이자 하늘의 섭리이며, 불변하는 하늘의 진리이기 때문에 극(極)을 사용하지 않고 일(一)을 사용한 것이다.
※ 참고로 일(一)을 극(極)으로 적어 놓으면 천극(天極)은 지구의 자전축을 늘여서 천구와 맞닿는 가상의 점으로 북두칠성의 가장 밝은 별을 가리키며, 지극(地極)은 지축의 양 끝인 남극과 북극을 가리키며, 인극(人極)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천부경에서 전하고자 하는 天一, 地一, 人一의 뜻이 왜곡될 수 있다.
※ 천부경 어디에도 신(神)이라는 글자는 나오지 않는다.
‘신(神)’은 가상의 존재로 국가가 형성되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통치의 수단으로 발생한 개념이다. 또한 종교가 발생하고 발달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 보듯이 천부경이 나온 이후 후세들이 天一, 地一, 人一의 일(一)을 무어라 단정할 수 없어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은 ‘한얼님’, 즉 하느님이 되어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의 삼신을 주재하는 것으로 삼신일체(三神一體) 이론의 토대가 된다.
우리의 고전에는 삼신(三神)을 한인, 환웅, 단군이라 하고, 이들을 조화(造化)의 신, 교화(敎化)의 신, 치화(治化)의 신 등으로 신격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천부경은 한국(桓國)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환웅과 단군은 태어나지도 않은 시기였다. 다만 천일(天一)의 본성은 낳는 것으로 조화(造化)이며, 지일(地一)의 본성은 기르는 것으로 교화(敎化)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인일(人一)은 다스리는 것이므로 치화(治化)이니 天一, 地一, 人一의 뜻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 현대 과학에서 우주는 한 점이 대폭발(빅뱅[Big Bang])을 일으켜 현재의 우주가 탄생하였다고 하는데 태초에 존재한 그 한 점이 천부경에서 말하는 ‘한(一)’이다. 그 한 점은 우주의 ‘씨’이자 ‘알’이다. 대폭발 이후 시간과 공간이 생기고, 물질이 생성되고, 그 물질이 현재의 우주를 만들고 생명체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 현대과학이고, 우리 선조들은 그 원리를 태초의 한(一) 속에 이미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작용과 조화로 인해 현 세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2. 천부경의 사상 인내천 (人乃天)
一積十鉅 無櫃化三 (일적십거 무궤화삼)
이는 “한(一)을 쌓아서 크게 열면 궤(櫃)가 없는 三(삼)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三(삼)이란 우리말 셋이 뜻하는 人一(인일)을 의미한다. 대략적인 의미는 ‘한(一)이 쌓여 사람이 되었으니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인내천(人乃天)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一積十鉅(일적십거)의 一積(일적)은 한(一)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주의 근본 씨앗인 태초의 한(一)을 쌓고 쌓는 것, 또는 쌓인 것을 말한다. 또는 뒤의 십(十)을 연결하여 한(一)을 무수히 쌓은 것을 뜻하기도 한다. 十鉅(십거)의 ‘열 십(十)’자는 말 그대로 숫자 10이 아니라 여는 것을 의미하며, 鉅(거)는 통상 크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으로 ‘한(一)을 쌓고 쌓아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으므로 이를 크게 연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주의 기운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쌓여서 이를 연다는 의미이다.
