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독후감)
김견남
여성 상위시대라고도 하고 남녀가 동등하다고도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읽다 보면
아직도 남녀의 불공평함을 느끼게 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은 딸아이를 둔 김지영씨는 희귀한 병에 걸려있다.
그 병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어 마치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듯한 진정한 말을
남편, 시부모, 친정엄마한테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장모님으로 빙의 되어 ‘정서바앙“ 하면서 사위를 걱정하는 말을 하는가 하면
이미 죽은 전 여자 친구로 빙의되어 “지영이가 힘들 때이니 잘 해주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남편 정대현 씨는 아내의 말투가 귀엽게 느껴져서 장난하는 줄 알고 무심히 넘어갔다.
그런데, 추석이 되어 본가에 갔을 때 일이 터졌다.
김지영 씨는 추석 전날부터 시어머니와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고 추석 다음 날은
가족들과 막 만들어진 명절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명절날 아침상을 치우고 나면 근처에 살고 있는 시누이 부부가 친정으로 온다.
그러나 김지영씨는 시누이가 왔음에도 친정을 못 가고 다시 그들을 위한 상차림을 한다.
가족들은 그걸 당연시 여긴다.
시누이는 차려놓은 음식을 먹으며 친정엄마인 김지영 씨 시어머니에게 차례도 안 지내는데
집에서 음식 만들지 말고 조금씩 사다 먹으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갑자기 김지영 씨에게 “얘 너 힘들었니?” 하고 묻는다. (당연히 힘들지....)
그때 빙의된 김지영씨가 말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순간 남편 정대현 씨가 급히 지영 씨의 손을 잡아끌었다.
지영 씨는 그 손을 찰싹 쳐서 떼 내고는 “정 서바앙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 번 붙이고 그냥 가는데 이번에는 좀 일찍 와아”라고 한다. 이때 시아버지가 끼어든다.
“지원 애미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른들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대현이 수현이 우리 가족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과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시아버지 목소리는 노여움에 가득 찬듯하다.
이때 김지영 씨는 또 말한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의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정대현 씨가 김지영씨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나간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지영 씨는 너무나 태연하고 언제 그랬나 싶다.
며느리도 딸이라고 하면서 시집간 딸이 와도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지 않는 시부모.
임신과 출산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여성만의 특권이자 몫이지만 육아는 함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엄마의 역할이 더 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그동안 입을 닫았던 말들을 친정엄마로 빙의된 김지영의 입을 통해 말함으로써 결국 주위 사람들도
김지영 씨의 상황과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된다.
김지영 씨는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입을 닫아 버렸다.
말을 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김지영 씨 처럼 눈을 감아 버리고 입을 닫아 버린다.
정대현 씨는 화가 나지 않았다. 막막했고 착잡했고 두려웠다
혼자 정신과에 찾아가 아내의 상태를 말하고 치료 방법을 상의했지만 이와 같은 증상은 의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 막막하게 들린다.
책으로 읽었는데 마침 영화까지 나와서 보게 되었다.
책과 내용이 거의 같았고 영화에서는 남편의 아내 사랑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아내가 그 병을 알게 될까 봐 조심하면서 본인이 정신과 병원에 가서 치료방법을 모색한다.
그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인 것 같다. 아내가 잘못될까 봐 말도 못 하고 혼자 애태운다.
자신의 병을 모르는 김지영 씨는 그런 남편이 이상하기만 하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남자도 여자도 고학력에 능력도 뛰어난데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만큼은 대책이 없다.
시부모도 친정 부모도 제 할 일이 있어 손주를 돌봐 줄 수 없는 입장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육아를 해야 된다면 당연히 여자가 해야 된다는 생각은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크다.
공직에 다니거나 웬만한 기업이 아니라면 여성들은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도 아이가 생기면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전히 여자 몫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정대현 씨는
아내를 애틋하게 여기고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오는
이상적인 남편이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다.
김지영 씨는 너무 예쁜 딸아이를 돌보는 것이 행복했지만 자꾸 퇴보하는 자신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직장도 다니고 싶다.
그래서 남편이 육아 휴직을 내고 김지영 씨가 복직을 하기로 결정해 보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내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남편이 돈을 벌어야 세 사람의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것 같은 그들의 현실.
복직을 하고 싶어 하는 김지영 씨에게 더는 숨길 수 없어 남편은 김지영 씨가 앓고 있는 병을 알려준다.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김지영 씨는 차분하게 그걸 받아들이며 정신병원을 가고 복직을 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82년생 김지영 책이 나왔다.
그녀의 입장이 되어, 우리 딸과 며느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사와 육아는 여자가 해야 보기가 좋다는 생각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기에
김지영 씨 같은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너무 평범하고 당연하게 보아왔던 아기 엄마들에게 장하다고
훌륭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며느리에게도 잘 해줘야지
언제 다가올지 모를 며느리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하여 소외감 들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도 해야겠다.
2019년 어느 날 읽음.
첫댓글 그러고 보니 저도 김지영씨와 같은 생활을 했네요
우리 시대의 엄마들은 대부분 김지영씨 같은 생활을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