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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옥 시집 / 텃밭
책 소개
이선옥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텃밭』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총 5부(텃밭3 외 79편) <1부; 아주 아주 질기다/ 2부; 한 생애를 살면서 날마다 꽃 피우는 일/ 3부; 조금씩 나를 보내고 싶어 한다/ 4부; 사랑도 느닷없이 내리는 눈처럼 왔다/ 5부; 나 강물이 되어 말하리라>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김성우 시인의 해설<텃밭, 삶의 겨울과 봄>이 실려 있다.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작은 고랑 다섯을 만들어 씨앗 뿌리며
열매 거두는 날을 손꼽을 때가 있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감자 싹이 땅을 밀고 올라올 때부터 감지했지만
아버지에게 이 노래를 바치고 싶었다
인적 드물고 바람만 무심하게 왔다 가는 것 같아도
텃밭에서 내 인생의 측면을 따라
벅찬 사념들이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천지간에 사람 말고도 아름답고 이쁜 것들이
참 많이도 내 곁에서 모여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텃밭에서
견고한 슬픔의 뿌리 내리며 견디다가
기어이 돌아갈 것이다
아버지께 이르는 길을 하나 내리라.
-序文
해설
텃밭, 삶의 겨울과 봄
김성우(시인)
시는 필연적으로 삶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삶의 공간은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환경적 삶의 공간과 직관적이고 주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의식세계의 삶의 공간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이 두 개의 공간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변천의 모습을 나타내며 인식에 의해 확장 축소를 반복한다. 그런데 물질·환경적인 삶의 공간은 인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측면이 많은 반면, 의식세계의 공간은 한 번 악화되면 극복하기 힘든 절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두 공간의 위기는 빈부의 심화, 물질 우선의 가치관 등으로 인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삶의 위기는 진작부터 시작된 것일까. 오늘날 삶의 위기의 근본 원인은 기계문명의 참혹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기계문명의 참혹성은 소통의 부재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오늘날 시가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참혹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찰한다면 무엇보다도 독자와의 친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언어, 익숙한 공간을 통한 친밀의 정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재 발표되고 있는 많은 시들이 친밀의 정신을 외면하고 난해한 시어와 새로운 형식에 너무 치우쳐 전문적으로 문학을 접하지 못한 많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이선옥 시집 『텃밭』은 희망적이다. 이선옥 시인의 시적 공간의 익숙함이 그것이며 시인의 시어에서 오는 친밀한 정서가 그것이다. ‘텃밭’에서 생동하는 소통의 공간은 시인과 독자와의 애정을 넘어 기계문명의 참혹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전통적 삶을 지켜내는 친밀의 발광체가 될 것이다.
1. 한 뼘씩 자라나는 생명, 텃밭
봄이 오려다 겨울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텃밭엔/즐거움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 「텃밭4」 부분
봄비가 내립니다./생명을 건저 올리는 하나님의 땀방울/감자 씨를 심기 위해 감자 눈을/하나씩 오려야 합니다/……/흰 감자 세 고랑 붉은 감자 두 고랑/땅에서 퉁실퉁실 영글 감자를 생각하며/한참이나 서서 혼자/나도 모르게 웃음이 자꾸 나옵니다
- 「텃밭5」 부분
이른 아침부터 봄비 내린다/마늘과 양파들 몸을 적시고 있다/……/고양이보다 빠른 걸음으로 비가 내리고/금동이 작은 혓바닥 같은 풀꽃/마당 구석구석마다 꽃을 피우고/봄비는 생명을 한 뼘씩 자라나는/생명 길이를 재고 있다
- 「텃밭8」 부분
집의 목적과 출발이 평안과 행복임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여 안전을 제공하는 공간이 집이다. 또한 집은 외적 안전의 기능을 넘어서 심리적 안정의 기능도 담보하고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이 기능은 인간의 내적 삶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가족과의 소통과 애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음식을 나누고 심리적 휴식을 생성하여 거친 외부에의 환경과 다시 대면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충전의 공간이다. 이러한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밭이 ‘텃밭’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편리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심리적 측면의 삶을 지켜주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밭, 어쩌면 ‘텃밭’은 집의 확장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텃밭’은 이선옥 시인의 환경적 삶의 충전 공간이며 또한 인식적 시 세계의 소통 공간이다. 또한 이선옥 시인의 ‘텃밭’은 전통적으로 서민들과 함께해 온 친밀의 공간이다. ‘이른 아침부터’ ‘고양이보다 빠른 걸음으로 비가 내리고’ ‘금동이 작은 혓바닥 같은 풀꽃’이 ‘구석구석마다 꽃을 피우’는 서정의 공간임과 동시에 먹거리 삶을 위해 ‘감자 씨를 심기 위해 감자 눈을 하나씩 오려야’ 하는 삶의 고단한 현장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공간의 시작점을 ‘생명을 건져 올리는 하나님의 땀방울’이라 명명한 ‘봄비’라고 밝히고 있다. 때로 ‘즐거움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텃밭’이지만 ‘텃밭’의 ‘봄’과 동일시하는 삶의 ‘봄’은 그냥 오지 않고 ‘겨울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한 뼘씩’ ‘한 뼘씩 자라나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공간임을 말하고 있다. 이 공간이 삶의 ‘구석구석마다 꽃을 피우’게 되는 생명의 공간이 되고 동시에 절대 존재와의 선한 소통으로 ‘한 뼘씩 자라나는’ ‘웃음’의 공간이 되고 있다.
