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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시집
안개여, 안개꽃이여
(1988년 9월 5일. 도서출판 거목)
* 해설 / 尹石山 「우울한 지성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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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시인의 말
아픈 것들이 내 마음뿐이랴
안개 속에 흔들리는 조그마한 풀잎의 냄새가 그리웁다.
싱그럽지도 않을 그 이름 모를 풀잎은 언제나 파아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을 꿈꾼다. 어니면 어둠과 맞서서 소리 업t는 울름에 지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렴풋이 확인되는 것은 안개 흩날리는 언덕에서 멀리는 모르스부호를 보내다가 간간이 한 소절의 신음같은 노래만 제 목청으로 부르고 있음이다.
말없이 떠가고 있는 세월, 미처 삭이지 못한 나의 목쉰 노래들이 어쩌면 풀잎의 떨림과도 같으리라. 흐린 시야에 가늠되지 못하는 나의 젖은 마음들이 때로는 자수정처럼 빛나는 한 줄기 시혼에 감전되어 어둠을 뚫고 구만리장천을 치닫는 별빛으로 녹아 흐르리라.
어찌 이 아픈 것들이 내 마음뿐이랴 마는 눈물 배인 몇 줄의 삶 위에 부질없이 돌팔매질만 해대는 너의 시는 아무래도 신통치 않음을 스스로 되뇌이면서 여전히 안개를 걷어내는 한 사내를 동숭동 마로니 그늘에서 만난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돌아온 애잔함 같은 시적 발상이나 내면적인 승화의 용광로에서 걸러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늘 쫓기는 몰골의 표출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 시집 『서울허수아비의 수화』를 재판가지 내 놓고 마냥 허허롭게 허수아비로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음은 아직도 설익은 자신을 두렵게 여기는 소이이리라. 항상 깨어있는 물상과 더불어 빈사상태의 영혼을 오래도록 접맥시키기 위한 을씨년스럽지만 나의 서투른 시업은 계속될진져.
아, 애타는 풀포기에 뿌려지는 한 모금의 감로수이리. 안개여, 뽑힐세라 겨우 붙박이로 살아남은 풀잎에게 앗아간 햇살을 돌려다오. 그리고 잔잔한 바람과 약간의 자양이 담긴 흙 한 줌을 내게 다오. 그리하여 시인의 텅빈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빛을 밝혀주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노래의 고즈넉함을 위하여 풀잎은 곱게 일어서도록 하여라. 아름답게 피어날 꽃 한 소이 염원으로 그 불빛을 찾아서 다부지게 나설레라.
모자라는 나를 항상 지켜봐 주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해 여름
金 松 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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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線이 던지는 물음
도시에 부려진 어둠 속을
별빛 몇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할퀴운 하늘 가으로
더러는 땅속 깊게 숨어서
스며든 눈물들로
서로의 행방을 확인하고 있다
가파른 숨소리, 여보세요?
누군가 암호를 던져주고
얼킨 선회의 굴헝으로
불빛 手話는 끝나지 않았다
네에, 치잉 칭 감긴 매듭이라 하지요
뜨거운 눈물로는
풀리지 않는 암호
아니 문명이라고요?
어둠을 삼킨 채
멀어져 가는 사람아
실핏줄로 옭아맨
되물음의 벼랑 앞에서 여보세요!
도시의 골복 안에 거미줄뿐이고요
그리고 또......
아, 네! 안개쪼ᅟᅥᆾ이 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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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水論
목이 마르다. 물새여
뭉게구름 한 점
당신 품에 쉬어가지 못함은
분별없는 우리들 가슴에
쏟아지는 검은 물보라
물새여, 예리한 눈초리를 피해
水草에 몸을 숨겼던 유년은
드뼈가 마비된 채
좀처럼 걷히지 않는 어두움
그리하여 밤이면
당신의 하얀 소살이 그리웁다
한 마당 乞粒패의 문화는
어디에서도 끝은 없는가
제 모습을 맑게만 비춰보던
한 떼의 피라미는
자라서고 목이타는
아, 오늘의 슬픔
개울물 소리 듣고픈 물새들의
꺼억꺼억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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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달은 뜨겠지요
기다림의 먼 달빛은 내 뜨락에 곱게 비추겠지요
아르테미스여, 밤마다 가슴 죄는 어둠이
겹으로 쌓이고 후두둑 쫓기는 별빛
꿈속에 너무 오래 묻어둔 응어리는 풀리겠지요
키가 큰 나무가 내 앞을 막아 선다
당신의 한 줄기 근다란 빛을 맞기 위해
잠들 수 없는 아르테미스여,
오늘 밤 달은 뜨겠지요
감춰진 당신의 말씀들이
어둠 속에서도 한 번 뒤덮히는 무서움도
달이 뜨면 모두 녹아 흐르겠지요
이승을 흐르는 강물 끝간 데를 향해
추적추적 풀꽃들이 흔들리고
어둠과 무서움의 샛길에서도
둥근 달은 뜨겠지요
머언 발치에서 월출을 기다리는
나는 또 얼마만큼의
눈물이 필요할까요.
--
幕은 내려지고
불이 켜진다
막은 내려지고
헐값의 눈물 한 웅큼과
박수 소리 객석에서 웅성거릴 때
우리들은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제2막의 숨겨진 미래를 기다린다
떼밀리는 시간을 분장하고
삶과 죽음 사이를 허우적이는
어쩌면 대본에도 없는
몸짓의 되풀이로 우리들은
데워진 가슴을 술잔에
다시 채우면서 끝남의
막은 내려지는데
어둠 속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얼굴마다 분장된 돌덩이 하나
버리지 못한 채
또 다른 무대 위에서
막은 올려지고
한 몸 헹구어 낼
휘모리의 대사를 잊은 우리들은
좁은 골목길에 버려져
비에 젖고 불이 꺼진다
이승의 아슴푸레한 노래 소리
지원지고.
