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의 글방이 필요해요!
너희는 우리를 묻어버리려고 했지.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씨앗이라는 것을 잊었지!
-(<<돌봄 선언-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 북스, 2022, 152쪽)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한 김0환, 그는 이황화탄소 중독증으로 여생을 고통스럽게 지냈다. 망막증(망막의 혈관이 붓고 출혈, 박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실명을 포함한 강한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병), 뇌혈관 장애로 인한 초점성 증후(운동, 감각, 언어 등 여러 중추의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병), 추체외로 징후(대표적으로 파킨슨씨 병), 말초신경 장애(운동신경, 감각신경, 자율신경계에 장애가 나타나는 것(<<생명의 증언>>, 28쪽)을 앓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진료를 받아도 정확한 병명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고통에 휩싸여 있다가 갑자기 1991년 1월 5일에 쓰러져 죽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오랜 고통이 직업병임을 증명하기 위해 원진레이온을 수차례 방문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시신을 계속 영안실에 둘 수는 없는 노릇. 가족은 상의하여 3월 초에 시신을 장례 치르기로 결정을 한다. 장례를 치를 때 우리는 고인이 가장 사랑했거나 투혼했던 장소를 한 바퀴 돈다. 관례대로 유족은 가장이 가장 열심히 일했던 회사를 한 바퀴 돌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회사 측에서 정문 앞에 경비원을 수십 명 배치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고인을 이황화탄소 없고, 직업병도 없는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이 바람은 다시 원진레이온 정문 앞에서 137일간 좌절된다. "보상금에 눈이 멀었냐.", "시신 가지고 장사질이냐!"라는 비난은 그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김0환의 부인은 품위있게 맞선다. "남편이 직업병으로 쓰러진 것을 확인하는 길만이 고인에 대한 예의이고 고인의 비극이 다시 다른 노동자들에게 반복 발생하는 상황을 절대 막아야만 한다."
"고인의 비극이 다시 다른 노동자들에게 반복 발생하는 상황을 절대 막아야만 한다." 김0환의 가족은 피해자로 남아 보상을 받는 것으로 끝나려 하지 않았다. 다른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를 계속 마시며 석유에서 섬유를 뽑아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일해야 한다면 제대로 된 안전 시설이 갖춰져 있고 유독 가스를 제대로 정화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2년, 일본 도레 공장에서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노후 기계를 들여와 전쟁 피해 배상금을 다시 일본 기업에 돌려주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면 정부가 잘못을 시인하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런 기계에 코를 박고 일해야 할 정도로 사람을 혹사했다면, 회사가 노동자들이 겪는 다양한 증상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애타게 외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람의 고통을 '수익성 악화'로만 여기는 회사는 잘못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전한 군사정권에 아부하는 자들이 사장 자리에 들어오기가 부지기수니 기업이 쇄신될 리 없었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회사의 폐업으로 너무 쉽게 연결되었다. 고통스러운 신체를 이끌고 피해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폐업을 철회하라. 원진 레이온에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모든 사람들을 전적 보상하라!"