無櫃化三(무궤화삼)에서 無櫃(무궤)를 ‘담을 상자가 없어서’로 해석하면 一積十鉅(일적십거)에 내재된 내용과 중복되는 것이다. 천부경은 완벽한 문장이다. 그 글자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의미(생명)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一)의 기운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쌓였다면 당연히 담을 상자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無櫃(무궤)란 ‘궤(櫃)’가 없는 것이다. 궤(櫃)는 함이나 궤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無櫃(무궤)는 ‘갇힘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즉, 無櫃(무궤)는 ‘자유로운’, ‘걸릴 것이 없는’, ‘구속됨이 없는’, ‘장애가 없는’ 등의 의미이다. 化三(화삼)에서 三(삼)은 人一(인일)을 의미하므로 ‘人一(인일) 또는 人神(인신)으로 된다’는 의미이며, 단순히 사람(人)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化三(화삼)에서 삼(三)이 의미하는 것은 뒤에 나오는 명인(明人, 밝은 사람)이 人一(인일)에 가장 적합한 용어이다. 하늘 기운이 쌓여서 사람이 되었다라고 한다면 쉽게 一積化人(일적화인)이나 一積十鉅化人(일적십거화인)이라는 표현으로 충분하며, 無櫃(무궤)라는 말을 삽입할 필요가 없고 人(인) 대신에 三(삼)을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 인(人)’자가 없다면 몰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어렵게 三(삼)이라고 적어서 해석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一積十鉅無櫃化三 (일적십거무궤화삼)
‘우주의 근본 기운인 한(一)을 쌓고 쌓아 크게 열면 걸릴 것이 없는 밝은 사람(明人)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뒤에 나오는 문장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우리말 ‘아홉’, ‘열’과 맞아 떨어진다.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을 달리 해석하면 사람은 명인(明人)이 되기 위하여 一積十鉅(일적십거)하는 수양, 또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一積十鉅(일적십거)하는 과정이 우리말 ‘아홉’의 참된 뜻이다.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아홉(수양)을 통해 열어서 명인(明人)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크게 열다’는 뜻인 十鉅(십거)는 ‘깨달음’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불교 용어를 빌리면 대오각성(大悟覺醒)이요, 견성(見性)인 것이다. 化三(화삼)의 三(삼)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人一(인일)의 도리를 깨우친 밝은 사람(明人), 완성된 사람 또는 참사람(眞人)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는 것이며, 도교에서는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천부경에서 나온 이론들이 불교의 바탕이 되고, 도교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 천부경에서 전하는 참뜻과는 차이가 있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천부경의 핵심 사상을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구한말 동학사상의 중심 사상이며, 인즉천(人卽天)이라고도 표현하나 이는 인내천(人乃天)과 동일한 의미이다. 이 시기에는 천부경 사상이 종교의 경전으로 변질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 등 다수의 종교가 생겨나며, 대순진리회도 이들 종교의 한 갈래이다.
참고로 동학의 교리는 3단계의 발전 과정을 겪었다고 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조인 최제우 단계에서 시천주(侍天主) 사상, 2대 교주인 최시형 단계에서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 3대 교주인 손병희에 의해 개창된 천도교 단계에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변화되었다. 물론 이 3단계의 교리 발전 과정이 전적으로 단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시천주란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천주를 정성껏 내 마음에 모신다는 의미이다. 최시형의 경우, 천주는 인격적, 초월적 개념 대신에 천(天)이라는 비인격적 개념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즉 사인여천(事人如天), 양천주(養天主), 인즉천(人卽天) 등의 개념이 등장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길 것을 강조하고 마음속에서 천주를 기르고, 나아가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주장이었다. 손병희 단계에서 전통적인 천주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인간을 천(天)과 동일시하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3. 천지인(天地人)의 용(用)과 현상(現狀)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天二(천이)가 셋(三)이요, 地二(지이)가 셋(三)이요, 人二(인이)가 셋(三)이라는 뜻이다. 뒤에 붙은 삼(三)은 우리말 숫자 ‘셋’을 뜻한다. 天二, 地二, 人二의 二(이)는 뒤에 나오는 용(用)을 뜻한다.
즉, 天二(천이)는 天(천)의 용(用), 천용(天用)이 셋(三)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용(用)에 근접한 용어로는 섭리(攝理)를 들 수 있으며, 天二三은 하늘의 섭리가 셋(세 가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二(이)를 용(用)으로 바꾸어 놓으면 “天用(천용)이 셋이요, 地用(지용)이 셋이요, 人用(인용)이 셋이다”라는 뜻이 된다. 또, 二(이)를 ‘이치 리(理)’로 바꾸어 놓으면 天理(천리), 地理(지리), 人理(인리)가 되어 발음상으로도 천이, 지이, 인이 등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하늘의 이치(理致)가 셋이요…해서, 천지인(天地人)의 이치(理致)가 모두 셋 씩이라는 뜻이다. 이 셋(三)이 무엇인지는 뒤에 나오는 일곱, 여덟, 아홉에서 설명한다.