--
圖上演習
안개 속에서
연필로 빗금을 그으면
너와 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모르스부호만 띄운다
천길 벼랑 앞에 서서 아스라이 멀어지는 누군가의 마지막 절규 같은 것이 가슴 조이는 우리들 일상 위에 낙엽으로 뒹굴고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이끌려 왜 벼랑을 따라 나설까. 툭툭 불거진 허물이며 알갱이 없는 삶을 다독일 한 줌 흙마저 바람에 앗긴 뒤 우리들의 가랑은 결코 연습일 수 없는 휘파람 소리만 능선을 기어오르고 그 시각 포장술집에선 술잔 부딪는 소리만 들렸다
다시 안개 속에서 수신된
처절한 가랑의 의미는
독한 술 한 모금의 무게로
구겨지는 종이조각
오호, 연필로 그은 빗금의
자국 같은 너와 내가 떼밀린다
벼란 끝에서 움츠린 나뭇잎
마지막 떨어지는 연습 같은 너와 내가.
--
숲 속의 대화
--움막집철거민갈곳없어음독자살
아침을 찢어내는 뉴스가
딋산 까치 소리를 지우고 있다
여름새들이
숲에서 도란거리면
담 너머 등나무
몇 잔의 독백을 마시고
--주거가목적이냐소유가목적이냐
수억대 철옹성에서도
황사 바람이 불고
연약한 풀잎 일어설 수 없는 영혼이
빗물에 따가는 소리
--상계동불암산기슭달동네할머니
집헐려소낙비내리는길바닥에쓰러져.....
아, 나뭇잎 지던 날
숲에서 잠들지 못하는
빗방울 소리-.
--
四月祭
거대한 빙산을 무너뜨리리라
우리들은 모닥불을 지폈고
드디어 도시는 화염에 싸여
용암이 흘렀다
추락하는 어둠이여
햇살이 누운 벌판에서
또 무엇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늘을 불 태우는가
쌓인 제단 앞에서
타고 남은 재를 보라
사그라진 낙엽들은
한 움큼의 거름이 되지 못한 채
아, 응고되지 못한 피 한 방울이
사랑을 잃어가는 4월.
드디어 도시는 제단을 다시 쌓으려나.
--
겨울 별자리
겨울 별자리에서 떼밀린
흔들림의 합창이었네
부끄러운 이름으로 떠도는
당신의 표정 위에
몇 백 광년을 달구운
호롱불 심지를 밝힌 채
나를 향한 손짓은
해질녘 그 눈물이었네
한 줄기 별빛은
당신의 마음으로 쏟아지고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부서지는
그림자를 만날까
아직도 기다리는 살별의 포물선
저승으로 이어지는 사랑이여
발걸음 총총히 꽂아 놓은 벌판에서
다만 붙박이었느니
이 航法을 잊은 반딧불처럼
뚝뚝 떨어지는 별빛이었느니-.
--
나뭇잎이 말하거늘
잎이 어느 날 말한다
잎에게서 흔들림의 미학과
아니 흔들릴 수 없는 숙명을
잎이 다시 잎에게 말한다
속이 빈 고목은 역사 위에 서 있고
젊은 사내는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아니야, 최루가스가 흩날리고
--매연으로 오염된 지상에서
흔들림과 무력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을비 소리
이젠 나뭇잎이 나에게 말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
누군가 잠들 수 없어
바람 소릴 듣는 것은 더운 아픔일러
내가 말한다, 떠도는 마흔 다섯 해
속이 비어버린 너에게
흔들리는 의미를 되묻노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흔들린다
암울한 빛깔의 두려움과
안개 속을 허우적이는 햇살과
우리의 막막한 소망을
모두 흔들고 있거늘.......
--
밤에 듣는 戀歌
한 생애를 꿈만 삼키는 그대 눈엔
언제나 잿빛 하늘이었습니다
잡초 뒤엉킨 들판에서
휘황한 불빛을 찾아
독나방처럼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사랑이여
땅 속에 스민 물거품이었느니
누군가 한 마장쯤 먼저 가서
손짓을 보내지만
이 밤은 영하의 골목입니다
서성임, 기다림, 그리움
(아직도 그 뜻을 정확하게 모릅니다)
어차피 해갈의 단비 내릴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우리들은 빛살 좋은 형용사를 내던지고
하루 종일 술잔만 비웠습니다
아, 어두움(한 줌의 흙이 되기 위해 묻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절망이라는 참뜻을 생각했습니다)
길게 엎드린 표정 없는 영혼아
너스레만 있는 세상에는
신들린 사람들이 꿈꾸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엔 하늘과 땅이 모두 잿빛이었습니다)
--
아가야 내게 무얼 말하려느냐
잔잔한 수면에는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멀리 사라지는 물결
초롱한 눈동자 속에 떠 있던 나뭇잎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내 젖은 옷소매를 다시 걷어 올리고
나에게 오래 기억될 동화를 만지면서
또 다른 연못에서 서성이지만
갈대들이 우우 바람에 눕고
별 하나 잠들지 못한 채 숨어 있구나
아가야, 무얼 말해 보렴
엄마, 아빠, 도리도리 짝자꿍
생긋생긋 웃음들이 물살처럼 지워지고
허수아비 허수아비
하물로 남겨진 나를 보았느냐
--무엇을 들려 줄까
하루 종일 비에 젖고 버려지는 낱말들
애비의 가슴을 흐르는, 아다야
파아란 하늘에 그려진
투며완 언어가 흔들린다
그저 침묵이 너를 향한 대답이거늘.
--
僞善의 겨울
움츠렸던 깃털을 세워 본다
한꺼번에 쏟아진 햇살 껴안으며
저 작은 새의 무리들이
훨훨 날아 갈 수 있을까
몇 해를 조심스레 견딘 어둠보다
枯死木 가지 끝에서 서러운 새여
하얀 옷 벗어 허공을 흔들면서
죽음이 아니라 더욱 무서운 것은
이 땅 짙게 덮힌 저 안개
따수운 체온을 받으리라
오래도록 내 속마음 감추고
덩실덩실, 잦은 살풀이의 숨가쁜, 그러나
춤사위와 가락으로는 지울 수 없는 凶殺
아, 노의 가슴앓이는 싸늘하구나
와와 밀리는 군중과
迷路에 깔리는 안개 속으로
사그라진 영혼의 손짓들이 오늘도 아픔이야
시시비비 시시비니, 비비시시
작은 새들의 울음 소리.