비극은 연쇄한다. 나전모방이라는 기업에 의해서다. 원진레이온이 경영 위기에 처하고 폐업 결정이 내려지자 산업 은행은 부동산 전체를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입찰 과정에 응한 기업이 나전모방이다. 산업 은행은 고철 덩어리를 매각하기 위해 입찰을 진행했지만 나전모방은 이 고철 덩어리들을 암암리에 중국 랴오닝 성에 팔아넘긴다. 1961년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일본 도레 공장으로 건너 가 이황화탄소의 위해성을 알지 못한 채로 산업 연수를 받고 돌아와 공장을 가동시켰던 역사를 중국에 다시 수출해 버린 것이다. 피해자의 유족과 대책 협의회는 다시 모였다. 우리의 고통이 다시 저들의 고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전모방에 항의 편지를 쓰거나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원진 레이온의 기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중국 대사관에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중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처럼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투쟁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일본 민의련, 시민 단체 등과 손을 잡고 기계 수출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였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서 단합하고 성사시킨 산재 직업병 인정 제도는 사회 복지 안전망이 전무했던 우리나라에 여러 제도를 빨리 안착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랑은 혁명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생명의 증언>>(초판 1쇄, 2017, 건강미디어협동조합)을 읽으면서 혁명적인 사랑이라는 것의 형태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두 아이를 사랑하며 발휘하는 에너지, 그 속에서 솟아나는 안온함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는 힘, 그러니까 식사를 준비하고 내일 입을 옷을 정성껏 챙기며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서로의 공간을 치우는 이 모든 일은 내일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사회 나가서 힘을 발휘해 제 역할을 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사랑이 혁명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일했던 회사에, 지친 몸으로 한 번 올려다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들어가는 사택에 반기를 드는 힘이 필요하다. 때론 그것은 죽기를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일이다. 가치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들의 힐난을 견디고, 내가 열렬히 사랑한 곳을 스스로 찌른다는 자책감을 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려고 할 때 이를 회유하는 달콤한 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겠다는 약속 등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렇게나 생기지 않는다. "고인의 비극이 다시 다른 노동자들에게 반복 발생하는 상황을 절대 막아야만 한다."는 적극적 사랑의 힘이 노동자들을 견디게 했다. 사랑으로 자신이 딛고 있는 죽음의 땅을 소생시키려는 사람들을 소명감으로 돕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어떤 앎은 길을 잃게 만든다.(삶의 발명, 초판, 위고, 23쪽)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민폐가 된다는 말, 각자도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 노후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말 등이 그러한 것이다. 우리를 힘빠지게 하고 때로는 우울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어떤 앎은 중요한 곳으로 데려다(23쪽) 주기도 한다. 사랑할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낫다는 것, 길을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만들 수 있으면 더 좋을 것(23쪽)이라는 진실은 우리를 힘이 나게 한다. 원진 레이온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과로하면서 거꾸로 된 이황화탄소 배출구에 코를 박고 일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원칙에 따른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고통을 "계집질하고 술이나 먹으니 중풍에 걸리지.", "보상금 노리고 있네."라는 말로 조롱까지 했다. 그러나 원진 레이온 노동자들은 이후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열심히 직장에서 일했을 뿐인데 그것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가치 있는 노동이 기피하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정부와 싸우고 산업은행 총재와 싸우며 기금을 만들고 직업병 전문 병원인 녹색 병원을 만들고 확장까지 했다. 이 이상의 큰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한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경멸한 적이 있다. 무슨 소리냐고. 그저 태어났으니 사는 것, 살아야 하니 견디는 것이지 세상에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발명>>(2022), <<생명의 증언>>(2017)을 읽다 보면, 사람은 정말 사랑받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과연 열심히 일한 댓가로, 한때 성실히 학교를 다닌 댓가로 휴직을 누리는 것인가. 휴직 중이면서도 몇 개월 간은 잘 버티라고 월급을 받는 것인가. 직장에서 사고가 나면 직장에서 가입해준 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나의 노력 때문인가. 아니, 나는 더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피가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다 스카프로 수전에 목을 매고 자살한 여성 노동자를 생각한다. 뇌의 손상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가족을 패고 소리를 질렀던 원진레이온의 한 남성 노동자를 떠올린다. 그들의 아픔에 회사와 정부가 답하라고 가족들이 단합하여 소리치지 않았다면 나는 휴직과 그에 따르는 권리를 누릴 수 있었을까. 가족의 목소리에 의사와 과학자, 변호사들이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직장에서 다치고도 숨죽이고 있지 않았을까. 이들이 싸움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직업병 전문 병원까지 생겼으리라. 정혜윤 작가의 말대로, 사랑은 창조 행위(<<삶의 발명>>, 92쪽)인 것이다.
단 유족의 말이 나를 숙연하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런 유가족이 더는 없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 유한한 삶 속에 무한한 것은 오직 슬픔뿐인 것만 같은, 혼자서 겪어 내고 혼자서 감당해야 할 괴로움이 너무 많은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혜윤, <<삶의 발명>>(2022 초판), 위고, 92쪽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