2. 소통의 첫사랑 엄마의 텃밭
애태웠을 것이다/나를 닮은 텃밭에 엄마가 보이고/엄마 한 생애가 풀처럼 돋아나/엄마의 텃밭을 일구고 있다/이득도 없는 삶을 갈아엎고/아무것도 건질 것 없는 나를 걸머지고/ 들풀처럼 뜯기고 아프다 말없이/살아온 날만 멍 자국처럼 푸르다/그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간직한 것들/아니다 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엄마 닮은 냉이 민들레 별꽃 무리 봄맞이꽃/보랏빛 꽃잎 물고 있는 개불알풀꽃/견딜 수 있는 생애가 꽃으로 피고 지고/이 텃밭에 어우러져 사는 풀도 채소도/저마다 푸른 꿈 하나 간직하고/엄마 손길 닮은 덩굴 하나 길게 길게/뻗어내고 있다
- 「엄마의 텃밭」 전문
실존주의에 따르면 각 사람은 자신의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창조한다고 한다. 이는 삶이 각자의 의미적 행동과 의미적 결정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이때 이선옥 시인의 ‘텃밭’의 의미적 결정은 어디에서 기인하였을까? 시인의 행동과 결정의 첫 소통 공간은 ‘엄마의 텃밭’이다. ‘엄마’인 시인의 ‘텃밭에 엄마가 보이고’ ‘엄마’의 ‘생애가 풀처럼 돋아나’ 시인과 소통하고 있다. ‘아무것도 건질 것 없는’ 시인을 ‘걸머지고 들풀처럼 뜯기고’도 ‘아프다 말없이’ ‘멍 자국처럼 푸’른 ‘엄마의 텃밭’을 인식하며 시인은 의미적으로 ‘저마다 푸른 꿈 하나 간직’한 ‘어우러져 사는 풀’들의 공간을 일구기로 한 것이다. 이 공간이 이선옥 시인의 소통의 기원이며 시 세계의 기원이 된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간직한 것들’이 시인의 시편들이며 ‘텃밭’을 일구는 시인의 생활이 ‘길게 길게 뻗어내’고 있는 시인의 ‘푸른 꿈’인 것이다.