--
겨울 江
시간이 흘려보낸 강변 피조물들은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가
겨울나무 가지 끝
관념의 까치집 하나 매달고
백목련 지던 사월이 오는 건 두렵다
(사르뜨르가 보봐르에게 말한다)
겨울 강은 왜 흐르지 못하는가
아니지, 그 밑에 숨어서 도란거리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봐요
내가 흐르는 진흙벌에
설렁 바람이 거꾸로 불어온다 해도
한 덩이 희 구름은 떠 있으리라.
--
春帖
봄은 오는가, 슬픔을 지우며
내 가슴 깊숙이
수런수런 다가오는 예감들이
나뭇가지에서 흔들린다
어둠 속을 용케 빠져나간 발걸음들이 서성대는 지금의 지상에는 까맣게 실려간 그리움들이 하늘에 떠돈다 어쩔거나 첫잠 깨워 쏟아지던 눈물들이 봄비에 섞이려나 오랜 기다림을 씻어갈 일기예보는 어쩌면 오늘도 그 무게와 그 방향만 가늠한 채 몇 퍼센트의 맑을 확률은 없음.
마로니에 가지 끝에서
진정 봄은 오려나
물 머금은 듯 파르라한 꿈이여
얼쑤덜쑤 한 마당
내가 걷는 희미한 골목에는
저녁 햇살마저
저리도 찌푸린 얼굴일까.
--
廢鑛의 그림자
떠나야 하리, 긴 눈물 거두며
夜半에라도 떠나야 하리
버럭 속에 묻어버린 낡은 꿈이며
가끔 흔들린 나뭇잎
모두 버리고 떠나는 이유를
우리들은 모르리
뚫린 내 가슴 근처에서
찾아나선 감돌은 보이지 않고
별빛 숨어버린 막장에는
환상의 찌꺼기만 괴어 흐르네
德大도 떠난 무너진 갱도에
남아 있던 그림자들
산그늘을 서둘러 따라갔는데
떠나지 못한 내 발꿈치에서
누군가 눈물이라 말하리라
천년을 두고 삭지 못한 坑木 하나
저문 골짝에 누워 있는 숨결이여
나는 지금 서둘러 떠나야 하리.
--
어떤 떨림을 위한 傳言
언제나 곱던 저녁놀을
지금사 핏빛 깃발이라 할 수 있을까
풀잎이 내 앞에서 흔들린다
사람들은 안개 속을 지나기고
어설픈 절규들만 약속처럼 서 있다
--이봐, 무얼 그리 두리번 그리나
어지럽다, 여린 가슴을 훑어가는
목청 높은 표어들이 역사를 만들고
방향이 없는 바람 줄기
--아하, 귀찮은 잡풀들은 밟아버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잠시 머물렀던 내 영혼이
어릴 적 물들인 노을을 보고 있다
은은해야 할 사랑의 노래 한 소절도
풀잎처럼 모두 떨리고 있다.
--
안개꽃 시대 . 1
可視 거리에서 마주 섰을 때
나와 너 사이로
짙은 안개가 깔리고
산을 넘어 무섭게 꽂히는 안개비
안경 유리알에서 멎는다
이것은 살아 있는 것들이
최후의 햇살을 쬐는
아하, 눈물겨운 모습일까
이제 다가서는 안개비를 피하여
작은 몸뚱아리를 챙기고
천천히 사라져야 할까
넘쳐지는 강물을 보듯
너에게로 투영되는
너의 싸늘한 모습들만
얼룩무늬인 채
감춰두려 한다 안개 속으로...
잠깐 눈물로 태어났다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시대에서
모였다가 흩어질 수밖에 없는
안개여, 안개꽃이여.
---
안개꽃 시대 . 2
별이 떨어진다
어둠을 위한 기도는 없을까
총총한 별들이 한 번씩 반짝일 때마다
밤을 두려워하는 내가 숨죽이며 서 있다
별이 되는 꿈이 빗물에 씻기고
죽은 자는 환상을 실천하고 있을까
별이 모두 흔들린다
떼밀리는 인파 속에서
흔들림만큼만 살다가 가는 것일까
오늘은 별들이 빛을 잃어간다
햇빛 속에서도
안개만 뿌려지는
밤에도 안개꽃은 피는가.
--
안개꽃 시대 . 3
안개 덮인 연희동 산번지에는
뻐꾸기가 안개 속을 울고 있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의 포성을 듣고
안개비로 뿌려진 한 사내가
그저 산번지에서 섧게 울고 있다
이제 저만큼 흘린 눈물이
새벽 이슬로 맺혀
비밀스런 업보를 가르고
가슴에 남겨진 숙명으로 돌릴거나
풀꽃처럼 비탈길에 웅크린 채
안개를 쫓아가는 숨소리여
용서하옵소서-
자신이 예비하는 질화로 속에서
스스로 녹아내리게 하소서
뻐꾹 뻐꾹-
안개로 흩날리는 소리.
--
안개꽃 시대 . 4
청산에 달 그림자 기울 듯
암울한 몸짓들은
이 밤을 예감하는 울음이었나
서울의 하늘에는 안개비만 자욱하고
구겨진 신문지는 목이 메었다
얼룩진 영혼을 찾아나선 골목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낯설고
저만서 혼자 외우는 呪文
아, 스스로를 잃어가는 안개 속에
흩어지는 언어의 잔해들이여
목마름을 위해 엿듣고픈 비둘기의 구구 소리여
안개 덮인 세상에는
흐느적이는 풀잎들만 남았는가
청산에 달 지고
제자리를 비켜서는 저 사람들
모두 안개꽃이었나?
--
안개꽃 시대 .5
오뉴월 불볕에도
안개꽃은 서러워 서러워
弔銃 소리 들으면서
연습하듯 살아가는 지적도 위에
누워 있는 나의 영혼
꿈꾸는 오로라여,
내 걷던 길 잠시 멈추어
먼 하늘 휘둘러보면
어둠 속에 뿌려진 눈물뿐이던 것을
네온이 달빛을 삼키면서
안개꽃은 밤에도 서러워
별빛이여, 그냥 돌아갈까나
뿌연 안개 저 너머 뵐 듯 말 듯
이승의 그림자는 더욱 서러워도
하얀 넋으로 남아 있을 이녘이려니
조총 소리 멎어지고
어디론가 흐름을 가늠하는 자여
안개의 땅, 안개꽃은 서러워.
