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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18
朴正熙를 뛰어넘어야 성공한 대통령 된다
⊙ 인수委 통해 나타난 리더십은 萬機親覽·거래적 리더십
⊙ 정치 배제하는 행정주도형 리더십 止揚해야
⊙ ‘선거연합’ 해체하고 ‘통치연합’ 만들려는 유혹 물리쳐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국정(國政)운영 로드맵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 특징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다. 인수위 활동이 국민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정권 성패(成敗)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朴槿惠) 당선자의 인수위는 역대 인수위와는 달리 구성과 운영에서 새로운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무분별한 정책생산보다는 공약(公約)이행과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인수위를 ‘정치실세형’보다 ‘정책실무형’으로 구성했으며, 사회 분야가 고용복지, 법질서 및 사회안전, 여성·문화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이런 새로운 정치실험을 통해 인수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려고 한 것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 그런데 인수위 구성과 운영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박근혜 리더십’의 특성을 어렴풋하게 가늠해 볼 수 있다.
▲ 박근혜 당선자가 작년 12월 19일 당선 축하를 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朴槿惠 리더십의 특징
萬機親覽형 리더십
박근혜 리더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이다.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피는 것과 같이 박 당선자는 인수위원장부터 분과위원에 이르기까지, 검증과 평판·여론을 하나하나 직접 꼼꼼히 챙겼다.
김용준(金容俊) 인수위원장과 윤창중 대변인은 인수위원 인선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이렇다 보니 이들은 ‘인선배경’을 언론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김 인수위원장이 인수위 인선 발표가 끝나자마자 윤 대변인과 함께 부리나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간 것이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배경과 취지 설명도 없이 그저 그런 줄만 알라는 일방 통보식 인사방식이 박근혜 정권 내내 계속되지 않을지 걱정”이라면서 “대변인조차 인선배경을 설명하지 못하는 밀봉인사, 깜깜이 인사는 국민에 대해 무례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만기친람형 리더십’이 ‘수직적·폐쇄적 리더십’으로 연결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박 당선자는 1998년 정치입문 이후 15년째 호흡을 맞춰 오고 있는 이재만·정호성 전(前) 보좌관 등 최측근 인사들과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보다는 소수(少數)의 제한된 인적 풀 속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종종 민심(民心)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대선(大選)과정에서 불거진 과거사(過去史) 논쟁에서 당시 박근혜 당선자가 보여준 언행이었다. 박 당선자는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해 언론의 집중 포화(砲火)를 맞았다. 위기에 몰리자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대응도 유사했다. 박 당선자가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해서 전향적(前向的) 해결책을 기대했지만, 박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개인 소유가 아닌 공익재단임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박근혜 당선자가 종종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는 일을 반복하는 근본이유는 대화와 토론이 없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만기친람형의 폐쇄적 리더십은 여태껏 그랬듯 향후 대통령 측근 몇몇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비전·메시지 수시로 바뀌어
▲ 지난 1월 4일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윤창중 수석대변인에게 명단이 적힌 용지를 건네주고 있다.
둘째, 거래적(transactional)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거래적 리더십은 일관성 있는 국정비전과 철학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현실주의적 리더십의 성격이 강하다.
거래적 리더십에 능숙할 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은 리더가 상황에 맞춰 수시로 비전과 메시지를 바꾼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지난해부터 대권을 향해 걸어오면서 신분이 바뀔 때마다 국정 키워드를 바꿨다. 지난해 7월 대선 출정식(出征式)에서는 ‘국민행복’을 키워드로 제시하며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를 이뤄 내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일자리·복지였다.
하지만 8월에 열린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는 ‘국민대통합’과 ‘정치쇄신’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대선이 한창이던 10월에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론’을 들고나왔다. 대선에서 승리한 12월 19일 밤에는 ‘민생대통령·약속대통령·대통합대통령’이라는 대(對)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인수위 출범 직후에는 ‘국민 안전과 경제부흥’, ‘사회적 자본 구축을 통한 신뢰사회 건설’, ‘중소기업 대통령’, ‘따뜻한 성장’ 등을 제시했다.
