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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김기곤목사 02 신학여행 마가복음의 내용과 배경
오늘은 우리 복음서 연구 두 번째 시간으로 마가복음서를 공부하겠습니다.
마가복음서의 내용과 배경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먼저 주제 성경절을 보시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유명한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마가복음 10장 25절이 마가복음의 주제입니다.
마태복음이 메시아 즉 왕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강조했다면 마가복음은 섬기는 자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시는 그런 섬기는 예수님의 모습, 종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종의 모습이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 예수님을 닮고 싶다 그렇게 말을 하는데 우리가 정말 예수님처럼 살고 싶고 예수님처럼 닮고 싶다면 종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섬기는 자로 사셨고 종으로서 사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면은 우리는 섬기는 자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핵심 기별 중에 하나입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라는 사람, 예루살렘에 사는 한 과부의 아들입니다.
그 어머니 이름도 역시 마리아죠. 근데 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마 집이 조금 컸는지 그 집 다락방에서 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가의 어머니는 뭐 성경을 잘 가르치거나 무슨 전도를 잘하거나 똑똑한 여성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늘 봉사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자기 집 다락방을 내놓고 누구든지 와서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또 그렇게 온 사람들을 식사를 대접하기를 즐겨했어요.
그래서 우리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이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 모였습니다.
여기 오면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고 언제든지 성경을 공부할 수 있고 언제든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언제든지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이 늘 이곳을 찾아서 기도했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예루살렘에 오시면
아마 여기서 머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다른 재능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봉사하는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사도행전에 보면 120명이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 충만함을 받았는데 바로 이 마가 집 다락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봉사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과부의 다락방이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도 이곳으로 임하셨고, 예루살렘 교회도 딴 데가 아닌 바로 이 다락방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곳이었죠.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다른 재능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것을 들여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세상의 역사를 변화시켰습니다.
이곳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퍼져서
순교하면서 죽음으로 복음을 전해가지고 마침내 오늘날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가의 어머니는 이 여인은 큰 일을 했습니까?
여러분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들이기 때문에 마가는 참 좋은 영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도 만나뵈었을 것이고 제자들도 다 아는 사이였을 것이고,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 겸손하면서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아름다운 이 믿음의 거장들을 자기 집에서 늘 만나면서 이게 누구 덕분입니까?
믿음 있는 어머니 덕분이죠. 봉사심 강한 어머니 덕분에 마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렇게 잘한 마가가 나중에 마가복음이라는 마가복음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참 그 어머니의 그 아들입니다. 그런데 마가에게도 단점이 있었습니다.
너무 귀엽게만 자라서 그런지 마가가 아마 의지력이 강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마가의 삼촌인 바나바가 1차 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가 조카인 마가도 추천해서 셋이 같이 1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1차 여행의 도중에 즉 구브로 섬을 거쳐서 반빌리아 지방의 버가에 갔을 때 마가가 거기서 일행을 버리고 집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왜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 그렇게 같이 힘차게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이 젊은이가 그만 돌아가 버렸는지 얼마나 바울과 바나바한테는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세 사람이 떠났다가 한 사람이 도중에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그것 때문에 제2차 전도여행 때 마가가 다시 같이 떠나고 싶어 했지만, 그러나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젊은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옳지 않다.
바울은 그랬어요. 바울이 뭐 마가를 개인적으로 싫어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1차 전도여행 때 마가가 돌아감으로써 큰 타격을 전도 활동에 주었기 때문에 이 젊은이를 또 데리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나바는 자기 조카이기도 하고 또 바나바의 성격이 원래 위로하고 권고하고 하는 걸 좋아하는 그런 온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나바는 마가를 용서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견이 달라서 각각 따로 전도여행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마는 어쨌든 바울같이 훌륭한 선생님이 이 젊은이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 것은 버렸다는 것은 마가한테는 큰 충격이고 타격이었을 겁니다.
굉장한 좌절과 열등감이 마가한테 생겼을 겁니다.
마가는 이렇게 마이너스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단점이 많은 젊은이였습니다.