덧붙여 설명하면 天二(천이)란 天一(천일)이 움직여서 나타나는 작용(作用)을 말하는 것이다.
大三合六 生七八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大三合六 (대삼합육)
大三合六(대삼합육)은 말 그대로 큰 셋을 합하니 여섯(六)이 된다는 말이다. 一析三極(일석삼극)에서 ‘한(一)’을 셋으로 나눈 것이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인데 이 세 개를 합한 것이 육(六)이라는 말이다. 天一(천일)이 하나(一), 地一(지일)이 둘(二), 人一(인일)이 셋(三)이므로 이 셋을 합하면 우리가 쓰는 숫자 여섯(六)이 된다.
천부경에서 유래한 말 중의 하나가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인데 집일함삼(執一含三)은 ‘한(一)’에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이 들어 있다는 것이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은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이 모이면 ‘한(一)’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섯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로 보이지만 여섯(六) 속에는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이 모여 있는 것이다. 大三合六(대삼합육)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큰 셋이 모이면 삼태극(三太極)을 형성하게 된다. 태극(太極)이란 태극기처럼 펄럭이는 것이다. 즉, 움직인다는 것이다.
生七八九 (생칠팔구)
生七八九(생칠팔구)는 일곱(七), 여덟(八), 아홉(九)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大三合六 生七八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큰 셋을 합하니 여섯(六)이며, 여기에서 일곱(七), 여덟(八), 아홉(九)이 나온다.
즉, 큰 셋인 天一(천일)이 하나(一), 地一(지일)이 둘(二), 人一(인일)이 셋(三)이므로 이 셋을 합하면 여섯이 된다. 큰 셋(大三)이 합쳐지면 삼극(삼태극)이 움직여 天二(천이), 地二(지이), 人二(인이)가 현상(現像)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일곱(七), 여덟(八), 아홉(九)이다. 天二(천이), 地二(지이), 人二(인이)는 천지인(天地人)의 용(用, 작용)을 말하는데 이들의 작용이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을 하자면, 큰 셋이 모여 삼태극을 형성하면 하늘의 진리이자 섭리인 천일(天一)이 움직여 하늘의 작용인 천이(天二)가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일곱(七)이다. 땅의 진리이자 섭리인 지일(地一)이 움직여 땅의 작용인 지이(地二)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여덟(八)이며, 사람의 진리이자 섭리인 인일(人一)이 움직여 사람의 작용인 인이(人二)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홉(九)이다.
여기서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 나왔으나 천부경의 한자 풀이만 하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넷, 다섯을 먼저 설명하고 나서 하기로 한다. 그래야 정확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4. 삼극(三極)의 작용(作用)
運三四成環五七 (운삼사성환오칠)
運三四成 (운삼사성)
“셋을 운용하여 넷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또는 “셋이 움직이니 넷이 이루어진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천지만물 창조의 시작이다. 생명창조에 있어서 현대과학도 이 이상의 설명은 할 수 없다.
運三(운삼)은 ‘셋을 운용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셋은 大三合六(대삼합육)으로 만들어진 여섯을 구성하는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을 가리킨다.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의 셋이 모인 것이 삼태극(三太極)이며, 이들이 움직여서 만들어진 것이 넷(四)이라는 것이 運三四成(운삼사성)의 본 뜻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넷(四)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세상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넷은 네 가지 기운을 의미하며, 이것이 만물뿐만 아니라 생명을 탄생시키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생명의 탄생 비밀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넷(四)은 토(土, 흙), 수(水, 물), 화(火, 불), 풍(風, 바람) 네 가지를 말한다. 풍(風)을 기(氣)로 적은 문헌도 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토(土), 수(水), 화(火), 풍(風) 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기(氣)이다.
