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총론(總論)
소아(小兒)의 병(病)을 고인(古人)들이 아과(啞科: 벙어리 과)라 말하였는데, 소아(小兒)는 언어(言語)가 통(通)하지 않고 병정(病情)을 쉽게 헤아릴(: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르기를 "차라리 10명의 남자(男子)를 치(治)할지언정 1명의 부인(婦人)을 치(治)하지 않고, 차라리 10명의 부인(婦人)을 치(治)할지언정 1명의 소아(小兒)를 치(治)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는 소아(小兒)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심(甚)하게 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비교해보니 삼자(三者) 중에서 소아(小兒)가 가장 쉬웠느니라.
왜 그렇게 보는가?
소아(小兒)의 병(病)은 풍한(風寒)의 외감(外感)이 아니면 음식(飮食)의 내상(內傷)으로 인한 경풍(驚風) 토사(吐瀉) 및 한열(寒熱) 감간(疳癎)의 종류(類)와 같은 몇 종류(:種)에 불과(不過)한다.
또 장기(臟氣)가 청영(淸靈)하여 다스리는(:撥) 대로 응(應)하니, 단지 그 본(本)을 확실(:確)하게 알고(:得) 집어낸다면(:撮取) 한 번의 약(藥)으로도 나을 수 있다.
남녀(:男婦)의 손상(損傷), 적고(積痼), 치완(癡頑)에 비(比)할 바가 아니므로 내가 이르기를 '쉽다.'고 말한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변(辨)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내가 '쉽다.'고 말하는 것은 치(治)하기가 쉽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그 변(辨)이 진(眞)하지 않으면 그것은 진실로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변(辨)하는 법(法)은 또한 표리(表裏) 한열(寒熱) 허실(虛實)의 여섯 가지를 변(辨)하는 것에 불과(不過)하니, 이 여섯 가지에 명확(:洞然)하다면 또한 그 치(治)에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따라서 외감(外感)이란 반드시 표증(表證)이 있고 리증(裏證)은 없으니, 발열(發熱) 두통(頭痛) 구급(拘急) 무한(無汗)하거나 풍(風)으로 인한 축닉(搐搦)의 종류(類)가 그것이다.
내상(內傷)이란 단지 리증(裏證)이 있으면서 표증(表證)은 없으니, 토사(吐瀉) 복통(腹痛) 창만(脹滿) 경감(驚疳) 적취(積聚)의 종류(類)가 그것이다.
열(熱)이란 반드시 열증(熱證)이 있으니, 열갈(熱渴) 조번(躁煩) 비결(秘結) 옹양(癰瘍)의 종류(類)가 그것이다.
한(寒)이란 반드시 한증(寒證)이 있으니, 청랭(淸冷) 토사(吐瀉) 무열(無熱) 무번(無煩) 오심(惡心) 희열(喜熱)이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는 곧 표리(表裏) 한열(寒熱)의 증(證)이니, 극(極)히 쉽게 변(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가지 중에서 특히 허실(虛實)의 두 글자가 가장 긴요(緊要)한 것이다.
형색(形色)의 허실(虛實)이 있고, 성음(聲音)의 허실(虛實)이 있으며, 맥식(脈息)의 허실(虛實)이 있다.
체질(體質)의 강성(强盛)과 유약(柔弱)에는 차이가 있다. 곧 형색(形色)의 홍적(紅赤)과 청백(靑白)은 차이가 있고, 성음(聲音)의 웅장(雄壯)과 단겁(短怯)은 차이가 있으며, 맥식(脈息)의 활실(滑實)과 허세(虛細)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반드시 내(內)로 그 맥후(脈候)를 살피고 외(外)로 그 형기(形氣)를 보며 중(中)으로 그 병정(病情)을 살펴야 하니, 여러 가지를 참고(參)하여 정미(:精)하게 살핀다면 또 어찌 허실(虛實)을 변(辨)하기가 어렵겠는가?
반드시 실사(實邪)가 있고 화증(火證)이 있으면 그 표(標)를 치(治)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표(標)를 치(治)하는 법(法)은 마땅히 정간(精簡)하고 경예(輕銳)하며 적당(適當)하여야 된다.
병(病)에 이르러 낫게 하더라도 조금의 정기(正氣)도 범(犯)하지 말아야 곧 고수(高手)이다. 단지 허상(虛象)만 보고서 곧 공격(攻擊)을 함부로 행(行)하여 임의(任意)로 소모(消耗)시키면 안 된다.
만약 그 견해(見)가 진(眞)하지 않는데, '잠깐 그 사기(邪)를 거(去)하여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안 된다.
소아(小兒)는 유눈(柔嫩)한 체(體)로, 기혈(氣血)이 견(堅)하지 않고 장부(臟腑)가 심(甚)히 취(脆)하니, 약간(:略)이라도 상잔(傷殘)을 받으면 극(極)히 쉽게 위사(萎謝: 시들어 떨어지다)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제(劑)의 잘못(:謬)이라도 감당(堪)할 수 없는데, 심(甚)한 경우라면 어떠하겠는가? 하물며 한참 생(生)하는 기(氣)를 배식(培植)할 생각은 않고 단지 박삭(剝削)할 줄만 알면, 가깝게는 목하(目下)에서 해(害)하고 멀게는 종신(終身)의 리(羸)를 남기니, 참으로 한탄(:嘆)할만 한다. 이것이 실로 본(本)을 구하는 도(道)이니, 진실로 유과(幼科)의 가장 중요(:要)한 핵심(:肯綮)이다.
기이(奇異)한 말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지(知)하는 자들도 망연(:茫然)해 하는가? 따라서 내가 이 편(篇)의 첫머리(端)에서 먼저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살피고 살핀 견해(見)가 아니면 사실 이렇게 말하여도 부족(不足)하니, 이것이 쉽지 않는 까닭이다.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에 이르기를 "잘 진(診)하는 자는 찰색(察色) 안맥(按脈)하여 우선 음양(陰陽)을 별(別)하고, 청탁(淸濁)을 살펴서 부분(部分)을 알며, 천식(喘息)을 보며 성음(聲音)을 듣고 고(苦)한 바를 알아, 권형규거(權衡規矩)를 보고 병(病)이 주(主)하는 것을 안다." 하였다.
생각하건대 이러한 논(論)은 비록 진법(診法)의 요(要)를 전체적(:通)으로 말한 것이지만, 특히 소아(小兒)에게는 가장 중요한(:最切)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