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요람을 에워싸고
1980년 12월 24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거룩한 밤’인 이때를 나와 함께, 기도, 침묵, 묵상, 기다림에 잠겨 지내자꾸나.
2. 내 ‘정배’의 살뜰한 도움을 받으며 내가 피곤한 여행길의 막바지를 걷고 있었던 날이 이제 막 저물었구나.
3. 내 평생 처음 겪는 길기도 긴 날이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마을로 들어가자, 우리를 맞아주는 것이 도리인 마을이 집집마다 문을 닫아 버렸다. (재워달라고) 간청할 때마다 새로운 거절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4. 그리하여, (이미) 팔다리를 얼린 추위가 예리한 칼날처럼 영혼에도 파고들어, 내 생명 깊숙한 곳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5. 나로서는 아무도 영접하지 않는 바로 그때, 민족들이 ‘고대해 온 분’을 낳아 주어야 했으니, ‘사랑이신 분’이 막 탄생하려 하시건만, 싸늘한 이기심 때문에 모든 이의 마음이 닫혀 있는 때였다. 가난한 한 사람의 영혼만이 (우리를) 측은히 여겨, 근처에 있는 동굴을 가리켜 주었다.
6. 암흑과 추위 속, 한줌의 짚이 깔려 있는 구유 옆에서 하느님의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7. 별들, 천사들의 찬미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빛이 그것이다. 요람 주위에는 그러나 사랑하는 두 마음의 따사로움만 있을 따름이었다. 내 지극히 순결한 ‘정배’의 마음과 이 동정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8. 하지만, 곧 태어나실 ‘아기’께는 이 사랑의 온기로도 넉넉할 터였다.
9.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 ‘거룩한 밤’에, 너희도 모두 내 하느님 ‘아기’의 요람을 에워싸고 나와 함께 있으면 좋겠구나.
10. 또다시 집집의 문들이 닫혀 있다. 나라들이 다시 오실 주님께 반역하고 있고, 그분의 왕권에 도전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11. 혹한이 사람들의 마음을 휩싸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연 너무도 춥다! 이는 증오, 폭력, 밑도 끝도 없는 이기심이 만드는 추위요, (인간을) 죽이는 사랑 부재로 인한 추위이다.
12. 그러나 이 ‘거룩한 밤’, 내 마음과 내 정배 요셉의 마음과 함께, 너희의 작은 마음들도 요람을 에워싸고 있기 바란다.
13. 우리 함께 사랑하고 기도하며 보속하자꾸나. 너희를 위해 다시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우리의 사랑으로 녹여 드리자꾸나. 사랑할 줄 아는 너희 마음이야말로 그분께는 유일한 위로, 매우 큰 위로가 되니 말이다.
14. 이 조그만 ‘아기’께서는, 어머니의 티 없는 성심 안에서 길러진 너희를 통해, 온 세상으로 하여금 사랑으로 열리게 하고자 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