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야시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
야시(여우) 같은 사람하고 살 망정, 곰 같은 인간ㅋㅋ하고는 못 산다는 뜻이겠지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야시와 곰으로 나눈다면,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성질이 조급하고 주변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편이라 야시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저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아니었으면 그 때 죽었습니다. 이것은 조금의 가감도 없는 실화입니다.
1979년 12월경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저는 제대 후 복학한 영남대 국문과 4학년이었습니다. 박대통령 시해사건 후 휴교령으로 학교에 못 들어가니, 일부는 고향으로 가고 일부는 남아있는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산 캠퍼스 근방, 옛 75종점으로 건너가기 전의 조영동에서, 당시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월세방을 얻고, 밥은 적당히 사먹었습니다. 그 집은 ㄷ자 형태였는데, 양쪽 날개 부분에는 작은 월세방들이 너댓 개씩 줄지어 있고, 몸통 부분에는 주인식구들의 거처가 있었습니다.
월세방은 모두 방문 앞에 쪽마루가 있고, 쪽마루 밑에 연탄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뭣 때문이었는지, 추운 날씨에 쪽마루에 걸터앉아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당 건너편 어떤 법대생 방에서 뭔가 방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쿵하고 들렸습니다. 방문 앞 쪽마루 바로 밑에 있는 연탄 아궁이에서 연탄가스가 문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문 밖으로 나오면 사는 것이고, 못 나오면 죽는 것입니다. 노년층들은 직간접적인 경험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 학생은 다행히 자다가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 나오려고 하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져 방문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지요.
저는 대수롭잖게 여기고 제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칫 망설이며 돌아섰습니다. 제가 곰이었으면 추운 날씨에 그냥 들어갔을 것입니다. '쿵' 하는 소리 뒤의 정적감, 저의 민감한 야시 센서가 작동했습니다. 섬칫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쫓아가서 방문을 확 여니. 사람이 쓰러져 있고 연탄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 순간에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주인방 쪽으로 고함을 치며 그 학생을 마당으로 끌어냈습니다.
신음소리도 들릴락 말락 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듯했습니다. 놀란 주인과 옆방 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우리나라는 참 후진국이었습니다. 119가 없었습니다. 소방서는 불 끄는 일만 한 것 같습니다. 그 집엔 전화가 없었습니다. 경산 촌이라 전화 없는 집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습니다. 병원으로 데려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되는데,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간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찬 시멘트 바닥의 마당에 눕혀놓고 동치미 국물 떠먹이며 몸을 주무르는 게 전부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동치미 국물을 갖고와 숟가락으로 입에 떠 넣었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의식도 없는 사람을 바닥에 눕혀놓고 동치미 국물같은 걸 떠먹이는 것은 폐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더군요.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이렇게 하면 깨어난다는 경험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이런 류의 사고가 제법 있었으니까요. 의료보험도 없는 시대라 비용 걱정도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 학생은 한 30 분 만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요즘의 나 같으면, 당신은 내 덕분에 살았다고 공치사를 엄청 해댔겠지만, 그 때는 그 사람 이름도 모르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학생은 무의식 중에 살기 위해서 스스로 일어나 나오려고 하다고 쓰러졌고, 그냥 있으면 목숨을 잃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저의 야시성? 때문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학생은 누구 때문에 살았는지도 모른 채, 인생살이에 별 일이 없었다면, 지금은 할배가 되어 손주들 본다고 즐거움과 힘듦을 함께 맛보며, 이 세상 어디에서 잘 살고 있겠지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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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오래 전부터 우리 명교회 카페(늘 푸른 나무 13호)에 올려져 있었던 저의 글입니다. <늘 푸른 나무>13호엔 저의 다른 글이 실리고 이 글은 실리지 않았습니다. 13호는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편집 절차를 마무리하고 인쇄 작업에 들어가 있으니 며칠 있으면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이제는 <늘 푸른 나무>14호의 탄생을 위해 1년 간의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이기에 제 글도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앞으로 14호 편집의 책임을 맡을 분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돕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맡은 일을 대과없이 수행한 것 같아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4호에도 여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하옵니다.
박종갑 위원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원장님이 놓으신 받침돌 덕에 뒤의 사람은 매우 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글을 옮겨놓으신 배려까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