--
안개꽃 시대 . 6
안개 속에서도 항해는 할 수 있을까
영범 몇 이하로 낮아진 시력
여전히 안개비는 뿌리고
누군가 手信號를 보낸다
퇴색된 추상화에 던지는 우리들의 초점은
희미한 기상도와 표류하는 영혼
어디쯤에서 닻을 내릴까
알 수 없군요
이승과 저승 사이
끝없는 미궁의 물안개 속에서
매우 위험한 항해를 시작하는
이 시대의 고통
찟겨나간 돛폭과 흔들리는 등대불빛
어저면 젖어버린 백머리로
떼밀리고 있는 사랑이여
멈춰선 나침반은
아아, 방향 감각이 없는 이 바다에서
나 또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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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시대 . 7
서울의 밤은 아아
누군가의 신음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찾고
또 무엇을 엮어가기 위한 미로를
까맣게 헤매다가 언뜻언뜻
적신호를 보내는
서울의 밤하늘은 안개였다
그러나
무엇 하나 성취하지 못한 미물들이
아우성치며 몰켜간 빈 골목에는
뿜어대는 담배 연기만
나와 함께 부풀었느니
별을 위해 잠들지 못하는 서울의 밤이여
밤새도록 퍼내는 우리의 아픔
끝없이 되풀이하는
인자(因子)들의 아, 그 풀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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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시대 . 8
--통일전망대의 안개
북녘 하늘은 안개였습니다
민통선 지나 위험, 지뢰지대를 지나서
해금강 맑은 은어들이
남쪽으로 향한 채
전해줄 옛 이야기를 잊엇슴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몇 해를 젖어 있는 기도를
딩딩딩 범종을 울릴거나
안개 속 멀리 분계선을 녹일거나
키위새여, 오늘의 키위새여
구선봉 어디쯤에서
들려오는 그리움의 노래
우리들은 손끝으로 금강산을 가리키며
차가운 돌덩이 하나씩만 등짐진 채
그냥 돌아서고 있습니다
안개는 모두 북녘에 몰려 있고
하늘이여, 저들을 보옵소서
저승의 비명 소리, 안개여
뜨거운 사랑으로 어화둥둥 사랑으로.
--
안개꽃 시대 . 9
이만큼 흘린 눈물
눈동자에 어려
물안개 되었나
훠이훠이 손들어
안개 걷어내는 사람아
마당 끝 감돌던 허상들이
안개를 삼키면서
예감을 견디기 어렵구나
무엇인가 쿵쿵쿵
가슴 때리는 소리
두 팔 벌려 허위적 안개 속에 묻혀지는
꿈이어라, 하마 깨진 꿈 조각이어라
그렇게 입술만 깨물면서
마르지 못한 눈물 어려
오늘 아핌 안개꽃이 되었나.
--
안개꽃시대 . 10
우리 만남의 흔적들을
지우면서 눈은 내리는데--
서로가 몸 부비며 데워진 체온일랑
진누깨비로 뿌려지며
헤어지는 아픈 발자국은
펄펄 눈덩이로 쌓이누나
변이(變異)를 사랑하는 신이여
어쩌다가 골목길에 웅크린 자의
탕감될 수 없는 죄업을
내가 확인하게 하소서
눈발은 다시 사랑을 지우고
불투명한 것들만 넘어지는 빙판에서
어디로 숨을거나
속죄양처럼 가파른 저 숨소리
이 세상 끊을 수 없는 인연과
눈물을 묻어 버리지 못한 채
눈은 온 누리를 덮어가는데.
--
안개꽃 시대 . 11
--키위새의 울음
1.
診脈은 늘 모세혈관을 투시하지 못한 채 빗나가는 꿈이었다. 얼어붙은 마음들이 간간히 새벽의 신화를 쌓으려는 환상의 곡예처럼 묵매인 살풀이의 대사는 어둡다. 한 가닥 양심으로 웅크리도 앉아서 어디에도 없고 꽃향내를 기다리랴. 세월이 비켜가면서 던져버린 체념으로 온몸을 감싸고 멀어지는 상여소리나 들어야지. 아득한 먼 구름 한 점 속 감춰진 빗물이사 落差의 예감도 없이 뿌리는 안개비--어흥어흥어화리넘차어흥 명사십리해당화야쫓진다고설워마라 어흥어흥......
2.
끝내 막을 내리는 징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진흙탕에 스스로 빠지지 않기 위하여
날아가자--
여린 햇살이 풀숲을 서성이고
파아란 하늘은
어디론가 그냥 떠가고 있었다.
--
안개꽃 시대 . 12
--날도래 幼蟲
지난 세월 못잊어 아라리야
한 몸 철옹성에 감추고
역사는 새롭게 창조하리라
성문엔 굵은 금줄을 쳐라
묻지 말기
말하지 않기
살얼음 위에 그냥 서 있기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고
강바닥 돌멩이며 풀이기들은
나의 築城에 협력하리로다
1974년, 정초에 만나 우리들은
어두운 통술집에 앉아서
돌연변이로 날아가는
날도래의 껍질을 보았다
아라리야 아라리야.
--
안개꽃 시대 . 13
--相思花
잎들은 스스로 피운
꽃망울을 보고 싶어 했다
이 땅에 불어오는 저물녘 바람이랴
산천을 흔드는 풀꽃이랴
주말 대학로는 불타고
4월의 태양도 불타고 있었다
나와 그대 함께 잃어버린 화염 속
행간에서 지워지는 노래이랴
바람은 잎만 흔들고
꽃은 피울 수 없는가
꽃은 안개 비집고
흔들리는 잎이 공존하는 걸 싫어했다.