3. 땅을 딛고 일어나는 풀처럼 슬픔의 뿌리는 질기다
기도 같은 새싹들 움을 틔웠다/땅을 박차고 나오는 싹을 보면/저절로 푸르게 된다/저 여린 새싹은 강하다/무서리 내린 아침에도 잠깐 고개 숙이더니/햇살 들면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 걸까/모든 생명은 질기다/나흘 만에 집 나간 고양이 돌아왔다/그래 목숨은 질기다/상처가 생겨 마음을 휘젓고 다녀도/한 나흘 정도 되면 살아나는 것/텃밭의 풀과 공존을 하면서도/눈에 거슬려 호미로 싹싹 갈아엎는다/한 나흘쯤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뿌리는 질기다/아주 아주 질기다/태초부터 건너왔을 잡초들 이제/전능자에게 노래 불러야겠다
- 「내 영혼 닮은 텃밭1」 전문
잡풀처럼 가볍게 누웠다/더운 바람이 길게 길을 내고 있다/땅을 딛고 일어나는 풀처럼/……/아픔을 아파하지 않던/어머니의 굴절된 삶을 바라본다/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살아야겠다/……/여름내 땡볕에 앉아 풀을 매거든/어머니 잠시 내 품에 안겨 울다 가세요/……/개망초꽃이 무덕무덕/여름을 흔든다
- 「내 영혼 닮은 텃밭3」 부분
올해 텃밭에서 가장 먼저 마늘을 캤다/하지를 며칠 남겨두고 조급함으로 감자 캤다/땅속에서 온 힘을 다해 진액을 짜냈을/견고한 슬픔의 뿌리들이다/……/다시 푸른 희망을 꿈꾸고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견고한 슬픔의 뿌리를 내리며 견딜 것이다//아주 혹독한 결핍에서 벗어나/아주 깊은 시련에도 꺽이지 않는 꿈을 꾸는/씨앗을 텃밭 위에 아프게 뿌리며/아버지께 이르는 길을 하나 내리라
- 「꿈꾸는 텃밭11」 부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슬픔’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내쳐진 ‘태초부터 건너왔을 잡초’로서의 인간에게 있어 ‘슬픔’은 본질적 공간이 된다. ‘호미로 싹싹 갈아엎’어도 ‘한 나흘쯤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슬픔’의 ‘뿌리’가 얼마나 본질적이고 질긴 공간인지를 시인은 체득하게 된다. 이어 ‘이제 전능자에게 노래 불러야겠다’는 시인의 신앙적 고백으로 이어지고 그 고백은 뿌리식물인 ‘마늘’과 ‘감자’로 형상화되면서 ‘땅속에서 온 힘을 다해 진액을 짜냈을 견고한 슬픔의 뿌리’라고 의미화된다. 또한 시인에게 있어 ‘슬픔’은 ‘아주 깊은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질긴 ‘생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슬픔’의 공간은 이선옥 시인에게나 시인의 ‘어머니’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픔을 아파하지 않던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슬픈 일이며 ‘조급함으로 감자’를 캐고 ‘땡볕에 앉아 풀을 매’는 생활의 과정도 슬픔이 된다. ‘땅속에서 온 힘을 다해 진액을 짜’내는 존재들을 바라보고 스스로 동화되어 ‘아파 하’는 것도 ‘슬픔’이다. 이 슬픔의 공간은 인간의 근원적 정서인 동시에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빛나는 질료가 되기도 한다. 이 공간이 이선옥 시인의 세계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고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시인은 자신의 삶을 ‘풀’의 자람과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의 삶에 ‘더운 바람이 길게 길을 내고 있’을 때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때 시인은 쓰려져 있는 ‘잡풀’을 발견하게 된다. ‘가볍게 누워있는’ ‘잡풀’의 지혜를 인식하고 ‘잡풀처럼 가볍게 누’워 ‘땅을 딛고 일어나는 풀’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기다림의 행위는 ‘아주 혹독한 결핍’을 견디는 일이며 ‘견고’하게 ‘슬픔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여름내 땡볕에 앉아 풀을 매’는 일이며 ‘씨앗을 텃밭 위에 아프게 뿌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 행위가 이선옥 시인의 시 세계의 근원이 되었음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시인은 이 근원적 공간을 그냥 두지 않기로 한다. 언제이고 맞닥뜨릴 ‘견고한 슬픔’에게 ‘한 나흘쯤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뿌리’로서 ‘꿈을 꾸는 씨앗’의 공간, ‘푸른 희망’을 심는 ‘텃밭’으로의 진지한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은 ‘기도 같은 새싹들 움을 틔’우는 일이며 ‘개망초꽃이 무덕무덕 여름을 흔’들며 ‘저절로 푸르’게 되는 일이며 절대 존재인 ‘아버지께 이르는 길을 하나 내’는 일인 것이다.