네 가지 기운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토(土)는 물질을 의미한다. 여기서 토(土)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속과 비금속뿐만 아니라 액체와 기체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과 행성에서부터 바위, 조약돌, 모래알까지 모든 물질은 토(土)에 해당하는 것이다. 수(水), 화(火), 풍(風)은 생물(생명체)에게 필요한 요소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물이 없으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현대에도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서 만든 로켓을 만들어서 달이나 행성을 탐험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물의 존재여부이다.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이 있어야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가 화(火)이다.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은 살아갈 수 없다. 비록 물질(土), 물(水), 에너지(火)가 갖추어져 있더라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데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風) 또는 기(氣)인 것이다.
※ 녹도문 천부경에서는 우리말 넷이 기(氣)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문서들도 천부경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주해를 달고, 또 그 주해에 해석을 붙이고 하면서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 시대에 맞도록 수정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대강의 줄거리는 남아있기 마련이다. 일일이 그러한 내용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몇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삼일신고, 태백일사, 삼성기전, 한단고기, 부도지 등등에 남아있는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넷이란 위에 열거한 토수화풍(土水火風)으로 집약된다.
부도지 제3장의 앞 구절을 옮겨 적는다.
후천의 운이 열렸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곧 향상(響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를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땅과 바다가 나란히 늘어서고 산천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를 바꾸어 돌므로 비로소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풀과 짐승을 살지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졌다.
그 원문은 아래와 같다.
後天運開(후천음개)에 律呂再復(율려재복)하야 乃成響象(내성향상)하니 聲與音錯(성여음착)이라 麻姑(마고)이 引實達大城(인실달대성)하야 降於天水之域(강어천수지역)하니 大城之氣(대성지기)이 上昇(상승)하야 布幕於水雲之上(포막어수운지상)하고 實達之体(실달지체)이 平開(평개)하야 闢地於凝水之中(벽지어응수지중)하니 陸海(육해) 列(렬)하고 山川(산천)이 廣圻(광기)이라 於是(어시)에 水域(수역)이 變成地界而雙重(변성지계이쌍중)하여 替動上下而斡旋(체동상하이알선)하니 曆數始焉(역수시언)이라. 以故(이고)로 氣火水土(기화수토)이 相得混和(상득혼화)하여 光分晝夜四時(광분주야사시)하고 潤生草木禽獸(윤생초목금수)하니 全地多事(전지다사)라.
부도지에서는 넷을 기화수토(氣火水土) 넷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풀과 짐승을 살지게 길러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브루스 윌리스와 밀라 요보비치가 출연하는 ‘제5원소’라는 영화에서도 4원소는 흙(土), 물(水), 불(火), 바람(風)이다.
우리말 넷(四)은 그리스에도 전해져서 약 2,000년 동안 주요 사상으로 자리잡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 물질을 찾아 물질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했다. 기원전 400년경 엠페도클레스는 모든 물질이 흙(土), 물(水), 불(火), 공기(氣 또는 風)라는 4가지 본질적 원소들의 합성물이며, 사물은 이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4원소설은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이 사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여 2,000년 동안 서구 과학 사상의 주류가 되었던 4원소설의 기초가 되었다.
천부경과 그리스 철학자들이 언급한 토수화풍(土水火風)은 외견상 동일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토수화풍(土水火風)은 개념적인 것으로 흙(土)이란 흙의 기운(土氣)과 같은 것인데 비해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토수화풍(土水火風)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현재 우리들이 말하는 원소(元素) 또는 원자(原子) 개념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우리들 상식으로는 터무니 없지만 귀한 금도 값싼 금속에서 4가지 원소의 비율만 바꾸면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값싼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은 중세 아랍 및 유럽 화학자들의 주된 관심 사항이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발상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화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成環五七 (성환오칠)
運三四成(운삼사성)을 이해했으면 다음은 環五七(환오칠)인데 여기서도 양 문구에서 중복되는 성(成)을 삽입하여 成環五七(성환오칠)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쉽다. 成環五七(성환오칠)이란 “다섯(五)과 일곱(七)이 고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문장이지만 해석을 못하는 것은 다섯(五)과 일곱(七)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말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나다’라는 뜻이며, 일곱은 ‘일어나서 굽는다(죽는다)’는 뜻이다. 일곱은 하늘의 섭리인 천이(天二)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만물은 무상(無常)하며,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成環五七(성환오칠)을 다시 해석하면, “이 땅에는 만물이 생겨 나지만 이들은 소멸하게 되는 고리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사람도 다섯이 뜻하는 만물에 포함이 되므로 사람도 이 땅에 계속 태어나지만 이들은 죽고, 또 다른 사람이 태어나는 고리를 형성한다. 나라(국가)도 생겨났다가 언젠가는 멸망하고 그 땅에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고리를 형성한다.
