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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찌 미안해요. 내가 할게요.”
“관둬. 푸줏간의 고기가 훨씬 부드럽겠어!”
모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상처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자식들의 화목을 위해 재혼을 거부하고 종종 자신을 찾아 회포를 푸는 이 남자. 윤희에겐 단골 중의 큰손님인지라 남다른 서비스를 한다고 자처했는 데 어차피 빈 껍데기의 향연일 뿐인데도 느낌이 다른 모양이다.
윤흰 백치미를 입가에 매달고서 처연히 사내의 체위를 핥아갔다.
파릇한 생을 파멸의 수렁으로 몰아가게 한 그 파렴치한 외에 누구에게도 육체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스스로 거부해 온 삶이 수렁에서 유일하게 숨쉬는 이유였고 증오를 씹고 살면서도 언젠가는 인간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와 자신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한갓 미련에 살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데 배신자는 끝내 양심을 돈에 팔아버리고 말았다는 또 한 번의 배신감에 몸서리가 처지는 것이다. 아니, 아직도 그에 대한 분노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는 이율배반의 자신이 더 밉고 한심하기까지 한 것이다.
“뭐야? 화대가 필요치 않다고! 당신은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군. 당신을 배반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면 어찌 마음과 몸이 이율배반으로 따로 일 수 있을까? 화대가 필요 없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서 일 뿐 그 이하의 이상의 이유도 있을 수 없고 화대를 받으며 몸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명분이지.”
어느 날이던가 그가 찾아와 분노의 앙금을 휘젓고 갔을 때 마음까지 함몰시키자며 화대를 거부하고 몸을 던졌을 때 이처럼 짚어오는 단골도 있었다.
“그래요. 그 남자가 명예와 부를 좇아 날 버렸을 때 난 복수를 다짐했죠. 하나 그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무기가 내겐 없어요. 그런 내가 무엇으로 복수 할 수 있었겠어요. 그에게 복수를 한답시고 못난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보복수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잠시라도 그 남자가 소중히 여겼던 것을 더럽혀 기회가 오면 처절히 더럽혀진 것을 보란 듯이 까발리는 것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내 육신을 희롱하는 것이 내 삶의 의미죠.” 라고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현실 사회에서 성이란 사교의 필수품으로 터부시되고 있는 이때에 정조의 개념이란 단지 잊혀져 가는 의식의 구석에서 맴돌고 있는 양심적 가치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넋두리가 흔한 신파조로밖에 타인들에게 비춰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체감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손님의 물음 속에서 언뜻 당혹감도 들기도 한다.
“아찌. 전 울지 않아요. 수건을 거두세요. 전 이제 울지 않는 여자가 될 거예요. 눈에 티가 들어갔을 뿐이예요.”
기다림이란 것. 특히 유교의 세습이 대물림 된 사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는 고독한 망부석의 사연을 뼈가 시리도록 절감했다. 그 고독을 이기기 위해 그 외로움을 해소키 위해 배신을 안주 삼아 술에 절어 사는 초라한 여인이었지만 타인의 앞에 서만이라도 웃으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메마른 웃음은 더 초연하게 상대에게 전달되고..... .
“그런 놈은 내 당장에.....”
책임감 없는 손님의 분노가 위로라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이봐, 미스 서 웬 기침을 그리 심하게 하는 거야?”
일이 끝나면 버릇처럼 연달아 피워대는 담배.
-염려 붙들어 매어 놓으라고. 어제 보건소에 갔다 왔으니까. 내가 아무리 밑을 팔고 있지만 복수를 위해서 매일 세탁을 하고 있단 말야. 쨔샤들아 내가 기침이 심한 것은 결핵이지 그곳이 병들어서가 아니란 말야. 결핵, 그것도 곧 수술하고 요양을 하지 않으면 생명 줄을 놓아야 한다는 말기 직전이라고. 술도 담배도 다 끄라 하더군. 하지만 생에 미련이 없어 그래서 겁나지 않는다고. 복수, 그게 뭔데? 수표 몇 장 받자구 몸을 파는 것으로 순결을 유린한 게 아닌데....... 이젠 지쳤어. 결핵을 고쳐 더 오랜 시간을 스스로 학대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단 말이야.-
사내는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윤희 역시 사내와 함께 잠을 청했었으나 도시 잠을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습관성 불면증.
어느새 멀리서 새벽 미사의 종소리가 아련히 울려오고 창 밖은 여명이 어둠을 몰아오고 있었다.
윤흰 몇 모금 빨다 만 꽁초를 비벼 끄기가 무섭게 한 모금의 술을 들여 마시고 또 이내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그어댔다. 그리고 성냥이 다 타서 손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어둠을 밝히고 나서야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것은 정적의 잔해를 떨쳐버리기 위한 방법이었고 그녀가 토해내지 못한 고독의 잔해였고 회한의 파편이 저렇게 타고 있는 불꽃 속에 오래도록 연소되고 있다고 믿는 까닭이었다.
윤흰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 보았다. 잠이 들면 오늘도 내일도 잊는 다는 기대, 그러나 그 기대는 그 잔인한 기억의 잔해가 스크린처럼 떠오르며 또 한 번 전율케 하는 악몽이 되고 있었다. 지쳐 가누지 못할 육신과는 달리 한 매듭 분노에 갈증난 영혼은 마냥 사내를 갈구하고 있었다.
윤흰 코를 고는 사내의 품으로 파고들어 혀를 날름거렸다. 그 치욕의 계절의 기억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아, 인육을 탐하는 한 마리의 부나비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