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유진벨 선교사는 아들 헨리와 딸 샤롯 이렇게 1남 1녀를 둔다.
둘다 로티위더스푼에게서 낳은 자녀이다.
이중 샤롯은 당시 군산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21살의 젊은 윌리엄 린튼과 결혼한다.
2대
유진벨 딸 샤롯-윌리엄린튼(인돈)과 결혼
윌리엄 린튼 부부는 해방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으며,
대전에 한남대학교(HNU)를 세워 해방 후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3대
윌리엄 린튼 부부는 네 아들을 두게 된다.
큰 아들(William Linton)이
군산에서 1923년 4월 1일 출생하여 유럽에서 지내다가 1982년 내한한바 있다.
둘째 아들(Eugene Linton)은
군산에서 1924년 4월 21일 출생하여
미국에서 의사로 있다가 한국으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셋째 아들 휴 M. 린턴(Linton, Hugh Maclntyre, 한국명: 인휴)은
1926년 군산에서 출생하여 1947년 5월 31일에
베티(Elizabeth Flowers, 일명 Betty)와 결혼했다.
1950년 콜럼비아 신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프린스턴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부부선교사로 1953년 내한하여 순천지방의 농촌선교사로 활동하였다.
한국에서 31년간 선교사 사역을 담당 하다가
1984년 4월 10일 자동차 사고로 별세하여 순천에 안장되었다.
넷째 아들 드와이트(Linton, Thomas Dwight, 한국명: 인도아)는
전주에서 1927년 12월 4일 출생하여 광주에서 교육자 및 순회복음 선교사로
그의 부인 Margie와 함께 1978년 귀국할 때까지 31년간 활동했다.
윌리엄 린튼의 아들인 휴 린튼은 자신의 부모와 외조부처럼 선교사가 되어
로이스 린튼과 결혼한 후 전라남도 섬 지방과 벽지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검정 고무신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로 검소하고 소박한 자세로
전라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위 사진은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의 결혼식 사진이다.
그의 별명이 검정고무신이었다.
휴 린튼의 부인 로이스 린튼은
1960년 순천 일대에 큰 수해가 나면서 결핵이 만연해지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우는 등 결핵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였다.
이 공로로 1996년에 호암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때 받은 상금 5,000만 원으로 북한에 앰뷸런스를 기증하였다.
4대
유진벨재단 이사장 스티브 린튼(인세반)은
자신의 어머니가 남녘 땅에서 평생을 봉사해왔던
결핵 퇴치 사업을 밑거름으로 하여
현재까지 10여년 동안 북녘의 동포들을 위해 결핵 퇴치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위 사진은 스티브 린튼 유진벨재단 이사장이
문덕군 결핵요양소의 환자들을 방문하고 있는 장면으로 2004년에 찍은 것이다.
사진의 가장 오른쪽 이마 벗겨지신 분이 스티브 린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