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을 따라 철쭉꽃이 활짝피어 봄이 무르익는 계절에 아파트 주차장에 소형차 한 대가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지붕에 칼갈이 무료봉사라는 별모양의 표지판이 붙어 있다. 차 안에서는 인상이 좋으신 아저씨 한 분이 스르륵 소리나는 모터에 칼을 갈고 계셨다.
▲ 칼 가위 무료로 갈아드립니다. 사진=김은호 © 인디포커스 |
▲ 소형차 안에서 칼고 가위를 갈고 계시는 임병관 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 인디포커스 |
기자는 조심스럽게 “칼 한자루 가져와도 될까요?“라고 여쭤보니 말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있는 칼 가위 모두 다 가져오세요“라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신다. 집에 들어가 잘 들지 않아 방치해 둔 칼 8자루와 가위 2개를 바구니에 담아오니 벌써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아저씨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칼을 갈고 계셨다.
자주 사용하는 2~3개의 칼을 제외하면 방치해 둔 칼이 무려 5개, 요즈음은 칼을 갈아 쓰기 보다는 새 칼을 구입해서 쓰는 집이 더 많다고 한다. 칼갈이 아저씨의 말씀을 들으니 칼 한 개 가는데 예전에는 1,000원 2,000원 하다가 지금은 5,000원이라고 하신다. 그나마 칼을 갈아주는 곳이 집 가까이에 없다보니 칼을 갈아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더 많아서 새 칼을 구입하는 것일 게다.
▲ 칼과 가위를 무료로 갈아주시는 임병관 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사진=김은호 © 인디포커스 |
▲ 임병관 님이 갈아놓으신 칼과 가위가 주인이 찾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은호 © 인디포커스 |
”칼·가위 무료봉사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기자가 여쭤보니 환한 얼굴로 양주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시다 퇴직하시고 2006년도부터 칼갈이 무료봉사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자식들도 잘 자라 분가하고 연금을 받으니 사회에 봉사활동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80세까지만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시작하셨는데 이제는 사는날까지 쭉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코로나 때 2년을 쉬었기 때문에 17년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셈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고양시 아파트에 처음 방문하신 때가 2006년, 그 때는 ”8kg짜리 모터를 배낭에 넣어 메고 다니면서 시멘트 맨바닥에 앉아 칼갈이 봉사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소형차 안에 모터를 설치해서 다니니 너무 편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2학년때 6.25를 만나 정말 힘들게 살아왔는데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은 천국“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연세에 비해 20년은 젊어 보였다.
오늘 오전 이곳 아파트에 도착해서 잠시동안 칼갈이 타이머에 찍힌 개수가 69개, 매년 ”63개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면서 17년동안 28만개의 칼과 가위를 무료로 갈아주셨다“고 하셨다. 한 가지 애로점은 ”1년에 한번 꼴로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다 보니 아파트 관리소장이 새로 바뀌면 잡상인이라 생각하는지 못 들어오게 막는 경우가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으시고 무료봉사활동을 이어 가신다니 참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아저씨! 아니 교장선생님! 복 받으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