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고민사(강소성 양주) ........선방에서 나가시오
이절은 수나라때창건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의역사를 가진도량이다. 시대를거치면서 몇 번의 불사가 있었다. 이지역에 수재가 자주일어나 삼보의힘으로 재앙을 맏고자 천중보탑天中寶塔을 세웠다
청나라 4대 강희제(1661~1722년)가 절의 보탑에 올라 주변경관을 바라보며 “때가 가을인지라 높은기운으로 매우상쾌하다, 하늘은 청량하고 맑다”말한뒤 고민사高旻寺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旻 은 가을하늘이라는 뜻이다.
후에 옹정제(1722~1735년)가 <옥림국사어록玉林國師語錄>을 보다가 감명을 받아 옥림의5세손 천혜선사를 원명원에 들게했다, 옹정제는 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에게 가사를 하사하며 고민사의 주지소임을 맡긴다
이후부터 고민사는 승려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크게선풍을 드날렸다고 전한다. 중국불교사나 사찰연혁에도 지나치게 왕권과 의 관계를밀착된곳이 많을뿐만아니라. 사찰연혁에도 왕권과의 관계를 무슨벼슬자리라도되는듯 기재하고있다. 웬만큼 큰사찰에는 行宮이있다. 이는 황제가 사찰에 다녀갔다는것을 알리기위해 만든당우이다
여산廬山의 혜원(334~416년)스님은 여산의 산문밖으로 나오지않고 30여년을 수행한 승려이다.
그의저서<사문불경왕자론 沙門不敬王者論 >에서 “승려는 황제에게도 예를 하지않는다.”고 하였다그만큼 승려는 삼계도사요,사생자부가 되기위한 출가자로서 세속적인 왕에 비유될만큼 정신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명예에 굴하지 않는 승려로서 카랑카랑한 위의를 지켜야 한다는데에 적극 지지하는바이다. 고민사는 중국선종의 4대근본도량에 속한다. 그어려운격변기에도 선종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건히 지켜나간다
재가자도 기도,참선때는 진한커피색깔의 장삼을 꼭입어야한다 불을 모두끈 상태로 300여명의 사부대중이 고요히 삼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