이렇게 국정 키워드가 수시로 변하면 향후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신한국 창조→국제화→세계화→역사 바로 세우기 등으로 국정 키워드를 바꿨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친(親)서민→공정사회로 시간이 흐르면서 바꿨다. 이는 거래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었고 구호정치의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 3.0’에 反하는 不通리더십
셋째, 불통(不通)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인수위 출범 첫날부터 직접 ‘보안(保安)’을 강조하며 입단속을 주문했다. 이를 존중해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모든 직원은 재직기간에는 물론 퇴직한 후에도 그 직무와 관련해 알게 된 비밀을 대통령직 인수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런 몇 가지 사항이 준수되지 않으면 지위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법령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창중 대변인은 첫 정부 업무보고 후 “구체적인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서는 브리핑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인수위가 마치 왕조시대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열리는 어전(御前)회의를 보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인수위의 이런 행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 정부가 추구하는 운영기조와도 배치(背馳)된다. 박 당선자는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한 ‘정부 3.0’ 시대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3.0’은 일방향(一方向)의 ‘정부 1.0’을 넘어 쌍방향(雙方向)의 ‘정부 2.0’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행복을 지향한다. 공개(公開)·공유(共有)·협력을 정부운영의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인수위 초기 활동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박근혜 리더십이 공유, 소통, 배려 등 21세기 시대정신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편의주의적 원칙주의 경계해야
박근혜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아버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통치 리더십을 좇아서는 안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侍女)’로 전락시켰고, 이익집단의 활동을 억압했으며, 언론활동도 통제하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BA모델·Bureaucratic Authoritarianism)를 추구했다. 또한 국가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했지만, 국가가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본과 금융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그야말로 초(超)권위주의적 리더십을 펼쳤다. 대통령 선거와 임기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5년 단임제(單任制)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자가 어떻게 아버지를 좇아갈 수 있겠는가? 세상은 바뀌었고 대통령의 역할과 대통령직에 대한 기대 자체가 변했다. 박 당선자는 변화된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무엇보다 소통과 통합의 민주적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이런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고 관용(tolerance)의 정신을 받드는 것이다. 타협하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관용은 시혜(施惠)가 아니다. 내가 맞고 옳지만 양보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정에 실패한 근본이유는 이런 민주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만과 독선(獨善)에 빠졌기 때문이다. 박 당선자는 유독 원칙과 신뢰를 강조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만을 지키는 ‘편의주의적 원칙주의’와 ‘소통 없는 원칙주의’는 독선과 아집의 리더십으로 흐를 수 있다.
정치 무시하면 실패
둘째, 정치를 배제하는 ‘행정 주도형 리더십’을 펼쳐서는 안 된다.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이후 몇 차례 인사에서 친박(親朴)계 정치 실세들을 중용(重用)하지 않았다. 이는 인수위 시작부터 정치적 ‘파워게임’이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용인술(用人術)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중견 언론인의 지적대로 “박 당선자가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박근혜가 이런 사람을 ‘선택했다’고 점수를 줄 대목은 없었다.”
이번 인수위는 철저하게 관료(Bure aucrats)와 학계(Academy) 인사들로 구성된 ’박근혜식 BA 모델’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을 제외한 22명의 인수위 분과위원 중 전·현직 대학교수가 16명(72.7%)이고 관료 출신이 6명(27.3%)이었다.
한번 쓴 사람은 끝까지 신뢰한다’는 박 당선자의 인사 스타일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선대위(選對委)에서 박 당선자의 대선공약을 개발했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출신 인사가 전체의 60%에 달했다. 인수위는 당선인의 대선공약과 정책비전, 국정운영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됐다고 주장하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박근혜식 ‘회전문 인사’, ‘코드 인사’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기우(杞憂)일지 모르지만 관료와 학계 중심의 박근혜 인수위는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준거(準據) 틀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시대가 바뀐 현 상황에서 ‘정치를 무시하고 행정만을 중시하는 국정운영 모델’로는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런 ‘BA 모델’은 외형상 ‘전문가형·실무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순응형·피동형’의 모습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정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 참모들은 대통령의 의중에 무조건 순응하고 중요한 쟁점사항에 대해 정무적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일이 반복될 위험성이 크다.
過去史 논란에 빠지지 말아야
▲ 1978년 4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서울대 캠퍼스를 둘러보는 박근혜 당선자. 박 당선자는 아버지의 리더십과 과거사문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만약 비(非)정치인으로 구성된 이번 인수위가 ‘정치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쇄신의 대상’이라는 박 당선자의 신념과 인식 속에서 구성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는 더럽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 속에서 정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탈(脫)여의도 정치’에 몰입하면서 집권 초기부터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풀려다가 실패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세종시 갈등도 어설픈 효율성만 강조한 채 정치를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박 당선자도 정치를 무시한 채 행정 제일주의에 빠지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을 수도 있다. 박정희 유신(維新) 체제 비극의 근본원인도 행정이 정치를 무시하고 압도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과거사 논쟁에 스스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보진영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대선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박 당선자의 과거사 인식 때문이었다. 만약 박 당선자가 ‘역사전쟁’을 벌일 경우 정국은 진보진영의 총결집과 야권의 파상공격 속에서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48%와 정면 대립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법, 언론개혁법, 사학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간의 극단적 대립과 여야(與野)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때 노무현 정부에 대해 “민생과 상관없는 이념에 빠져 나라를 두 쪽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었다. 따라서 박 당선자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민생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과거사 문제에 대해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는 전향적인 해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과서포럼 대표로 역사논쟁의 중심에 섰던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교수나, 대선 기간 중 야권을 거칠게 비판했던 윤창중씨를 인수위에 중용한 것은 잘한 인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3년
넷째, 취임 1년을 성공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는 헌법상 5년이지만 실제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3년 정도이다.
