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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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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그 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11년 |
수상횟수 | 제2회 |
출생지 | |
[수상 작품]
그 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 / 윤태근
가을은 간혹 장닭의 긴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여명을 뚫고 들려오는 힘찬 소리가 아니다. 대낮에 느닷없이, 갈라지고 탁해진 목청을 애써 밀어내는 늙은 수탉의 음울한 소리다.
그런 가을은 어쩔 수 없이 건강한 푸름을 잃어가는 흐릿한 파스텔 풍경 속에서, 철딱서니 없는 시골아낙이 되어간다. 잔주름 얼굴을 지분으로 감추고 연지곤지를 찍는 대담함은 매년 도지는 계절병인가 보다. 가랑거리던 가을은 어느 결에 화려한 단풍과 은행잎으로 치장하고 도도하게 새침을 떤다. 어느 계절이 이토록 비장한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을까? 이 조락의 계절에 해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도리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숙연함은 늙은 수탉의 소리처럼 내게 낯설지가 않다.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 전신주 하나 기울어지고
머언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구름은 / 보랏빛 색지 위에 /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 부을면 꺼질 듯 외로운 들길.
- 김광균의 시 ‘데생’의 전문
어머니가 혼례를 올리던 날도 들녘의 황금 벼이삭이 머리 숙인 청명한 가을이었다. 근동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로 소문이 났던 어머니는 새신부가 되어 초례청에 섰다. 족두리 아래 용잠(龍潛)을 찌른 쪽진 머리는 탐스럽게 윤기가 흘렀다. 원삼을 입고 꽃신 신은 선녀가 되어 초례상 앞에 서자 둘러선 하객 모두 숨을 죽였다. 청사초롱 앞세우고 친영 온 새신랑의 입이 시종 다물어지지 않아 하객들을 웃겼다. 전안례(奠雁禮)의 기러기 한 쌍이 조심스럽게 초례상에 놓였다. 교배례(交拜禮) 후 기러기는 하님의 치마폭에 싸여 방으로 모셔졌다. 하님 역할을 하던 외당숙 아주머니가 대청마루의 턱을 넘다가 초라니같이 넘어져 기러기 한 마리의 주둥이를 깨고 말았다. 외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안 아랫목에 엎어 놓은 시루 안에 넣었으나, 수심 깊은 얼굴로 긴 한숨을 쉬곤 하였다. 깨진 기러기가 생각날 때마다 귀신도 시샘할 듯 유달리 고운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아 신령님께 빌고 빌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몸이 약해진 어머니는 서른여섯 살 되던 해 팔삭둥이 여동생을 낳고 핏덩이에게 젖 한 번 물려보지 못한 채 병석에 누웠다. 허리 굽은 할머니는 툭하면 “에미 잡아먹을 이 년이 죽어야 에미가 살 수 있다.” 핏덩이를 구박하며 미음을 떠먹였다. 멀건 미음으로 두어 달 질긴 목숨을 이어가며 가느다란 새 새끼 소리로 울기만 하던 여동생이 숨을 거두자, 아버지는 강보에 둘둘 말아 안고 먼 공동묘지로 허청허청 걸어 나가 날이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는 오랜 병석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하늘은 쨍하게 맑았고 뒷산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서럽도록 고운 가을날 오후였다. 이웃집 늙은 수탉의 긴 울음소리만 고즈넉했다. 그날따라 뜬금없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새벽이 아닌 낮이나 초저녁에 우는 수탉은 아주 불길한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도 생각났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어머니는 세숫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얼레빗과 참빗으로 오래도록 머리단장을 한 후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빛 고운 옷을 힘겹게 꺼내 입었다. 거울 속의 어머니는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11살 나는 병에서 다 나은 것 같은 어머니가 미칠 듯 좋았고, 새색시와 같이 변한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눈부셨으나 왠지 모를 그 숙연함이 싫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내 뺨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열기 있는 손길도 싫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뛰어나가며 아버지를 찾았다.
“엄마가 다 나아 일어났는데 아버지는 왜 빨리 오지 않는 거야.”
참으로 모든 것이 이상하고 낯선 가을날이었다.