4. 결핍들 사이에도 봄비는 내리고
살아도 살아봐도 나아지지 않는 이 결핍들/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적상산은 오늘따라 더 높아 보여서/여기서 탈출할 기회도 앞을 막았다//……/내 마음 따라 흐르는 밭고랑 사이사이에/감자 씨를 꾹꾹 눌러 심는다
- 「텃밭 일기1」 부분
난동이라 한다/겨울이 이상스럽게 따뜻하여 난동이라 한다//……/사는 일이 겨우 목숨 부지하는 일이었다/그 틈에 자식들은 탈 없이 나무처럼 쑥 자랐다//우리는 그냥 살아냈다/시달리는 빚 독촉에도 살아냈다/난동이라 했다/……/텃밭에도 풀들이 난동 부리고 있다
- 「텃밭 일기2」 부분
나도 텃밭을 닮아가고 있다/……/결핍이 목을 조르고/사는 것마다 목숨 연명하는 절망 앞에서/오늘 하루만 생의 길목마다 슬픔의 그물을 던지며/아득해라 길어 올리는 건/가시 같은 고단한 꿈뿐이라/……/오늘 하루만 나에게 비단결 햇살 한 자락 깔아주소서
- 「텃밭 일기9」 부분
적상산 날망에 눈이 내려왔네/삼월 중순인데/비 대신 눈이 오셨다/비 대신 눈이 오셨다/나무가지마다 눈이 덮여 꽃 대신/활짝 활짝 피었네/……//꽃인지 눈인지 모를 매화 피었다/여기저기 벌이 날아다니고/사랑도 느닷없이 내리는 눈처럼 왔다/세월이 눈 녹듯 녹아내린 자리에/예순다섯이 왔다/아직도 사랑은 눈부시게 자리 잡고 있을까/조금만 더 살아보자/살아가 보자
- 「텃밭 일기6」 부분
봄비 내린다/잠든 땅을 흔들어 깨우는 손은 봄비다/땅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울 준비하는 소리 듣고 싶다/텃밭은 벌써 마늘 싹을 한 뼘 정도 밀어 올리고 양파도 푸른빛이 도는 싹을 키웠다/감자 싹이 이 봄비에 싹을 틔울 것이다/봄비 내리는 텃밭은 잔치집이다
- 「텃밭 일기3」 부분
인간은 선천적으로 결핍의 존재이다.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의 상태를 말한다. 가난에서 오는 결핍은 단순히 물질의 결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물질의 결핍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음에서 오는 꿈과의 단절이 이루어지고 삶에 있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되므로 필시는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위태를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쟁이의 결핍은 물질적 부족의 결핍을 넘어선 끝없는 착취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결핍이 목을 조르고’ ‘목숨’만 ‘연명하는’ ‘절망’의 상태 앞에서 하루하루 ‘생의 길목마다 슬픔의 그물을 던지’는 ‘가시 같은 고단’이 끝없이 이어지는 살아감이 아닌 살아냄의 ‘아득’한 연속인 것이다.
‘겨울이 이상스럽게 따뜻하여’ 부르는 ‘난동’해를 겪은 과수는 이듬해에 싹이 트지 않고 새잎이 나지 않으며 개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피해를 입게 된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과수가 되는 것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하루 ‘그냥 살아내’는 ‘살아도 살아봐도 나아지지 않는’ 절대 결핍으로서의 ‘빚 독촉’에 시인은 무방비의 상태로 노출되어 ‘예순다섯’의 세월까지 착취의 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그냥 살아냈다 시달리는 빚 독촉에도 살아냈다’는 시인의 고백은 ‘오늘 하루만’ ‘겨우 목숨 부지하는 일’ 즉 ‘난동이라 한다’라고 시인이 살아낸 ‘결핍’의 삶을 명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인은 ‘적상산은 오늘따라 더 높아 보여서 여기서 탈출할 기회도 앞을 막’은 ‘난동’ 앞에서 ‘오늘 하루만 나에게 비단결 햇살 한 자락 깔아주소서’라는 기도를 지렛대 삼아 살아냄이 아닌 살아감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조금만 더 살아보자 살아가 보자’라는 희망과 자조가 내재된 혼신의 행동으로 ‘잠든 땅을 흔들어 깨우는’ ‘봄비’를 시인은 만나게 된다. ‘봄비’와의 만남은 시인이 살아냄의 객체 공간에서 살아감의 주체 공간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시인이 ‘눈부시게’ 이삿짐을 꾸리는 과정이다. 다시 ‘땅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씨앗들이 싹을 틔울 준비하는 소리 듣고 싶’어 지고 이어 ‘내 마음 따라 흐르는 밭고랑 사이사이에 감자 씨를 꾹꾹 눌러 심는’ 살아감의 공간인 ‘잔칫집’으로 이사를 꾀하게 되는 것이다. ‘꽃인지 눈인지 모를 매화’가 피고 ‘여기저기 벌이 날아다니’는 ‘눈부’신 풍경, ‘벌써 마늘 싹을 한 뼘 정도 밀어 올리고 양파도 푸른빛이 도는 싹을 키’워 내는 시인을 닮은 ‘텃밭’에 이제 ‘눈부’신 ‘봄비’가 내리고 있다.