運三四成環五七 (운삼사성환오칠)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 셋(三)이 움직여서(運) 흙(土), 물(水), 불(火), 바람(風)의 넷(四)이 생성되며(運三四成[운삼사성]), 이 넷(四)이 땅에 만물과 생명(生命)을 태어나게 하지만 이들은 나서(生), 자라고(成), 죽는다(滅). 즉, 땅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지속적으로 태어나며, 이들 생명은 나서 자라고 죽는 고리를 형성하니 成環五七(성환오칠)인 것이다. 이것은 생명뿐만 아니라 만물에 해당되는 사항으로 별도 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은 만물에 해당되는 진리인데 이는 天二(천이)에 숨어있는 작용이 나타나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運三四成環五七 (운삼사성환오칠)은 천부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여기에 오면 천부경을 해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과 철학이 총망라하기 시작한다. 음양오행설과 팔괘를 비롯하여 사(四), 오(五), 칠(七)이 들어가는 수 많은 이론들이 등장한다.
천부경은 인류 최초의 국가인 한국(桓國)에서 유래하였으며, 배달국(倍達國)을 세운 환웅천황에게 한국의 한인천제께서 천부인 3개와 함께 물려주신 경전이다. 이 때가 우리의 기록으로는 BC3898년, 즉 현재로부터 약 6,000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오행설이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부도지에서는 ‘오행(五行)의 화(禍)’라 하여 가장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므로 일부 내용을 보면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 거북의 등에 쓰여진 갑골문)과, 명협(蓂莢, 중국 요임금 때 나타났다는 전설상의 풀)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人世) 두 번째의 큰 변이었다”고 하여 ‘오미(五味)의 화(禍)’에 이은 두 번째 재앙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도 천부경 해설서의 대부분은 오행사상과 연관시키고 있으니 이는 어불성설이다. 또한 팔괘를 창시한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5세 태우의 환웅의 12번째 아들이자, 6대 다의발 환웅의 막내 동생이라 하였으니 팔괘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 成環五七(성환오칠)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생명이 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輪廻思想)과 일맥상통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 말하는 천부경의 결론인 열(十)도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해탈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그러나 천부경에서 의미하는 성환오칠(成環五七)은 ‘만물은 나서 자라고 죽는다’라는 뜻이며, ‘생명이 있는 것이 다시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석가(부처)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네 가지 고통(四苦)으로 보았으며, 사람은 윤회를 통해 영원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찾은 것이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다. 수행을 통해 크게 깨달아 명인(明人), 즉 부처가 되면 이러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 교리이다.
이제는 우리말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의 뜻을 살펴본다.
넷
‘넷’은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 것이며, 그것이 토(土), 수(水), 화(火), 풍(風)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들의 작용과 조화로 인해 세상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불교의 적취설(積聚說)은 ‘넷’을 구성하는 토(土 또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요소가 모여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론이다. 세계를 이루는 근본요소에 대해 이 네 가지가 인연에 따라 뭉쳐서 나타나며,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모습인 사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불교의 인연법이다. 불교에서 지(地)는 단단하므로 모든 물질을 의미하고, 수(水)는 습기로서 물질 속의 생명의 기운을 말하고, 화(火)는 열기로서 만물을 숙성시키는 기운이며, 풍(風)은 움직이며 살아 있는 힘을 의미한다. 불교의 이러한 이론 또한 천부경에서 유래한 사상이다.