그날 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더니 그해 한겨울에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나 버렸다. 어머니는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느라 그 가을 그리도 곱게 머리를 빗어야 했던 것일까?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백부를 염습(殮襲)하는 자리에서 문득 잊었던 그 가을의 오후가 생각났다. 늙은 수탉의 긴 울음소리 속에 낯설지 않는 아름다운 숙연함과 다시 마주친 것이다.
오 척 단구의 백부는 술에 취하면 무서운 얼굴의 주정뱅이가 되곤 했다. 평시엔 한없이 선량하고 인자하던 분이다. 허리가 구부려지도록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분이 아들딸 3명을 가난으로 잃고부터 험악한 주정뱅이로 변하였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주름 깊고 험한 얼굴로 굳어졌다. 그런 백부가 아주 편안하고 인자한 얼굴로 누워 있는 것이다. 반듯하게 펴진 허리는 키를 한 뼘쯤 늘어나 보이게 하였다. 백부는 이제 죽음을 넘어서 본래의 선량하고 인자한 우리의 큰아버지로 돌아오신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남은 생을 불태워 피워내는 회광반조(回光反照)의 마지막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문득 그 해 가을 고운 옷에 예쁜 머리로 단장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가 프로필]
경기도 파주 태생
명지대학교 졸업
경기도 중등학교 교사 및 교장 역임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운현수필 동인
[작품 심사평]
문장, 주제, 독창성, 감동
예심에 올라온 11편의 수필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았다. 문장의 구성력, 형상화, 주제의 일관성, 독창성, 감동 등을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 심사숙고한 끝에 윤태근의 <그해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를 신인대상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수필의 특성상 가장 택하기 쉬운 소재는 가족이야기인데, 유헌<받침 없는 편지>, 윤태근 <그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 김상남 <조족등>, 이순영 <어디쯤일까> 등은 어머니에 대한 글이다. 안량제 <홀로서기>, 홍성미 <한밤중에 일어나 춤을 추다>, 박순업 <아, 목동아>, 이정인 <호두나무>도 가족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며, 이영숙의 <시간 여행자>도 고가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역시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삼층장’에서 시간의 흔적을 느끼며 주제를 풀어나간다. 강귀분 <살맛나게 했던 욕>과 박위순 <사랑의 완성 타지마할>이 가족이야기를 벗어나 시장풍경과 인도를 여행한 기행수필 형식을 갖추었다.
유헌의 <받침없는 편지>는 감동 부분에서는 가장 훌륭했고, 그 점이 독창성으로 연결되었지만 평이한 문장으로 탄력을 느낄 수 없었다. 이순영의 <어디쯤일까>는 어릴 적 매화도에서 어머니와 동생과 살았던 기억을 그려낸 작품으로, 자식을 위해 헌신적이고 강인했던 어머니를 신에 비유하며, 어머니의 희생으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행복감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형상화 면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홍성미의 <한 밤중에 일어나 춤을 추다>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이끈다. 갑자기 떠맡게 된 ‘가장’이라는 현실에 미쳐가는 순간과 극복을 말하고 있다. 이야기를 연결하는 힘이 미약했지만 제목에 많은 이야기를 함축시켰다. 박위순의 <사랑의 완성 타지마할>은 객관적인 내용을 소화시킬 문장력이 부족했지만 사물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조명하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강귀분의 <살맛나게 했던 욕>은 재미있고 삶의 의욕을 느끼게 하지만 수필의 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면이 있다. 윤태근의 <그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는 낮에 우는 수탉의 불길한 울음소리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낸 작품으로 조락의 계절과 죽음의 연관성을 유연한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수필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신인 등용문을 통과했으리라 본다. 전체적으로 문장력은 좋으나 독창성과 감동면에서는 약하다. 작품의 구성이 느슨하고 안이하여 감칠맛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해야 독자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신인상에 응모하는 이들은 좀 더 습작기간을 오래두어 진지한 마음으로 수필쓰기에 임해주기를 바라며,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이후에도 수필의 소재를 가족이라는 울안을 벗어나 좀 더 시야를 넓혀 나가기를 바란다. 쉼 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고민하여 어떤 글감을 만나도 잘 다루어 완성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한동희, 김경실, 류인혜, 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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