열등감도 많고 그러니까 돌아갔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마가한테 배울 게 하나 있어요 마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바울한테 버림을 받고 18년 후에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감옥에서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 바울이 제일 보고 싶어한 사람이 누군지 여러분 아십니까?
바로 바울이 제일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 바로 마가입니다.
너희는 마가를 나에게 데리고 오라 그랬어요.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랬습니다.
18년 전에 마가를 쓸데없다고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 없다고 버렸는데, 18년 후에 마가가 마가를 보고 싶어 하면서 마가는 나의 일에 정말 유익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마가는 그동안 그동안 마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마가는 그동안에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단점을 잘 알고 자기가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인지 잘 알고 주님 안에서 그는 정말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마이너스를 단점들을 다 플러스로 바꿨어요.
주님 안에서 여러분 그게 신앙의 매력 아닙니까? 우리한테도 많은 단점들이 있습니다.
마가 못지않은 단점들이 우리한테 있죠.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배반하고 때로는 비겁하고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도 마가처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가는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삶이 달라져서 모든 사람들이 마가를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졌어요.
교회가 마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 젊은이로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지만 단점들이 많지만 다시 시작합시다.
우리가 운동 경기할 때 플레이 어겐이라는 말이 있어요.
다시 시작하자 처음부터 그래서 우리가 낙심이 될 때, 우리에게 단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될 때, 열등감이 많이 생길 때 우리 마가를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플레이 어게인 다시 시작합시다.
그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권 중에 하나이고 기쁨 중에 하나입니다.
언제든지 주님 안에서 다시 시작하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이 기쁜 소식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가장 크게 감격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시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가복음의 주제는 처음에 말씀하신 대로 섬기시는 예수님입니다.
종이신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화려한 예수님이 아닙니다.
동방박사가 찾아오는 것도 없고 그의 족보도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아요.
그는 완전히 이 세상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1장부터 열심히 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식사하실 겨를도 없으셨다는 말은 복음서에 두 번 나오는데 다 마가복음에 나옵니다.
식사하실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 종이신 예수님 그리고
즉시라는 말은 즉시라는 말이 마가복음에 참 많이 나옵니다.
유데우스라는 말인데 이것이 마가복음에 41번이나 나와요.
즉시 이리로 가셨다. 즉시 거기를 떠나셨다. 즉시 41번 얼마나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니시며 일하시는가 그런 예수님의 부지런한 모습을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잘 볼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제가 지난 시간에 모든 복음서는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침례받으시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 그게 첫 번째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뭡니까?
두 번째 부분이 갈릴리에서 봉사하신 것입니다. 3년 반 동안 그 다음에 세 번째 부분이 갈릴리 봉사를 마치시고 이제 돌아가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모습이 세 번째입니다.
네 번째 부부는 예루살렘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시면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설교하시고 그런 모습들이 또 나귀타고 입성하시고 종말적인 설교를 하시고 그런 모습들이 네 번째 부분에 있고 다섯째 부분은 이 재판을 받으시고 잡히셔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모습이 복음서의 다섯째 부분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정확하게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고 모든 복음서의 샘플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마가복음 16장으로 되어 있어요.
제일 분량이 작은데 마태복음 28장인데 누가복음 16장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장이 첫 번째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침내요 시험 광야에서 시험 봐도 좋고 그다음에 2장부터 9장까지가 두 번째 부분입니다.
갈릴리 봉사인데 정확하게 넷으로 구분해서 마가는 거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부터 9장까지 갈릴리 봉사 제1기 제1단계는 2장부터 3장 2장씩으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2장부터 3장입니다.
이때는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로도 고치시고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봉사가 나옵니다.
제1기 봉사 2장 3장 제2기 봉사는 두 장씩 돼 있으니까 몇 장입니까?
4장 5장. 제2기 봉사는 이제 갈릴리의 풍랑이 일고 건너편에 가서 그다음에 광인을 만나서 곧 예수님께서 고치시고, 그다음에 귀신들이 돼지대에 들어가서 2천 마리가 물사하고 또 그런 장면들, 그것이 제 또 야이로의 딸을 고치시고 혈루병 들린 여자를 고치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이 제2기 봉사입니다.