다섯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토(土), 수(水), 화(火), 풍(風)의 상호작용과 조화로 인하여 땅에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산과 들, 강과 호수가 만들어지며, 생명이 태어나 풀과 나무가 자라고, 온갖 짐승과 사람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지구 생성 초기에는 불 지옥과 다름없이 화산이 터지고 용암이 펄펄 끓어 올랐으나 하늘에 응축된 수증기가 비가 되어 쏟아져서 육지와 바다가 생겨나고 이 후에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되어 현재의 지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다섯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속 불이 진탕하여 바다가 변하고 육지가 바뀌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신(神)이 기(氣)를 불어 넣고 바닥을 싸고 햇볕을 쪼이며, 열을 더하여 걷는 것, 나는 것, 허물 벗는 것, 헤엄치는 것과 모든 식물이 번성하게 되었다.
여섯
여섯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즉, 해와 달과 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섯에 대해 부언 설명하면 여섯은 단순히 해, 달, 별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大三合六(대삼합육)하여 생성된 것이므로 현존하는 우주의 실체를 일컫는 말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하늘에 700 세계가 있다고 하였다. 현대과학으로 풀이하면 은하계에는 수 천 억 개의 별이 있으며, 우주에는 수 천 억 개의 은하가 있으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지구)도 무수히 있을 수 있다. 천부경의 여섯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은 창조의 완성이며, 모두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 성경에서는 왜 일곱째 날이 주일이 되어 쉬는 날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 참고로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환국(桓國)에는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매일 매일 신에게 제사하는 달력)이 있었는데 첫째 날에는 하늘의 신(天神)에게, 둘째 날은 달의 신(月神), 셋째 날에는 물의 신(水神), 넷째 날에는 불의 신(火神), 다섯째 날에는 나무의 신(木神), 여섯째 날에는 쇠의 신(金神), 일곱째 날에는 흙의 신(土神)에게 제사를 하였으니 달력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가 거발한 환웅시대라고 적고 있다. 이것을 현재의 요일로 보고 정리해 보면 일주일은 ‘천월수화목금토’이다. ‘천(天)’을 ‘일(日)’로 대체하고 ‘수화’를 ‘화수’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일주일의 이름인 ‘일월화수목금토’와 동일해 진다.
우리는 한국(桓國) 시대에 이미 달력이 있었으며, 이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거발한 환웅이란 바로 한국(桓國)을 세운 천황이며, ‘쇠의 신(金神)’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이미 청동기시대에 들어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사실이란 것이다.
일곱
일곱은 ‘일어나서 굽는다’는 뜻이다. 즉, 일곱이 의미하는 것은 “세상 만물은 태어나서 반드시 없어진다”는 것이다.
천부경에서는 하늘의 기운인 天一(천일)이 일으키는 작용이 天二(천이)이며, 이것이 셋(세 가지)이라고 하였다. 즉 天二三(천이삼)이며, 이는 하늘의 섭리다.
세상 만물은 하늘의 기운(天一)을 받아서 태어난다. 그러나 세상 만물은 하늘의 섭리(天二)에 따라 생성멸(生成滅)하는 것이므로 만물은 “나서 자라고 죽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하늘의 기운(天一)을 받아 태어나지만 이들은 나서, 자라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만물은 무상(無常)하여 상주하지 않고 변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별도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동물도 나서, 자라고, 죽는다. 사람도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이는 사물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국가도 세워져서 성장하다가 언젠가는 멸망하게 된다.
※ 인도의 힌두교는 불교의 바탕을 이루기도 하는데 힌두교에는 다양한 신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상징하는 트리무르티(trimurti)를 보면 브라흐마(Brahma)는 창조(生成), 비슈누(Viṣhṇu)는 유지(成長), 시바(Shiva)는 파괴(消滅)를 담당하니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곱(七)의 삼상(三相)을 각각의 신에게 분담하여 맡긴 듯하다.
