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목적지는 해신당이다. 남근 숭배문화의 산실인 남근조각공원이다. 신남항에 주차하니 바로 코 앞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처녀를 모신 사당이다.
옛날 신남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애랑이와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간다 하기에, 총각 덕배가 떼배로 애랑이를 바위섬에 데려다주고, 덕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어 해변으로 나와보니, 이미 배를 띄울수가 없을 만큼 강한 바람과 함께 집채만한 파도가 일기 시작하였다.
처녀 애랑은 살려달라고 덕배를 부르며 애원하다가, 안타깝게도 파도에 쓸려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이 바다에서는 고기가 전혀 잡히질 않았으며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마을주민들은 지금까지의 재앙 모두가 바위를 붙잡고 애쓰다 죽은 애랑이의 원혼이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애랑이가 죽은 동쪽 바위섬을 향해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고사를 지냈으나, 고기는 여전히 잡히지를 않고 갈수록 마을과 어부들의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 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한 어부가 술에 취해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대한 화풀이로 바다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면서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다른 배들은 여전히 빈 배인데 그 어부만은 만선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민들은 그 어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어부가 지난 저녁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갔고, 기대한대로 모두들 만선으로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나, 곰곰히 생각하니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해마다 제를 지낼 수 밖에....,
그 후 이 마을에서는 그 동안의 재앙이 처녀 애랑이의 원한 때문이라 확실히 믿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 끝 자락에 애랑신을 모시고, 남근을 깍아 제물과 함께 바쳐서 혼인을 못한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월보름과 시월의 오(午)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정월보름에 지내는 제사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고
시월 오(午)일에 지내는 제사는 동물(12지신) 중에서 말의 남근이 가장 크기 때문이며 말(午)의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1km 앞바다에는 애랑이가 덕배를 애타게 부르다 죽었다는 바위가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그 바위를 애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애랑이는 애바위에서, 덕배는 어촌민속관 앞 뜰에서 동상으로 승화되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사유로 여기저기 남근상이 많아졌고, 급기야는 산 전체가 남근상이다.
남자들은 민망하여 어서 자리를 뜰려고 하는데, 여성동지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여기저기 만져도 보면서 그저 싱글벙글이다.
흑, 백을 가리지 않는 이 황당한 사건을 어찌하오리까?
결국 남자들은 안경을 끼고 따라다닐 도리밖에 없었다.
공지사항 : 주의할 것. 여기선 남성용 검정색안경이 필수품목입니다.
다음에 찾은 곳은 공양왕릉이다.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위치한 공양왕릉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 등 3부자 무덤이다. 왜 하필이면 개성이 아닌 여기가 그들의 무덤일까?
공양왕4년(1392) 7월에 이성계가 즉위하고, 8월에 전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원주로 보내어 감시하다가, 다시 왕과 맏아들 왕석과 둘째 왕우를 간성으로 옮겼으나, 역시 불안하여 태조3년(1394) 3월14일에 3부자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한달 뒤인 4월17일에 그들을 모두 죽였다. 결국 귀양살이를 하다 죽임을 당해 이곳에 묻히게 된 것이다.
현종3년(1837) 가을에 삼척부사 이규헌이 삼척왕릉을 개축하였으며, 1977년 삼척군수와 근덕면장의 노력으로 묘소가 개축,보수되어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 능에서는 근덕면봉찬회에서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역사탐방을 끝낸 우리는 해안가에 위치한 해솔정으로 이동한다. 당초 구두 예약했던 민박집을 찾지 못해 이곳 2층을 빌리기로 하였다.
짐들을 숙소에 옮겨놓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삼척해양레일바이크를 타러간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2인승 1대. 4인승 1대를 예약하여 발권만 하면 되었다.
잠시 대기하였다가 18:10 출발하는 야간 레일바이크에 탑승했다.
평일(월) 저녁시간인지라 전체 탑승객 수는 40명이 안되는 것 같았다.
코스는 궁촌리역 → 해송길 → 억새군락지 → 초곡휴게소(일시하차 10분휴식) → 초곡1 (황영조)터널 185m → 초곡2 (신비의 해저)터널 1014m → 용화 (빛의 축제)터널 310m → 용화리역으로, 전체 4.8km로 40여분이 소요된다.
해송길을 지날 때 바닷바람에 향긋한 솔향기가 온 몸을 휘 감는다.
출발한지 얼마 안 지났다는 생각인데, 전방에서 안전요원들이 정차를 시키고 있다. 벌써 초곡휴게소에 도착한 모양이다. 여기서 10여분간 정차하면서 주변 경관 및 조각 작품을 구경하면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이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동행의 소박한 영혼들이 자유로운 삶의 기쁨을 표현하며, 작품 속으로 지체없이 스며들고 있다.
미리 정해놓은 규칙이 없는데도 다들 알아서 자동으로 작품과 동화된다. 예술적 감각이 날로 일취월장이다.
워낙 빼어난 미모(?)에 좌중을 압도하는 호탕한 웃음이 연속적으로 터지다보니, 다른 관광객들은 아예 우리가 설치고 있는 작품 근처로 오지도 못한다.
너무 독차지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10분은 후다닥 흘러가고, 출발한다는 호각소리에 맟춰 향긋한 솔내음 속으로 다시 출발한다.
자전거페달을 동력으로 하기에, 힘차게 밟을수록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지만, 자전거만큼 빠르지는 못하다. 그저 조금 빠르게 걷는 정도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구간 중 터널은 총 3개로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실제 1.4km 길이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화려한 LED 조명으로 장식한 터널은 우리가 지금 환상적인 터널을 지나고 있음을 실감시켜준다
터널 속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도록 멋지게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음향효과까지 구성되어 실제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터널은 신비한 빛의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주 공간 속 윔홀을 지나는 짜릿함에 고성을 함께 질러보기도 했다.
종점인 용화리역에 하차한다. 조금 전의 여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 얼굴마다 미소가 한 가득이다.
역을 빠져나와 입구에 주차중인 셔틀버스에 탄다. 우리가 출발했던 궁촌리역까지 수송해 주기에 편하게 되돌아왔다.
저녁은 해솔정가든에서 주문한 회덮밥이다.
술은 안형님이 가져온 17년산 발렌타인이다. 안주는 물회를 추가로 시킨다.
맥주에 양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어 돌린다. 여행 첫날이라는 설레이는 미묘한 감정 탓인지 다들 단숨에 원샷이다. 숙소는 이 집 2층이니 이동할 염려도 없는 탓에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술 마시기에 집중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에, 좋은 곳에 와서 좋은 마음으로, 다 같이 좋은 술 한 잔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참, 깜박 잊을 뻔했는데, 이 집 주인장도 알고 보니, 울산 학성동에서 한동안 살았었고, 고향이 진주(이순희 여사님 고향)라는 공통점이 있어 여기서도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또한 궁촌특산품으로 돌미역이 유명하다는 말에, 즉석에서 미역 한 뭇을 공동구매 한다.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해선 오늘 일찍 자야한다고 다들 씻고 잘 준비하는데, TV에서 가요무대가 흘러나온다. 이왕지사 가요무대까지만 보고 자자고한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서 춤추기 시작한다. “항구의 일 번지 부기우기 일 번지, 그라스를 채워다오.......,” 그렇게 아름다운 동행의 꿈꾸는 인생여행 1일차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