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청소년소설) 「순례 주택」(유은실)
자기 중심의 ‘1군 가족’들을 위한 사회화 코칭
우동식*
1. 들머리
이 소설, 『순례 주택』은 청소년 소설 『변두리』로 권정생 문학상을 받은 유은실 작가의 또 다른 청소년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에서 시작하였지만, 연령대 구분 없이 많은 공감을 얻어 전국 곳곳에서 ‘한 도시 한 책’ 또는 각종 선정 도서로 추천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21년에는 경남의 책, 강원진로교육원 선정 도서, 2022년에는 평택시의 책 읽는 평택 선정 도서,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선정 도서, 양주시 올해의 책 선정 도서, 책 도시 전주시 선정 도서, 원 북 원 부산 선정 도서로 채택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그 전국적 열풍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2023년에도 책 읽는 청주 대표 도서 후보에 올랐고, 구미시에서도 ‘한 책 하나 구미 운동’의 대상 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모든 세대에게 뭉클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 옆집 할머니 순례 씨와 청소년 수림이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16세 수림이,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여자친구인 75세 순례 씨이다. 어릴 적 엄마의 몸이 좋지 않아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수림이는 얼떨결에 할아버지와 같은 빌라, 일명 ‘순례 주택’ 402호에 사는 김순례 씨(75세)의 손에 큰다. 성장하면서 순례 씨와는 속 얘기까지 나누는 ‘최측근’이 된다.
평생 때를 밀어 재산을 일군 세신사 순례 씨는 수림이보다 60여 년을 더 살아온 인생의 선배이자 달인으로, 끝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해 나가는 인물이다.
수림이 또한 독특하다. 담임으로부터 생활지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더니, 급기야는 이웃들로부터 ‘너무 예민하지도 않고, 어려운 일 겪어도 어떻게든 한세상 살 것 같은 아이’로 등극한다.
수림이와 순례 씨는 이야기를 찰떡같은 궁합으로 이끌어간다. 단순히 옆집 할머니라고 하기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최측근’이라 불리며 인생의 농밀한 비법들을 전수해 주는 순례 씨는 기존의 정답고 강인한 할머니에서 또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과정은 “기성세대가 망가뜨린 지구별에서 함께 어려움을 겪는 어린 순례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씻어내는 작가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하여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이나 브랜드로 사람을 구별 지으려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 순례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고 토로한다. 여기에 이 작품이, 각성된 어른 스승격인 순례 씨와 바르게 배워가는 청소년인 수림이가 의기투합하여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는 ‘1군 가족’의 엄마 아빠를 대상으로 사회화 코칭을 하는 듯한 전개를 보여 주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 가족들의 인간상
가, ‘1군 가족’들의 인간상
이 소설에서는 수림이의 엄마, 아빠, 언니 등 세 인물을 ‘1군 가족’이라 부른다.
먼저, 엄마, 박영지는 이웃에 대한 사려가 부족하다. 아파트에 사는 그녀가 어느 인터뷰에서 빌라촌 아이들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사고를 치기도 했다. 아빠, 오민택은 누군가에게 얹혀 사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런 그답게 장인 집에서 ‘장기 무단 점거자’로 살았다. 언니는 생활 자립성이 미약하다. 라면도 끓일 줄 모르고, 겨우 컵라면에 물만 부을 줄 안다.
이 가족들의 공통점은 부끄러움(염치)이 없고, 지극히 세속적이며 자신들의 욕심에 치우쳐 있다. 또한 의존성이 강하며, 늘 남과 비교하고, 승타심(勝他心)에 사로잡혀 우월감을 가지려 하거나 비굴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이들은 자기 중심적인 미성숙의 지표를 보인다.
나. 순례 씨와 수림이의 인물됨
1) 순례 씨
순례 씨는 순례주택 402호에 사는 건물주이다. 그녀는 자기 성찰의 달인으로서 경건하게 살아가려 한다. 본인의 이름을 ‘순례(順禮)‘에서 ‘순례(巡禮)’로 바꾼 것은 여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다.
그녀는 독립(자립)주의자이다. 스스로 자신을 ‘독립적 인간’이라 생각한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노력을 ‘좋은 어른’의 가치라 여기는 인물이다.
순례 씨는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쓴다는 점에서는 최적주의자이자 청빈주의자이기도 하다. ‘쓰고 남은 돈은 고민’이라 여긴다. 35세에 이혼한 사유가 남편이 구린 돈을 벌었기 때문이며, 그런 구린 돈을 상속받은 아들이 못마땅해서 그녀의 재산은 아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국경없는의사회’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리고 순례 주택의 임대료가 싼 이유도 그것을 시세에 따라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았기 때문이다. (10쪽)
순례 씨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감사하기의 실천자이다.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많이 쓴다. (99쪽)
순례 씨의 특장점은 생태‧환경주의자인 것처럼 기후 위기 대처 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썩지 않은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을 걱정한다. 그래서 그녀는 탄소제로의 생활화를 아래와 같이 실천한다.
환경 보호를 생각해서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다. “세신사 하면서 물이랑 세제를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염색이라도 안 하고 살고 싶어.”(11쪽)라고 말한다.
또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될 물건을 거의 사지 않고, 자원 순환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은 중고로 산다.