--
안개꽃 시대 .14
그날 광화문근처에는
안개지대로 선포되고
몇 마리의 무당벌레가
똑 같은 빛살무늬로 모였다
개헌운동이 정치활동이 아닌지?-유신학술원은 정치 활동이 아닌지(되묻는다).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참가 서명했는데...? -기본 취지가 옳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다. 공무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주권 국민으로서 국가 장래를 위한 의사 표시일 뿐이다. 끝으로 본인의 의견은? -문학자적 양심에 따른 이 행위는 지성인이 갈망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하고 실천할 책임의 막중하다.(1974. 12. 9. 11:55. B교수 퇴장)
무당벌에들은 돌아가고
정오의 햇살이 따가운 길목
아직 푸른 은행잎 하나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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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시대 . 15
1.
마의태자여, 父王의 親民에의 정을 너무 탓하지 마시오
태양이 그 빛을 감추고
온통 지상은 울음이었소
산중에서 보는 구름빛
천 년을 흫러도 하얗게 맴돌지니.
2.
가시나무새여,
눈물 거두지 못한 내 곁에서
이제 우리는 말을 잊었기에
단 한 번의 노래를 들려주오
내 몸이 부서져 내리는
눈부신 은빛 노래를 -
3.
빈 껍질들이 허위적
안개지대를 감싼 유령들의
놀이마당에선
새로이 사랑을 찾아가는
나의 지독한 떨림, 그리고 불투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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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시대 . 16
-日月潭 韻
波浪注意報
내려진 남지나해 해상을
구름이 여기저기 흐른다
지구 위의 그리움 모두 뿌리며
호숫가에 깔리는 세월
어쩌면 우리 지도엔
아픈 이웃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 들리지 않는 대답을 기다린다
이국 旅路에 널브러진
일원담의 안개여
아시아의 눈물이여.
*1988.1.15. 아시아시인대회(대만)에 참가한 뒤 일월담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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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를 위하여
긴 겨울밤
불그지 못하는
그대 뜨거운 마음 한 쪽은
하얗게 비워 두리라
가장 쓸쓸한 것들만 한 장씩 찢어내는
그대 곁으로
사랑의 노래
한 소절만 띄워 보내리라
물망초 설움 같은
내 차거운 뜨락에는
마지막 기도 소리도 끝났는가
흔들리는 창 밖
이 밤을 밀어내는 빗소리
은밀한 기억을 태우고
젖을 대로 젖어버린
하얀 마음 한 쪽은
그냥 비워 두리라
먼 훗날
은하가 흐르는 우주를 담을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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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
한 줄기 만남의
메아리라 하네
꿈을 버린다는 것
살아가면서 꿈을.....
해질녘 산봉우리에 걸린
어쩌면 한 무리 구름이라 하네
그대 가슴 속엔 뜨거운 사랑
내 비워둔 마음밭에
꿈 머금은 꽃망울이라 하네
지금은 우리들 사랑이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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奧地에 켜진 등불
-시인 尙南
오랜 가뭄을 적시는
보슬비는 향그럽다
시든 풀꽃 쓰다듬는
따사로운 손 끝에
한 권의 복음서가 펼쳐지면
멀리서 혹은 곁에서 들리는
둔탁한 음절도 녹아 흐르고
오지에 비 젖는 날
숨 막히는 어린 자벌레들
그의 부드러운 정원에서
넉넉한 사랑을 손질하고
젖은 마음들을 말린다
순백의 깃 드리운 찻잔 속에
일렁리는 멋 가득 채우고
아, 내 마음 끝간데를 몰라
더듬어 보는 언어들
저만큼 앞서 걷는
그림자만 따라 가느니
쌓인 어둠 속에 부려놓은
소중한 우리들 사랑을 위해
시를 위해
오지를 밝힌 저 등불.
*尙南 : 成春福 시인의 아호. 그의 시집에 [奧地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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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감나무
고향집 감나무 밑에 멍석을 깔거나
감꽃이 눈물로 지던 날
형제들 모두 떠나고
길쌈하는 어머니만 앉아 있었어
--한 광주리 삼을 삼아
시어머니 적삼 짓고
길쌈노래
한 도투마리 감니 채
어머니 무릎 베고
승천하는 용굼만 꾸었어
잊어야지, 잊을 수 없는
고향집 감나무는
감 한 알 여물 수 없어
오늘은 왜 이리도
꿀벌 소리조차 싸늘한가
--춘아 춘아 옥단춘아
버들잎에 새단춘아
어머니 삼베 짜는 소리만
여름비에 젖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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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앉아서
초상화가 걸려 있다
나를 알아보는 목소리도 들리고
옷깃을 여미는 아침이면
네가 퍼낸 눈물자국 위러
짹짹 참새떼만 날아 간다
다시 태어나고파
아픔이 고였던 자리에서
계율을 삼키는 단근질 소리
아아, 아물지 목한 상채기여
어디선가 나를 꾸짖는
너를 보고 앉았노니
어머니, 원점에 다시 서렵니다
전생에서 파닥이던 신음 한 갈래
몇 년째 마름질만 하면서
패배의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성애를 닦아내는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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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解
폐선장에 비 내리고
개펄에 엎드려 고해나 하리
구겨진 海圖 위에
모진 형벌로 비는 내리고
한 마당 굿거리는 끝이 났으니
어기야, 바다에 바람 불어도
이젠 서둘 일 없어라
등대 불빛이 비에 젖고
지워진 별빛
마지막 고해나 하리
내가 정박할 지옥에라도
선착장은 비어 있을까
안개 속을 멀어져 가는 해조음
어기야듸야, 어둠 깔린 방죽 너머
사랑이여, 절여진 뼈마디로는
마파람 소리 듣지 못함을
내 어찌 하랴
해일 잠든 개펄에 누워
다시 비에 젖고 고해나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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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
광화문 근처에서
한 떼의 어둠이 서성이면
퇴근길 醉氣가
비어 있는 가슴을 후빈다
별빛만 헤아리던
나의 손
식은 땀 고이는 일상의 되풀이
--가진 것도 가질 것도 없는
언제나 텅 빈 나의 손
비어 있으므로 아름다워라
광화문 지하도에는
어둠이 더욱 비틀거리고
겉보리 한 줌 움켜 쥔
어머니의 눈물을 닮아
젖어 있기만 하는 빈 갓므
젖어 있으므로 너는 고와라
별빛이 어둠을 녹여
가느다란 손금 위로
긴 강물이 출렁인다.