제 3기 봉사는 몇 장 몇 장이겠습니까? 이제 2 3, 4 5 했으니까 그다음에 67이죠.
6장과 7장은 제3기 봉사입니다. 삼기 봉사는 침내 요한이 죽습니다.
침내 외관이 죽은 다음에 온 민족이 다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 5천 명을 갈릴리 언덕에서 먹이시는 큰 이적을 행하시고 그날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셔서 풍랑을 헤치고 가셔서 제자들을 살리시고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 그렇게 말씀
하시는 이 모든 것들이 제3기 갈릴리 봉사에 들어갑니다.
제4기 갈릴리 봉사는 이제 몇 장 몇 장이겠습니까?
8장 9장이겠죠. 제4기 갈릴리 봉사는 이제 5천 명을 먹이셨는데 4기 갈릴리 봉사는 4천 명을 먹이시고 그다음에 가이사라 빌립보에 지나가시면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로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으시고 그다음에 마침내 변화산에 가셔서 변화하시고 이것이 이렇게 해서 갈릴리 봉사가 마칩니다.
변화산에서 있은 사건 뒤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에 갈릴리 봉사는 이것으로 다 마치는 것이죠.
이렇게 2장부터 9장까지 갈릴리 봉사 1기 2기, 3기 4기에서 갈릴리 봉사를 다 마치시고, 10장에는 세 번째 부분 즉 갈릴리 지방을 떠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장면이 10장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거죠. 그다음에 네 번째 부분은 몇 장부터 시작하겠습니까?
10장 예루살렘을 가니까 11장부터 11 12 13장까지 해서 이제 예루살렘에 나비 타고 입성하시고 그다음에 그 향유를 바르시고
그런 장면들 또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또 13장에서는 종말적 예수님이 재림의 징조를 종말적인 설교를 말씀하시고 이렇게 해서 일주일 동안의 순환 중간에 예루살렘 봉사를 마칩니다.
그다음에 14 15 16은 3장에 걸쳐서 마지막 부분인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십니다.
14장은 게스세마르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가야바의 법정에 잡혀가시고 15장은 빌라도한테 재판을 받으시고 그다음에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16장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마지막 부분 다섯째 번째 부분이 마치죠. 이게 마가복음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 10분만 공부하시면 마가복음 전체를 이렇게 저처럼 일목요연하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예요.
요한복음만 빼고 마지막으로 마가복음의 특징을 이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짧아가지고 특별한 특징이 없습니다마는 짧은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입니다.
마태복음이 28장까지 되어 있고 누가복음 21장, 요한복음 24장까지 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은 짧게 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짧은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인데 짧지만은 중요한 기적과 중요한 사건은 제일 자세한 설명을 한 것이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설교하실 때 주로 본문을 마가복음에서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이 제일 자세해요. 작긴 하지만 그 대신 마가복음에는 생략한 것들이 많죠.
다른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많이 생략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특징은 마가복음에서는 우리가 베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마가복음을 어떻게 마가가 기록할 수 있었겠냐 마가는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이렇게 자세한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느냐 눈으로 본 듯이 그렇게 말하지만은 이것은 분명히 마가가 기록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베드로가 마가한테 말해준 것입니다.
마가는 베드로를 12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면서 수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가의 통역자로 일했다고 그렇게 책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세월 마가는 오랜 세월 베드로와 함께 다니면서 베드로가 말씀하시는 것을 저녁에 충실하게 적었을 것입니다.
막아야 그때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마가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 존경하는 스승 베드로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가복음에서는 여기저기 베드로의 음성이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알고 마가복음을 읽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또 베드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우리가 또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뭔가 하면 분명히 과거에 있었던 일인데 현재형으로 나오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거 문법적으로 틀린 것처럼 생각되죠 그때 예수님께서 갔었다.