고대 마야에서도 이 세상은 생겨나서 번성하다가 언젠가는 대멸종을 맞이한 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믿고 있었다. 이 또한 우리말 일곱이 전하는 내용이다.
여덟
여덟은 ‘열매를 더하다’란 말이다. 이 말은 ‘생물은 번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천부경에서는 땅의 기운인 地一(지일)이 일으키는 작용이 地二(지이)이며, 이것이 셋(세 가지)이라고 하였다. 즉 地二三(지이삼)이며, 이는 땅의 섭리다.
모든 생물은 하늘의 기운인 天一(천일)과 땅의 기운인 地一(지일)을 받아서 태어난다.
모든 생물은 땅의 섭리(天二)에 따라 ‘자라고(成長), 성숙(成熟)하여, 번식(繁殖)’하는 것이다. 식물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며, 동물은 자라서 성숙하여 번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진리이다.
※ 우리는 생존 조건이 열악한 바위 틈이나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자라는 풀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생존 목적은 어떻게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벌판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 식물도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또한, 번식률과 생존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진화해 간다. 이것은 모든 생물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즉, 여덟의 작용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한낱 곤충이든 영장류든 상관없이 생의 목적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곤충도 생존 능력과 번식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할 것 없이 모든 동물도 삶의 목적이 후손을 남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포식자는 포식자 나름대로, 잡아 먹히는 피식자도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구한다. 이들의 생존 목적은 살아 남아서 새끼를 낳고, 새끼가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 돌보는 것이다. 이것 역시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인 여덟의 작용인 것이다.
아홉
아홉은 수양을 통해 하늘의 기운인 ‘한(一)’을 받는 것이다.
천부경에서는 사람의 기운인 人一(인일)이 일으키는 작용이 人二(인이)이며, 이것이 셋(세 가지)이라고 하였다. 즉 人二三(지이삼)이며, 이는 사람의 섭리다.
사람은 하늘의 기운인 天一(천일), 땅의 기운인 地一(지일), 사람의 기운인 人一(인일)을 모두 받아서 태어난다.
사람은 사람의 섭리(人二)에 따라 배우고, 수양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섭리로 사람은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의 기운을 모두 받아서 태어나므로 이들 기운을 온전하게 조화시켜 밝은 사람(明人)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도 天二(천이)의 작용으로 나서 죽으며, 地二(지이)의 작용으로 후손을 남기지만 죽기 전에 人二(인이)의 작용으로 학습하고, 수양하여, 자기완성(自己完成)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고전에서도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늙어서 죽는다”라고 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배움 또는 학습을 추가하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아홉은 人二(인이)의 현상(現像)으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사람은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 세 가지(삼진[三眞])를 모두 받았으니 이를 성명정(性命精)이라 하며, 사람은 이를 갈고 닦아서 밝은 사람(明人)이 되도록 수양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도 천부경이 종교화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천부경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달라져 있다.
5. 우주(‘한’)의 본성(本性)과 결실(結實)
一妙衍萬往萬來 (일묘연만왕왕래)
여기에서 사용한 일(一)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에 나오는 ‘한(一)’이다. ‘한(一)’에서 天一(천일), 地一(지일), 人一(인일)이 나오며, 이들이 모여서 움직이니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나서 땅과 하늘에 만물이 생성되어 현재의 우주가 되었다고 하였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한(一)은 (그 작용이) 묘연(妙衍)해서 만물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앞의 일곱에서 설명했듯이 만물은 생겨나서 소멸되므로 이를 만물이 오고 간다는 의미에서 萬往萬來(만왕만래)라고 적고 있다. 어떤 이는 “하나가 만 번 오고 간다”라고 하는데 이는 틀린 해석이다. 묘연(妙衍)이란 묘하게 널리 퍼지거나 흘러가는 것으로 한(一)의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한(一)’은 만물에 작용하여 만물이 오고 가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묘연하다는 것은 ‘그윽하고 멀다’ 또는 ‘아득하고 멀다’라는 의미에서 묘연(渺然) 또는 묘연(杳然)을 사용한다. 간혹 묘하게 간다는 뜻으로 묘행(妙行)이라고 적고 있는 것도 있다.