전기를 덜 쓰려고 402호 집으로 올라갈 때에는 꼭 계단을 이용한다.(41쪽)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빈 반찬통을 들고 음식을 사러 간다. 또한 “더덜너덜한 장바구니”를 이용한다. (43쪽) 그리고 비닐을 덜 쓰려고 수박 같은 것을 랩으로 싸지 않는다. (116쪽)
분리배출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네.”라고 말하곤 한다. (80쪽)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차 타는 것도 싫어하며(37쪽), 공기를 너무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비행기 여행도 자제한다. (97쪽)
이렇듯 순례 씨는 근검‧절약과 절제가 몸에 밴 사람이다.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탐욕은 줄이고, 충족감, 혹은 만족감의 수준은 낮추어야 한다면 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어른이 ‘순례 씨’가 아닐까 여겨진다. 가히 기후 위기 시대 맞춤형 어른의 모델이라 할 것이다.
2) 오수림
16세의 중3 학생 수림이는 순례 씨와 속 야기까지 나누는 ‘최측근’이다. ‘최측근’은 생각과 행동, 곧 인생관을 같이하는 사제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림이는 인생의 달인 순례 씨로부터 인생의 농밀한 비법들을 전수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독립지향적 청소년으로서 생활지능이 뛰어나다. 그녀도 순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자기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예민하지도 않고, 어려운 일 겪어도 어떻게든 한 세상 살 것 같은 아이”로서,
순례 씨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회복탄력성이 뛰어났다.
순례 씨로부터 가족을 201호로 데려오는 것을 허락받는 등 그녀는 ‘쫄딱 망한 집의 구원 투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바리데기가 부모 살리는 격’인 셈이다. 그녀의 꿈은 자기 가족들(1군)이 사고 치지 않고 순례 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하게 하는 것이다.
3. ‘1군 가족’들을 위한 사회화 코칭의 과정
이 소설의 큰 줄기는 ‘수림이네 가족 순례 주택 입성기’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그대로 ‘1군 가족’들의 사회화 코칭 과정 같은 것이기도 하다.
순례 씨와 수림이가 1군 가족들, 곧 수림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의 삶에대하여 일종의 코칭을 하게 된 것은 순례 씨의 선의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곧, 좋은 아파트에서 자기 중심적 생활에 젖어 있던 1군 가족들이 “온실 밖에서 적응 훈련하게 도와주자.”(56쪽)고 순례 씨가 마음을 썼다.
이에 따라 수림이의 꿈도 자연스럽게 1군의 자기 가족들이 ‘사고 치지 않고 순례 주택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된다. 집안에서 주체적으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네 부모는 어리다.”고 되뇌인다.
1군 가족들이 시설 좋은 아파트에서 좁은 빌라인 순례 주택 201호로 이사를 오면서 수림이는 아빠, 엄마에게 공동생활을 무난히 하기 위해 지켜야 할 두 가지 정도의 규칙들을 말해 주었다,
첫째는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환경 애호의 실천자인 순례 씨가 무척 중요시하는 사항이다.
둘째는 이웃에게 ‘학번’ 물어보는 것을 금지하기였다. 그러나 아빠는 이사하자마자 유사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301호에 사는 ‘박사님’ 아저씨에게 출신 학교를 물어본 것이다.
게다가 주택의 공동 휴게소인 ‘옥탑방’을 아빠와 언니가 아침부터 밤까지 에어컨을 켠 채 점거하고, 라면, 커피, 김치를 엄청나게 먹어 냉장고를 텅 비게 하는 등, 공동생활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부적응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래서 급기야 이웃 주민 중의 ‘길동 씨’ 부부와 수림이는, 순례 씨 몰래 1군 가족들이 ‘싸가지가 좀 생기게’ 할 작전을 구사하기에 이른다. 그 핵심은 순례 씨가 ‘순례 주택을 수림이한테 물려 주지 않을까 싶어.’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순례 씨는 베푸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상, 비정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그렇게 하면 순례 주택을 탐내서 1군 가족들이 순례 씨와 이웃들에게 잘 하리라는 기대를 담은 ‘술수’였던 셈이다. 나중에 이 작전은 순례 씨에게 알려졌고, 그녀의 유산은 이미 ‘국경없는의사회’가 상속자로 되어 있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길동 씨 부부’의 작전에 완전히 넘어간 수림이 엄마 아빠의 행동은 일단 긍정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옥탑방을 청소하는 등 ‘상당히 정교하게’ 변했다가 순례 주택 유산의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다만 수림이 언니는 원래의 지조를 지키는 인물로 남았지만, 엄마는 새벽에 김밥집에서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등 ‘정말’ 변한 점이 최종적 성과였다.
그러니까 길동 씨 부부와 수림이가 1군 가족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했다고 순례 씨로부터 꾸지람을 듣긴 했지만, 공민 생활의 기본인 ‘부끄러움’(염치)을 아는 인물들로 바꾸려는 선의의 ‘꼼수’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도는 사람의 습성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투입이 필요한 방편 같은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실제로 불경(佛經)에서도 중생의 기근에 맞추거나 가르침의 효과를 위해 선의의 방편을 쓰고 있지 않은가.
4. 마무리 — 작품의 3가지 의의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간추리면 이 작품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첫째는 독자층이 넓다는 점이다. 청소년 소설로 발표되었지만, 전 세대를 아우르는 효과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곧, 청소년의 진로와 인성은 물론, 중년 혹은 노년의 삶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아이든 어른이든포괄적인 의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을 이끌어 주는 소설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첫째에서 제기한 ‘올바른 삶’과 관련하여,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어떻게 사회화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 해결을 모색해 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개인의 행복한 삶은 물론 건전한 공동체 형성의 주요 요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것은 세계 시민 정신을 발휘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셋째,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탄소제로의 생활화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순례 씨’라는 어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생활 실천의 바탕 위에서만이 시대정신인 ‘생태적 전환’ 의식도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은 물론,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에 의하여 낮아져 가는 우리 사회의 교육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이 작품이 널리 읽히기를 권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아동문학사조사, 《아동문학사조》 제9호(2024.1.2.), 356~3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