그렇게 과거로 말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가신다 이렇게 현재형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그걸 틀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게 사실 틀린 게 아닙니다. 헬라어 문법에는 과거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지금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각될 때에는 그 생생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 현재형으로 쓰는 것 그런 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문법에서 히스토리컬 프레젠트라고 합니다.
역사적 현재 용법이라고 하는데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저자가 지금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현재 용으로 쓰는 용법이 있어요.
마가는 마가복음에는 그런 용법이 나옵니다. 중풍병자 이야기라든지 중요한 이야기에서 이 마가복음은 현재 과거이지만 현재 걸 쓰고 있는데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것은 의 베드로가 하는 회상을 그대로 받아 적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마치 그때의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것처럼 그렇게 느껴서 자기도 모르게 현재형 동사가 나왔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이죠. 이것이 생생한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삶속에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예수님께서 오늘 살아계십니까?
그분의 말씀이 오늘 이 순간 나의 현재입니까? 내 실제입니까?
2천년 전의 성경 말씀이 오늘의 나를 인도하는 오늘의 내 말씀입니까?
이렇게 신앙은 오늘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도 오늘의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2천년 전의 구원이 아니라 내 어머니의 구원이 아니라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이 아니라 주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이 약속과 믿음, 그리고 오늘 나에게 오는 이 구원 이 생생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 현재형 믿음 현재형 신앙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에서 우리가 배울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도처에서
베드로의 그 생생한 간증이 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마가복음을 읽으면 훨씬 더 감동이 있습니다.
또 다섯 번째는 마가복음에는 정감어린 표현이 많습니다.
아주 생생하고 극적인 그런 표현들이 많아요.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회상하면서 묘사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만큼 아주 생생하고 정감 있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5천 명을 먹이실 때 그 잔디밭이 푸른 잔디밭이었다는 걸 기록한 것도 역시 마가복음만 그렇게 했습니다.
색깔이 확 살아나요? 푸른 잔디에 5천 명이 모였다.
베드로가 그때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베드로한테는 지금 푸른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지고 거기에 앉은 5천 명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어린아이를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안 오셨다 이런 표현 참 정감어린 표현이죠.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사랑하셨다라는 보다 어린아이를 불러 그 품에 안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그런 묘사입니까? 그런 아름다운 그림입니까?
이런 표현이라든지, 또 예수님께서 마지막 돌아가시러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제자들 앞서 혼자 가셨다.
여러분 그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얼마나 쓸쓸한 모습입니까?
아무도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해 주지 않아요. 다 인간적인 권세를 가진 왕이 되기를 원하시지, 십자가를 다 원하지 않아요.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그걸 몰라줍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아요.
십자가는 눈앞에 기다리고 있어요. 그때 제자들 앞서 혼자 휘적휘적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외로운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그 마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감어린 표현이 마가복음 여기저기 나옵니다.
이건 베드로의 느낌이고 베드로의 마음이죠. 게센만의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깨어서 기도, 나를 위해 기도하라 그렇게 부탁하고 가셔서 기도하시고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오시니까 제자들이 다 잤습니다.
베드로마저 잤어요. 예수님께서 그래도 사랑하시고 그래도 의지하고 싶은 베드로마저 자요.
그 예수님께서 마가복음에 보면 하도 섭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모나 너 자느냐 그래서 심모아 자느냐 얼마나 예수님이 참 그 섭섭함이 묻어나는 말씀입니까?
잠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모나 아마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잊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음성을 그래서 마가복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모나 차느냐 여러분 우리가 마가복음에 대해서 말하자면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간단한 16장이지만 끝없는 사랑과 후회와 용서와 기쁨과 감격이 이 메아리치는 것이 마가복음이죠.
베드로의 사랑과 베드로의 절망과 또 베드로의 회개와 그 모든 것들을 다 우리 마가복음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그날 밤에 제자들이 도망칩니다.
12명 중에 10명이 도망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안 잡히시면 몰라도 예수님께서 잡히시면 끝이라는 것을 제자들이 잘 알고 있어요.
그동안 직접 간접으로 제사장 바리새인들과 또 백성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잡히시기만 하면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제자들이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날 밤에 잡히시는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제자들이라고 해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달리는 걸 의미했어요.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십자가가 너무도 무섭기 때문에 도망쳤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지만 십자가는 지기 싫었어요.