5. 텃밭에 자라는 빛나는 것들
……/목숨을 연명하던 텃밭은/놀이 삼아 채소를 가꾸고/다 먹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씨앗을 뿌리고/여분의 것으로 나눔 하는 텃밭은 늘 행복하다/행복을 한 줌씩 심는 것이다//……/좀 많다고 지청구를 들어도 기어이 고랑을 만들고/넉넉하게 거름을 뿌리고/비료도 넉넉히 뿌리고/호미질로 고랑을 두둑하게 쌓아 올렸다/비가 한번 내리면 비닐을 씌워야지/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인생이지/작은 씨앗 하나에도 세상을 무겁게 이고 있는 것/이 봄날 따뜻한 햇살 머리에 이고서/텃밭에 행복을 심는다
- 「텃밭에 행복을 심었다1」 부분
……머슴처럼 일만 하시던 동네 노인네/몇 년 아프다 돌아가셨다네/그가 일구던 밭은 망초꽃이 무덕무덕/달맞이꽃도 무덕무덕/칡넝쿨 온 밭을 헤집고 다니네/그가 살다간 세월만큼 꽃은 피고 지고/묵정밭이 돼버린 이 밭에서 아름다운 꿈을 꾸며/행복한 씨앗을 넣었을 그 손길/사는 일이 지랄맞게도 마음대로/살아지는 것이 아니네/천지간에 사람 말고도 아름답고 이쁜 것들이/참 많이 모여 피어있네
- 「텃밭에 행복을 심었다2」 부분
……/봄은 봄대로 꽃을 피우느라 지쳤다/……/버티다 버티다 내가 초주검 당했다/풀잎처럼 누웠다/며칠 앓다 일어나 보면/텃밭은 언제 그랬냐 다시 제자리에 풀들은 나 있고/……/제자리에 있어야 되는 일/제 자리를 지키는 풀처럼 되어야 하는 일/……//그래도 난 이 텃밭에 자꾸만 심는다
- 「텃밭에 행복을 심었다3」 부분
아직도 저녁연기가 몽실 피어오르는/포내리 마을/……/나를 키우고 있는 나무들/한 계절이 지나가고 또 한 계절이 걸어오는/이 저녁에/애달파 하던 일도 고요해지고/사는 일로 피 흘리는 싸움도 그치고/그렇게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는 것/우리 늙어가는 자리에/나무들과 쓸쓸하게 깊이 뿌리내리는 것
- 「텃밭에 행복을 심었다7」 부분
어떤 측면에서 삶은 극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살아냄의 길들이 그렇다. 결핍이 인간의 원형으로 남아있는 이상 인간은 이 공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삶은 누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핍의 공간을 극복한 삶이 그러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선옥 시인의 ‘텃밭’은 ‘목숨을 연명하던 텃밭’에서 결핍을 극복한 ‘텃밭’으로 재 발현되었다. ‘꽃을 피우느라 지’친 ‘봄’이 ‘저녁연기가 몽실 피어오르는’ ‘봄’으로, ‘풀잎처럼 누’운 시인이 ‘따뜻한 햇살 머리에 이고서’ ‘깊이 뿌리내리는’ 존재로 재 발현된 것이다. 시인의 ‘텃밭’이 재 발현되기까지는 ‘나를 키우고 있는 나무들’이 있었고 ‘세상을 무겁게 이고 있는’ ‘작은 씨앗’들이 함께 하였으며 ‘피 흘리는 싸움도’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마다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켰다. ‘제자리에 있어야 되는’ ‘풀처럼’ ‘제 자리를 지’켰다. ‘지청구를 들어도 기어이 고랑을 만들고 넉넉하게 거름을 뿌리고 비료도 넉넉히 뿌리고 호미질로 고랑을 두둑하게 쌓아올’린 시인의 뚝심에 ‘결핍’의 공간도 손을 들었다. 이제 시인의 ‘텃밭’은 ‘놀이 삼아 채소를 가꾸고’ ‘이것저것 씨앗을 뿌리고 여분의 것으로 나눔 하는 텃밭’으로 재 발현된 것이다. ‘행복한 씨앗을 넣었을 그 손길’이 일군 ‘아름답고 이쁜 것들이’ ‘모여 피어있’는 이선옥 시인의 ‘텃밭’에는 스스로 빛나는 것들이 있다.