<그림>은 현직 대통령과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첫해 분기별 지지율 추이를 분석한 것이다. 모든 대통령들은 취임하자마자 70~80%대의 높은 지지율을 받았지만 1년이 지난 4분기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20%대까지 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집권 3개월 만에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급락(急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DJ(김대중 대통령) 측근의 대북송금(對北送金)에 대한 특검(特檢)을 실시했고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것은 호남 및 김대중(金大中) 세력과의 정치적 결별을 가져왔고 특정 지역의 지지기반을 상실한 노무현 정부는 집권 5년 내내 야당인 한나라당에 끌려 다녔다. 집권 후에 실시된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0대 40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만 옳다’는 친노(親盧) 집권세력 특유의 편가르기도 정치적 고립을 자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 표라는 압도적 차이의 승리에 도취돼 정권출범 직후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당내 비주류(非主流)였던 친박(親朴) 인사들에 대한 공천학살을 했다가 이들의 조직적 반발로 공천파동을 겪었다. 뒤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졸속 협상으로 촛불시위에 직면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 만든 선거연합(electoral coalition)을 깨 버리고 새로운 통치연합(governing coalition)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주도하라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경우, 정권 출범 2달 만에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참패해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만들어졌고, 국정 주도권을 야권에 넘겨줬다. 이 상황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야당과 타협하면서 국정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집권 초기 지지율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집권 초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강도 높은 개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80%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취임 1년을 두 달 남긴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던 쌀개방을 허용하면서 지지율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서 경제 주도권이 취약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竝行)발전을 약속했지만 개혁 대상인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와의 공동정권으로 인해 정치개혁을 할 수 없었다. 또한 구조조정 정책이 지나치게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 시장경제의 정착에도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정권 출범 후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취임 1년 성공을 위해 역대 대통령들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대선 때 만들었던 선거연합을 깨지 말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몇 가지 딜레마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중소기업 프렌들리(friendly)’ 정책을 펼치면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보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아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과 만나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희망의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만들어야 우리 경제도 선진경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지원책을 펴면 과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 통치기간 동안 이룩한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5년 단임 대통령이 중소기업 중심 구조로 바꿀 수 있을까?
둘째, 안보와 신뢰를 강조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충격 속에서 박 당선자가 안보를 더욱 강화하면 북한과의 긴장관계는 고조될 것이다. 반대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안보를 외면하면 보수층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이다.
박 당선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딜레마는 신뢰가 조건이 되어 버리면 MB(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인 ‘비핵·개방 3000’과 차이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비핵·개방이 결과가 되어야 하는데 조건이 되어 남북관계가 경색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3차 핵실험 강행 등 신뢰를 깨는 행위를 했을 경우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것도 집권 초기에 안보불안이 조성될 경우 민생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박 당선자는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戰時)작전권 환수를 이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럴 경우, 미군의 공백으로 발생하는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점진적으로 국방예산을 늘려야 한다. 복지예산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재원(財源)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더구나, 박 당선자는 증세(增稅) 없는 복지를 약속했는데 과연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있겠는가?
책임총리제는 성공할 것인가
셋째, 권력분산 차원에서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실시하면서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야 하는 딜레마이다.
집권 초기에 새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가장 강력하다. 국민은 새 대통령이 힘 있게 정책을 펴도록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책임총리제와 같은 새로운 국정운영 실험이 과연 효율적으로 적용될지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넷째, 새 정부가 맞닥뜨릴 대내외 환경은 결코 녹록지가 않은 상황에서 ‘중산층(中産層) 70% 복원(復元)’과 같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이다.
경제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外生的)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휘청거렸던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위기에 휘청거리고 있고, 국내에서는 취업난과 양극화(兩極化)가 심화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高齡)사회 진입으로 재정악화, 저(低)성장 등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연초부터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들의 물가가 줄줄이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이 너무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쪽은 엔화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 10일까지 16.9% 절하됐다. 일본의 무제한 양적(量的)완화 정책의 여파로 보인다. 수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해외 투기금융마저 빠르게 국내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근혜 인수위의 경제분과에는 예산과 중소기업 전문가만 있지 금융 및 통상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플랜B를 준비하라
만약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를 맞게 되면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정책 우선순위는 다 바꿔야 한다. 물가는 치솟고 수출은 감소하고 실업은 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금융위기는 고조되며 북한의 위협이 강화되는 등 집권 초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정교한 ‘플랜 B’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선거운동에서의 승자(勝者)가 반드시 청와대에서의 승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박근혜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새 정부가 지극히 취약한 통치환경 속에서 출범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당선자가 아버지보다 더 나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를 무시하지 말고 더 열린 자세로, 더 투명하게, 더 소통하면서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야당과도 연정(聯政)하는 자세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하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소모적인 과거사 논쟁에 스스로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박 당선자가 강조하는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새 대통령에 대한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다는 점을 잊지 말라.⊙
김형준 / 명지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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