用變不動本 (용변부동본)
여기서 用(용)은 天二三(천이삼), 地二三(지이삼), 人二三(인이삼)의 二(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의 작용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이 모두는 태초의 한(一)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 쓰임새(用)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한(一)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쓰임새라고 하는 것은 바위나 돌과 같은 물질을 만드는 것, 풀과 나무 같이 만물이 나타내는 모양 또는 형태를 나타내는 것, 구름과 같이 생겼다가 사라지거나 식물의 싹이 터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시들어 가는 모든 현상을 포함한 개념이다.
一妙衍萬往萬來 (일묘연만왕왕래) 用變不動本 (용변부동본)
한(一)은 그 작용(用)이 오묘해서 만물이 오고 가며, 그 쓰임새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本心本太陽 (본심본태양) 昻明人中天地一 (앙명인중천지일)
本心本太陽 (본심본태양)
근본 마음은 원래 크게 밝다는 뜻이다. 태양(太陽)은 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밝다’는 의미이다. 쉬운 문장이지만 주어가 한(一)인지 사람인지가 문제다. 문맥상으로는 人一(인일)이며, ‘사람의 근본 마음(심지)은 원래 크게 밝은 것이다’라는 뜻이다. 쉽게 사람의 본성은 밝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一)로 볼 수도 있지만 뒤에 오는 문장과 연결이 안 된다. 그리고 통상 마음이라고 하면 사람을 떠 올리지 우주를 떠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一)의 근본 마음은 태양(해)이다’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한(一)이 태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때까지의 설명으로 충분할 것이다. 태양도 여섯에 포함된 아주 작은 티끌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昻明人 (앙명인)
앞에서도 여러 번 명인(明人)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이 문장은 昻明人(앙명인)으로 끊어서 밝은 사람(明人)을 우러러보라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이니 모든 사람을 우러러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한 사람이 명인(明人)이니 이러한 사람을 우러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천부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사상과 맞으며, 바로 앞의 문장과도 연결이 되는 것이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 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공경하거나 우러러본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 올림픽 시즌만 되면 “건강에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하여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요인인양 떠들고 있다. 일부는 수긍이 가지만 주객이 전도된 말이다. 신체는 건장한데 사람을 협박하여 금품이나 갈취한다면 양아치나 건달과 다름없다. 이런 사람한테 쓰는 말이 “건강에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이다. 허우대가 아무리 멀쩡해도 올바른 정신이 깃들어야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정신이 육체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신체는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올곧은 정신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마찬가지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러러보고, 존경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한인(桓因) 천제(天帝)도 환한 사람, 밝은 사람인 것이며, 밝달(밝은 땅)에서 배달이라는 말이 나왔음은 익히 알고들 있는 사실이다. 한민족이나 배달민족이나 같은 말인 것이다. 한인천제나 환웅천황처럼 환하고 밝은 사람이 천부경에서 말하는 명인(明人)이며, 이러한 사람을 우러러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면 우리말 아홉은 이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심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다스려라’는 뜻이다.
明人中天地一 (명인중천지일)
밝은 사람(明人)은 天一(천일), 地一(지일)의 기운을 온전하게 다스려 속(中)에 한(一, 하늘)의 기운을 쌓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人一(인일)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받는 것이므로 생략한 것이다. 사람이 人一(인일)의 기운을 받지 않으면 다른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일곱, 여덟, 아홉에서 설명하였다.
昻明人中天地一 (앙명인중천지일)
밝은 사람(明人)은 타고난 천지인(天地人)의 기운을 온전하게 수양한 사람이니 우러러보고 공경하여야 한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한(一)은 끝남이 없이 존재하는 한(一)이다.
사족을 붙이면 ‘한(一)의 끝남에 대해 말하자면 한(一)은 끝남이 없이 존재하는 한(一)이다’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