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나무 맹아(萌芽)
우동식
올해는 뜻깊은 망종(芒種)을 맞이했다. 다만 씨를 뿌린 것은 아니지만, 한 나무의 새싹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그 나무의 새싹은 내게 특별한 기쁨을 선사했기에 어쩌면 내가 정성을 쏟아야 할 대상과의 만남의 시작이라 여겨진다. 그 새싹은 앞으로도 내게 보람을 키워주는 씨앗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대여섯 해 전이었다. 동호인들이 뜻을 모아 문학회를 만든 후 동인지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때 출판사에서 행복나무 한 그루를 심은 화분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행사 후 ‘해피트리’라고도 하는 그 나무는 감사하게도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후 이 나무는 거실에서 위치를 여러 번 옮겨 다니면서 함께 지냈다. 그러다 최근 2년 동안은 바람을 쐴 생각으로 이 나무를 베란다에 내어놓았다.
지난 겨울이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어느 날, 낮에 열어두었던 베란다 창문 닫기를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밤새 불어온 찬바람에 시달려 잎이 시들시들해져 있지 않은가. ‘아뿔사! 이를 어쩌나.’ 몹시 안타깝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마도 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아내도 걱정스럽게 진단했다. 후회막급이었다.
그래도 다시 회복하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윗 줄기를 자른 후 줄기 끝을 비닐로 덮어 씌워주었다. 아랫 줄기에서 싹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초봄이 되어도 싹이 돋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봄이 무르익어 갔다. ‘이젠 글렀구나!’ 싶어 마음을 비웠다. 그래도 그루터기를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다른 꽃씨 몇종을 뿌려 두었다. 얼마 지나 풍선덩굴 등이 돋아나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처음에 마른 행복나무 밑동은 그 새 덩굴이 타고 올라가는 지지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충일 아침이 되었다. 그날이 마침 망종(芒種)이었다. 행복나무 그루터기 밑동에서 뽀족이 솟아나는, 짙은 녹색의 싹이 발견되었다. 설마 그 나무가 싹을 냈겠는가, 다른 꽃씨들이 움을 틔운 것이려니 하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내를 불렀다.
“그거 해피트리 싹 맞아요. 나도 봤어요.” 라는 아내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다행이다. 고맙다!’라는 마음이 놀라움과 함께 솟아올랐다. 그루터기를 그대로 둔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젠 자고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윤기 있고 청신한 어린잎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면 난 그저 미소를 짓는다. 행복나무 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나의 새로운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집에서 화분에 식물을 키우면서 처음 본 맹아(萌芽)가 아닌가.
맹아는 여러해살이풀이나 나무의 뿌리 부위의 눈이 발아해서 새로운 줄기들이 추가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움싹’이라고도 하는 이 줄기 형성 방식은 무성생식의 한 수단이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무성생식으로 추가된 개체들의 집합을 클론군이라 한다. 실제로 이 클론군들이 자라 숲을 이루면 맹하림이라 부른다. 제주도의 곧자왈이 그 예다. 그 숲은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나무들을 잘라 땔감으로 쓰던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한 번의 실수 등의 연유로 영영 생명을 잃을 뻔했지만, 이 나무들에게 맹아에 의해 되살아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이고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산불이 난 경우에도 숲을 다시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참나무 등 대부분의 활엽수들이 왕성한 맹아 재생력을 발휘해준다니 신기하고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소생하는 초능력인 회복탄력성을 실현하는 나무는 위중한 기후위기 시대에 고난 극복의 스승이 아닐까. 그리고 한 번뿐인 인생에 비하면 이 나무들의 재생은 얼마나 부럽도록 위대한 능력인가.
그런데 최근 인간 세상에도 새롭게 경이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마른 나무의 그루터기에 맹아를 통한 클론이 생성되듯이, 상대에게 주는 실감의 한계는 아쉽지만 죽은 사람도 인공지능에 힘입어 ‘디지털 클론’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넷플릭스 공상과학(SF) 시리즈 '블랙미러'의 에피소드인 '돌아올게'라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 여자의 남편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 그 여자 앞에 죽기 전 남편과 똑같이 생긴 인공지능(AI) 남편이 서 있다. 여자가 '다시 살아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정말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한다.
금발에 흰 피부를 지닌 남편의 모습 그대로다.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말투도 똑같다. 여자는 남자를 끌어안고 함께 밥을 먹는다. 같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에게 ‘정말 지금 내 곁에서 숨 쉬는 남편은 죽기 전 남편과 완전히 같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렇게 사람의 정보를 학습시켜 그 사람과 유사하게 만든 인공지능인 ‘디지털 클론’의 세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가상한 노력을 기울인들 싸늘한 기계 인간이 어찌 새 생명의 맹아에 비견될 것인가.
아무려나, 새롭게 돋아난 행복나무 맹아는 경이와 감동으로 내게 다시 찾아왔다. 어느새 가을의 초입에 이른 지금, 이 나무의 맹아는 세 뼘 이상으로 자라 내 마음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나도 저 새싹이 원래의 나무처럼 자라나기까지 잘 지켜주면서 오래도록 반가움을 누릴 것을 생각하면 흐뭇하기만 하다. 이 나무는 이름 그대로 내게 ‘행복나무’의 사명을 다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제657호(2023.11), 221~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