----
그저 낙엽을 쓸 듯이
-故 全在洙 시인
낙엽이 지면
겨울나무는 밤새도록 울고
우리는 그 낙엽을 쓸어내는 일
설레였던 짧은 생애
향불 내음보다 더욱 서러운 것은
쓰다가 버린 원고지를 챙겨보는 일
그리고 그 간절한 숨소리만
가슴으로 들어 보는 일
어느 날 시인은 떠나고
툭툭 떨어지는 먼 彼岸의 노래
우리는 그 영혼을 달래는 일
그저 해묵은 싯귀 위에 먼지를 털고
흔적들을 지워가는 일
마침내 언땅 속에 구름 한 점
고이 묻어 주는 일, 아아
그러나 못다 사룬 詩魂이여
그저 낙엽처럼
쓸어버릴 수 없는 일.
---
허수아비 이후
겨울 논펄에 그냥 서 있습니다
저녁놀만 쳐다보며
身熱로 일그러진
참새 한 마리
아직도 후여, 후우여-
안개 속 날아간 마음을 찾습니다
銀河가 흐르는 밤
벗어던진 허물들을 삭히면서
저승의 늪에서 꽃잎지는 숨소리
어찌하랴, 논둑길에 버려져
그리움 지우고
벼 이삭 하나 지켜가는 이름으로
그림자만 쫓을거나
고향 빈 들녘에는
풀풀 지푸라기 찬바람에 섞이고
나는 마냥 부끄럽게
이 겨울을 하염없이 서서 기다립니다.
---
가을 엽서
창밖에선 나뭇잎이 후두둑
어머니
그 청청하던 여름날의 기억
하나쯤은 책갈피에 묻어두렵니다
귀뚜리 소리, 그리운 사람아
도란도란 피어오른 덩겨움
먼 고향으로 얼비치는
동심의 엽서 한 장은
꽃송이에서
이제 막 영글은 영혼일까요
누군가의 손짓으로 멀어져 간
나직한 어머니의 목소리
코스모스 꽃길에 뿌려지는데
나는 마지막 매미 울음을 듣습니다
가을, 내 작은 기다림이여
포근히 스민 울 엄마 품안에
사뿐사뿐 흐르는 노래 한 음절
그것은 모두
꽃잎들이 밤새도록 속삭인
넉넉한 사랑이었습니다.
--
臨終
꽃비가 내리는 길
쉬엄쉬엄 가고 있었네
낯익은 얼굴들 지우고
어쩌면 슬프다, 슬프다
탁 트인 길에서 들리는
이승의 바람소리
해지는 西向 어디쯤
산그늘과 섞이는
희미한 아픔
어디론가 쫓겨가는 고통을
내던지는 먼 하늘 끝
꽃비 내리는 길
北邙 산비탈 일구어
혼불 지피고
이제 접동새 울음이나 들으리.
--
그리움
이슬 내리는
저녁 철길에 서 있다
南으로 뻗어 아스라한 별빛
그 끝남의 언덕에는
유년의 옷가지들
지금도 널려 있고
젖어 있는 기원들도
아물아물 함께 떠 있다
--나는 달리고 싶어.....
(철도중단점?)
그리움만 몇 해를 떠돌지만
한쪽 눈을 감은 채
좀체로 마음을 열지 않는 철길은
녹이 슬도록 긴 잠만 자고 있다.
--
산책을 하노라면
새벽길, 산책을 하노라면
未明을 걷어내는
풀벌레 울음소리
끈적한 粘液의 예감들로 묻히고
무거운 昏迷의 되풀이는
밤 세워 맺힌 이슬일까
산책을 하노라면
먼동에 되비치는 당신에게
이어지는 새벽 바람
너무 오랜 바램들이
이슬 위에 뚝뚝 떨어진다
이젠 돌아가리
아들이, 딸이 그리고 아내가.....
내 가슴에 넘치는 햇살이여
바른 자세로 너를 볼 수 없는
부끄러운 가슴이
또 아파야 할거나
서툰 시 한 줄로 가름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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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火여, 우리들의 노래
--88서울올림픽을 경축함
아침 햇살 동해에 물들면
어둠의 사뤄 간
합창 소리 들리네
오랜 비바람 잠재우고
활짝 핀 꽃동네
보아라, 내 가슴에 안겨오는
꽃구름 성화여
올림피아 먼 길 달려와
여기 서울을 밝혔느니
젊음의 꿈 한 아름 엮어
타올라라 타올라라
너와 내가 하나 된 마음으로
하늘로 솟아오른 화함의 혼불이여
따사로운 이 땅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계의 서울
싱그러운 바람 일어
멋 가득 넘치는 아침의 나라에서
들리리라, 바다 건너 울려퍼진
승리의 함성 오, 우리들의 노래여
아침 햇살 곱게 이 山河 물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펄럭일 염원
평화의 깃발이여
우리들의 노래여
지구촌의 영원한 빛으로 남으리라
찰랑이는 한강의 저 물결같이
아름다운 모두의 마음밭같이
성화의 불길로 타오를, 아아
한국이여, 내 조국이여!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문협에서 실시한 축하 시낭송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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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대한 명상
포근한 엄마의 가슴
사랑이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모야보야 노란 모야 언제 커서 열매 열애
이달 크고 훗달 크고 구시월에 열매 열지
촉촉한 입김으로 대지를 데우고
내가 썩어서 사랑을 느낄 때까지
숨죽이며 꿈을 묻는다
--이 논배미 모를 심어
열매 맺어 장할래라
햇살이 나를 감싼다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 품안
슬픔 것들은 가라앉고
사랑의 물소리만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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除夜의 첫불
눈이 내립니다
하얗게 쌓인 눈덩이처럼
이 땅에도 축복을 내리소서
한 해가 떠나는 길목에서
되돌아보는 발자국
자국마다 고여 넘치는 눈물들은
남김없이 녹아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움츠렸던 가슴들은
넉넉한 사랑으로 거두어
除夜의 밤 따수운 자리에서
새 봄의 비상을 꿈꾸게 하소서
눈은 내리고 섣달의 밥이여
흔들리는 겨울나무
눈송이의 싸늘함을 위하여
제야의 촛불을 밝히소서
온누리에 뜨겁게 밝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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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思父詞
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대 사랑의 눈물 마른 자리에서