6. 포내리 마을에 추억은 내리고
인적 드물고 바람만 무심하게 왔다가는/오후 한나절/고양이 식구들 마당 한가운데 모과나무 그늘 밑에/졸음으로 봄을 즐기고 있다/적상산 날망으로 달려가는 봄의 걸음은/낭창낭창하다고/마을 한 바퀴 산책하는 고양이 걸음으로 적적한 마을/금방이라도 눈물 쏟아낼 마을/무엇 하나 손잡을 것 없는 마을/햇살 한 줄기 희망처럼 따라다니는 포내리/계절도 가만가만 걸어가는 마을/봄꽃은 만발하여 춤을 추는데/혼자 그리움으로 손을 흔든다/이 마을에서 한동안/더 견뎌 봐야겠다
- 「포내리 마을」 전문
산다는 건/홀로 견디며 지켜내야 하는 일일까/……/허공을 되짚어가는 나를 만난다/……/거미 한 마리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내 가슴팍에 거미줄을 치며/꺼억 울음을 쏟는다/마을에 잠시 발을 담그는 적상산 그림자/언제쯤 정어리 푸른 지느러미를 흔들며/이 뼈아픈 기억을 지우며/적상산 안개 바다를 헤엄쳐 나갈 수 있을까
- 「뼈아픈 기억4」 부분
새벽에 등 뒤를 바짝 따라오는 휘파람새 때문에/……/마음은 새소리 하나에도 흔들흔들 거린다/……//세상은 새롭게 봄을 맞이하려고 다투어 연한 순을 피워내고/나뭇가지마다 톡톡 불거져 나오는 여린 새순들/살려고 몸부림치며 나오는데/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아버지 오늘 저녁 기도는 눈물이 될 것 같습니다
- 「추억이 아프다5」 부분
늦은 아침은 게으르다/새벽예배 드리고 해 뜨기 전에 텃밭에 풀을 조금 맸다/손톱 밑이 새까맣다/ 맨손으로 풀을 뽑았다/머리채 뜯기듯/인생은 누구에게 머리채 뜯기듯/아프게 살아냈으니//사랑한다는 면목으로 서로를 상처 냈던 날들은 아프다/그 많은 기억들 모두 아프다/굳이 사랑이라는 말없이도 제 몫을 다하는 텃밭/나무며 채소며 제 모습으로 꽃피우고 열매 맺고/묵묵히 겨울을 준비한다//이제 돌아와 지친 영혼을 달래자/조금 쉬어가자/예순다섯이니까
- 「추억이 아프다7」 전문
삶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그늘이 있다. 나무의 그늘은 인간에게 쉼을 주고 인간의 그늘은 시인에게 시적 정서를 일으킨다. 이 그늘의 공간은 ‘추억’이라 불리기도 하고 ‘눈물’이라 불리기도 하며 ‘상처’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삶을 걸어가는 한 늘 삶의 ‘등 뒤를 바짝 따라오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때로 우리를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우리의 ‘가슴팍에 거미줄을 치’기도 한다. ‘봄꽃’이 ‘만발하여 춤을’ 추고 있을 때에도 ‘혼자 그리움으로 손을 흔’들게 하기도 한다. 이선옥 시인에게 있어 ‘포내리 마을’이 그렇다. ‘고양이 걸음으로 적적한 마을’이며 ‘금방이라도 눈물 쏟아낼 마을’이다, ‘포내리 마을’이 시인에게 왜 그런 마을이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 시인을 ‘아프’게 하는 ‘기억’들이 ‘추억’이라 불리는 그늘의 공간에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뼈아픈 기억’들은 시인의 ‘가슴팍에 거미줄을 치며 꺼억 울음을 쏟’기도 하고 ‘홀로 견디며’ ‘허공을 되짚어가’기도 한다. ‘정어리 푸른 지느러미를 흔들며’ ‘적상산 안개 바다를 헤엄쳐 나’가고 싶은 시인에게 ‘포내리 마을’은 ‘한동안 더 견뎌’보라고 ‘가만가만’ 권하고 있다. 지금 ‘마을 한 바퀴 산책하는’ 시인의 ‘마음’은 ‘새소리 하나에도 흔들흔들 거린다’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인의 ‘저녁 기도는 눈물이’ 될 것이다. 이 ‘눈물’의 기도가 ‘예순다섯’ 이선옥 시인의 시적 정서가 되어 ‘묵묵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늦은 아침은 게으르’지만 시인의 시적 그늘은 ‘가지마다 톡톡 불거져 나오는 여린 새순’으로 부지런하고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저자 소개
이선옥
. 1994년 「창조문학」으로 등단
. 시집 『내 안에 가시 하나』 『산 아래 달그림자』
. 시문집 『아직도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 』
. 시로 여는 에세이 『천 번의 기도』
. 공저 시집 『여류 삼인 시집』 『겨울 새가 젖은 날개로 날아와 앉았다』 등이 있다.
.e-mail: sangsan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