여러분 우리도 그럴 때가 있죠. 우리도 참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은 무엇은 망설이는 신앙을 가질 때가 많습니까?
십자가의 고통은 같이 나누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으로 믿음의 생활을 할 때가 있죠.
지난번에 한국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통을 한번 체험해보려고 십자가를 메고 거리를 행진하는 그런 행사를 기독교에서 했는데 기독교 단체에서 제가 그 사진을 보고 그 충격을 받았어요.
십자가를 베고 거리를 행진하긴 해야 되겠는데 십자가가 너무 무거우니까 사람들이 가볍게 십자가를 끌고 갈 수 있도록 십자가 밑에 큰 바퀴를 달았어요.
그래가지고 어깨에 매고 밑에는 바퀴가 달려서 끌고 갑니다.
그 제목이 뭐냐 하면 바퀴 달린 십자가예요.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바퀴 달린 십자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바퀴 달린 십자가를 끌고 가지는 않습니까?
그날 밤 제자들이 그랬어요. 도망쳤습니다. 그렇지만은 그날 밤에 도망치지 못하는 제자가 둘을 있었습니다.
차마 도망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이 두 명의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여러분 누군지 잘 아시죠?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하는 요한과 죽는 데까지 같이 가겠다고
그렇게 말한 베드로 이 두 사람 두 사람은 도망칠 수는 없어요.
여러분 우리도 도망칠 수는 없죠. 우리도 이제는 따라가기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도망칠 수는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 따라가긴 했지만 이 복음서에 보면 두 사람이 그날 밤 예수님을 따라가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여호와는 예수님을 그날 밤에 바짝 따라갔어요.
예수님이 가야바의 법정에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매를 맞으시는 그 장소까지 바짝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함께 나눴죠. 바짝 따라갔어 그렇지만 베드로는 따라가기는 따라갔지만, 이 마가복음 14장 54절에 보면 따라가는 그 태도가 영한하고 다릅니다.
어떻게 따라갔다고 되어 있느냐 하면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느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멀찍이라는 것이 무슨 태도입니까? 안 따라갈 수는 없지만 사랑하니까 따라가기는 하지만은 십자가만은 피해보겠다 그런 태도 아닙니까?
멀찍이
베드로는 이것을 영리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영리한 신앙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요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렇게 바짝 따라가다가는 큰일 나지 아마 그랬을 겁니다.
따라가 따라가지만 그래도 나처럼 잘 봐서 따라가야지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래야 편하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멀찍이 따라간다는 것은 편할 것 같아도 절대로 편하지 않습니다.
이 멀찍이 신앙 믿긴 믿지만은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지만은, 그래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기는 하지만은 그러나 멀찌기 이게 여러분 영리한 것 같아도 편한 신앙 같아도 참으로 힘든 신앙입니다.
멀찌기는 괴롭기 짝이 없는 신앙이죠. 베드로는 철저히 그걸 느꼈습니다.
그날 밤 멀찍이 따라가다가 한 여자 하인이 당신도 제자지 그 한마디에 그냥 사랑하는 스승을 세 번이나 배반했죠.
개센마네 동산에서 통곡하고 울면서 그는 멀찍이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을 처절하게 느낀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신앙을 할 바에요. 믿을 바예요.
바짝 믿어야 합니다.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요한처럼 편합니다.
요한은 바짝 따라갔더니 죽는 것 각오하고 따라갔더니 어디 가든지 그는 편했어요.
살기도 아주 오래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67년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지만은 요한은 95살이 넘을 때까지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잘 살았어요.
여러분 그래서 편한 신앙을 하시려면 바짝 따라가야 합니다.
죽는 것까지도 맡겨버리면 그다음부터는 편한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기도도 편하고 그다음부터는 믿음으로 사는 것도 편하고 여러분 이게 바짝 따라가는 것이고 절대 신앙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신앙을 우리가 막아보면서 배웁니다.
이런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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