고개 숙인 채로 그냥
갈잎 하나 흔들지 못하고
지난 밤 산짐승 울음에
놀라 비껴가는 바람이엇습니다
저승에서 눈덮인 산길로 오는
당신의 비틀거리는 그림자
겨울밤을 지새우는 호롱불이여
꺼이꺼이 발자국 주위를 어른거리다가
되찾은 기억은 어럴럴 상사디야
硫黃泉水 한 모금 적신 텁수룩한 체구로
밤마다 다가오는 흔적들은
이제 지워지지 않는 노래로 엮어
고향 감나무에 매어 달거나
빛바랜 가락 어럴럴 상사디야
구성지게 일렁이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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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遠近法
해발 팔백여 미터 대관령은
여전히 시야가 흐린 아흔 아홉의 구비
아슬아슬한 내 짧은 삶들이 깔리고
안개지대-갑자기 그리워지는 이승의 바람 소리
되돌아보는 원근법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지대
속도를 줄이시오
사각뿔 기둥 동쪽 평면에서 아스라한 동해의 파도는
아직도 아쉬운 그늘을 지우며
구름 위를 빙빙 돌고 있는 지상의 그림자들
무엇인가 쩣기는 듯
그 아우성을 씻어갈 수 있을까
아하 위험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무지개
저 嶺 너머, 무엇을 가슴속에 그리나요
졸졸졸 뒤따라온 강릉의 물소리
저승을 연결하는 꼭지점에서
안개 비집고 방황하는
한 줄기 햇살과 초점을 맞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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片雲齋의 햇살
시인의 손짓은
바람이 머물다 떠나보낸 언덕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어머니의 정갈한 마음일래
한 줄기 결고운 구름은
끈끈한 인연으로
강물처럼 흘러흘러
안성 난실리에 안긴 한낮의 햇살일래
산새들의 속삭임
편운재 툇마루를 돌아
양지바른 聽蛙軒 창가에 녹아 스민
촉촉한 내 가슴 속 긴 메아리
하얀 구름 조각
아득히서 예까지 달려온 마음
깊숙이 단아 두는 노래일래
포근한 사랑일래.
* 편운재 ‘ 경기도 안성 난실리에 있는 조병화 시인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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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統線 부근
역사는 지난 밤 내 꿈 속 새처럼
어둠을 풀어 선회하는
꼬불꼬불한 강물이었나
민통선 부근, 파르라한 숲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 한 마리 포롱포롱
울음 울며 아직도 아름이야 아픔이야
날개 찢긴 산하에는
말없이 흘러간 핏빛 세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아
남과 북이 자유로운
구름 한 점 닮을 수 없었느니
응어린 진 가슴이여
砲煙을 씻고 이잰 눈물 거두며
뜨거운 사랑, 어화 둥둥
凍土에 뿌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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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에서
일출을 기다릴까
내 먼 꿈조각 흩날리는
안개비가 될꺼나
탁트인 지구 끝으로
떠나보낸 그리움
바다에 솟구치는 아픔이여
날 봅서, 굳어버린 내 마음
떠오르는 햇살로 녹일 수 있을까
등땡이에 눈물 한 짐 져아정
아명아명 가보라마는
성산포에서 멈춘 영혼들
아, 후련한 바람 한 줄기
너와 더불어 철석철석
영육의 때를 씻어 갈 파도여
제기 옵서
내 사랑이여, 한저 온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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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둘목에서
바람은 낮게 남해의
긴 어둠을 저어하다가
소용돌이치는 그 역사의 물길은
차마 잠들 수 가 없었네
굽이굽이 돌이키는 해면에는
野性의 굴레가 침몰하고
활시위는 윙윙 위잉 윙
우수영 하늘에 구름으로 떠 있었네
저물도록 깨우친 향내음
내 가슴 깊이 빛 바래지 않고
지금사 보는 물굽이 물살은
그냥 눈시울 뜨거운 바다새였네
바람은 조금씩 낮게
더러는 뭍으로
길게 돌아나오는
역사의 빛깔을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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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宮 산책
얼룩진 단청은 외롭다
가을 햇살을 베고 누워
한 시대의 인적 끊긴 선돌 위
지울 수 없는 몇 줄의 흔적들
긴 세월을 젖게 하고
그날의 영욕을 되새기는
뜨거운 눈물 자국만
수막새 기왓장에서
비밀스런 문을 닫은 채
여디선가 들릴 듯
나인들의 고요로운 음성
玉橋 지나던 길목에서
바람이 웅얼거린다
새로 난 정원길에
스러지는 고목잎 하난 둘
빈 하늘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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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을 걸으며
멀리서 손짓하는 바람따라
텅빈 가을 길을 걸어간다
오래도록 삭지 못한
낡은 염원 하나씩은
코스모스 꽃잎 위에 던지면서
가을을 가고 있다
허허로운 발걸음
낙엽 바삭이는 소리에
아득히 지워지는 그리움
저문 계절에 서서 응어리 진 채
아픔 사랑으로 풀벌레는 잠들지 못하고
길섶에서 흔들리는 꽃대궁들은
들판에 펼쳐진 그 넉넉함도
길가에 붓그린 밀어도
누군가 잊어버린 노래여라
길섶 도랑에서 들리는 저 빗소리
오, 나의 애잔한 사랑이여.
---
바닷가에서
몸과 마음이 화해되지 못한 채
무엇인가 가슴에만 부딪히는 파도 소리
불투명하게 부서진다
여름의 열기로
영혼의 몸짓은
오래도록 화해될 수 없는
영욕의 깃발이 아니고
차라리 깨어나지 못하는 잠이기를--
숨죽인 모래알들이
아픔 흔적들만 되새기고
아, 삶을 알려고 죽음을 묻노니
갈매기의 눈물로
되돌아가는
파도가 밀려온다
동강난 내 몸과 마음이
함께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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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로니에 공원을 휘돌아 나온 한 떼의 천사들이 투명한 창 너머 파랗게 손짓하는 한 점 구름을 만나고 있습니다
긴 그리움
봄비에 젖은 채
허기진 언어들만
바람에 날려가고 있습니다
그 해 겨울
차갑던 영혼을 달래면서
들려주는 한 마당 굿거리는
잠시 출렁이는 강물입니다
훌훌 뿌려지는
해묵은 껍질들은
가슴으로 되받아
하나씩 벗겨내고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봄볕이 어설픔 공간에서 맴도는 구름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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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江의 노을
내 고향 황강
노을이 곱게 물들면
은빛 모래에 묻어둔
내 발자국 소리 들리네
갈대꽃 한 ᅟᅡᆼ름 흔들리던 날
白鷺들 한가로이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하였네
가야산 휘돌던 구름 한 무리
내 가슴에 고이면
옛 大倻의 횃불이 어둠을 밝히었네
오, 백로의 찬라나한 비상이여
竹竹의 영글은 꽃망울이
여기에 영겁으로 피어 흐르리
흙내음 배인 논펄에서
합천의 영혼들은
오늘도 곱게 퍼져나가는
이 강산의 아침햇살이었네.
*황강 : 경상남도 합천군을 흐르는 강.
*죽죽 : 신ㄹ하의 충신. 백제의 윤충과 싸운 대야성주 품석장군의 부하. 지금도 비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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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길목에는
낙엽이 비에 젖고 있다
썩어서 거름을 예비하기엔 아직도
저 멀리 있는 햇살은
우울한 좌표 위에서 증발하고
낙엽이 돌아누우면
곧 겨울은 내 속살에 깔릴테지
제법 寒氣를 담은 바람이 분다
모두들 옷깃은 세우고
]비록 진부한 우리네 삶일지라도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아아, 내면으로 응고되는 눈물의
의문부호를 허물기 위함일까
젖은 낙엽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는
응달 동네로 돌아가는 바람 소리
눈이 쌓이면 낙엽은
또 다시 봄, 여름 지나간 계절을 꿈꾸고
우리네 살아가는 아픔이야
하나씩은 접어 두겠지
겨울 길목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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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바다
가녀린 내 마음은
해맑은 Rnamd로 엮어서
초록 바다에 띄울거나
기다림이 쌓여서
이승으로 도비치는 은모래의 숨소리
우리들은 바다 속에 숨어서
두려움을 씻을거나
당신이 머무는 밤 사이
물앙초 한 소이 둥둥 떠가는
사라의 노래
하얀 모래알의 그리움일까
두세 치 깊이의 우울한 바닷가
초록빛 영상으로
젖은 가슴 말리는
이 밤의 아픔을
너는 모를 일, 너는 모르리라.
--
廢家 앞에서
고향에 떠 있는 저녁놀은 지금도 수줍었다
고향 가는 길목, 그리움의
풀섶에는 풀벌레도 조심스레 떠나고
낯선 사람들의 발자국만 남아 있엇다
돌아가거라, 언제부턴가
꺼져버린 사랑방 불빛은 휘휘 손을 내젓고
돌아앉은 孤魂들만 헛간 구석에서
안타까운 노래나 부른다
무겁게 꽂혀버린 이방인의 젖은 발걸음
무너진 용마루에 빙빙 돌면서
오냐, 훗날 빈 가슴으로
다시 네 곁으로 돌아오리라
무디어진 나의 언어는
저녁놀 위에서도 부질없다.
---
성묫길에 훠이훠이
그가 나를 버렸을까
내가 그를 멀리 했을까
묘비명도 없는 그대의 무덤 곁에서
잡풀을 뽑고 술잔을 올린다
꽃상여에 실어 보냈던 길섶에는
눈물 받은 山菊이 흔들리고
그대는 지금 어디에 머물면서
희뿌옇게 멀어지는 메아리
고향과 그대를 모두 버렸을까
질펀히 누운 논펄에서 나는
아직도 기다려 보는 해질녘의 그리움
한 줄기 바람도 그대의 목소리로
되새김하며 서 있는 나그네
가거라, 훠이훠이 내친 손사래 끝에
가나오나 무거운 발걸음
잔잔하게 일렁이는 내 마음이사
낯선 구름이여, 너는 알랑가 모르겠네.
---
外燈
지친 영혼을 기다린다
행여 비라도 내리면
젖은 마음들이
어둠 속 강물로 흐르고
하루의 분장을 지우면서
부서져 돌아가는 사람아
밤새도록 흔들리는
잔잔한 명상곡의 선율이 들리는가
그리운 것들이 슬픔이라면
희미한 내 뜨락에서
안겨 주지 못한 채
지친 영혼들을 그냥 떠나보낸다.
--
백목련
꿈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소복차림으로 당신을 깨우고
이른 아침, 보았느냐
피돌기가 멈춘 뜨락엔
떨리는 기도가 있었느니
계곡의 물줄기 같은
인연을 끊지 못함일까
내 하얀 소망들은
어둠만 내 뱉고 있었다.
---
노고단에 살고지야
무넹기 지나
노고단 철쭉 보러가는 길엔
겨울꽃 아픈 꽃망울로
詩가 주렁주렁 걸렸다야
산댓잎(山竹) 아리아리
저만치서 다가오는 송희철 시인
그대 머리 위를 돌아돌아
흘러가는 구름이야
한 생을 청산에서 살고지야
천왕봉 저 멀리 날아가는 영혼
기억 속을 빠져나간 멧부리 바람이여
무엇인가 잡힐 듯 산울림
정상 푯돌(標石)만 저승을 지키면서
이승의 짠한 가슴 풀어
뱀사골에 휑구고야
나도 함께 살고지야.
* 송희철 시인 : 노고단국립공원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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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어쩌다가 울며울며
불빛 하나로 멈춰버린 사람아
기다림의 옷깃 초라하니 세운 채
그냥 지나가는 차창 밖
어둠 속 누군가를 이슥토록
서럽게 울며울며 기다리는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