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3편에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 중생의 종류를 부처님은 위와 같이 나누어 놓았습니다만, 사실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중생은 없습니다.
* 우리가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본래부터 상대가 없는 본래의 마음을 저버리고, 나와 너로 구분을 짓는 상대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기독교에서는 본래의 마음을 "온전한 마음(영)"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본래의 마음과 중생의 상대적인 마음을 모양으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실제 마음에는 모양이 없습니다,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린 것입니다.)
*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텅 비어 있는 영원한 마음을 버리고(위 그림 왼쪽), 상대적인 중생의 삶을 살기 때문에 부처가 안되는 것입니다.
* 진리를 깨닫게 되면, 상대적인 것이 없는,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본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 본래의 마음(기독교 : 온전한 마음)을 보면, 거기에는 나라는 생각(아상), 너라는 생각(인상), 우리라는 생각(중생상)이 없습니다.
본래의 마음은 모양이 없이 텅 비어 있습니다.
* 이렇게 텅 비어 있는 마음에는 실제 이름도 없습니다.
* 그래서 불교에 보면, 무명, 무상 즉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 한 발 더 나아가면, 무상이라는 것도 무명이라는 이름도 실제 이곳에는 없습니다.
* 모든 것이 없기에 무명, 무상, 절일체, 즉 모든 것이 끊어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모든 것이 끊어져 있다고 하지만, 끊어져 있다는 말도 실제는 없습니다. 이해가 가시는지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아래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 왼쪽의 원 안에는 일체의 글씨나 말도 없습니다. 본래의 마음에는 원으로 그려 놓은 원 모양도 없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하여 원으로 그려놓았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비어 놓은 것입니다.
* 예수님은 이런 온전한 마음을 " 본래의 참 하나님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아무도 본자가 없다"고 표현 하였지요.
* 모양이 있다면 누군가 보았겠지요, 본래부터 모양이 없으니 본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모세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한 여호와는 가짜의 하나님이 되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다시 돌아가서 보겠습니다.
* 왼쪽은 아무것도 원 안에 없습니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모든 것이 절일체 즉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측의 원 안을 보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자리에 " 뭔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 본래부터 텅 비어 있으니,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고, 일체가 끊어져 없다"는 글씨나 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쪽을 보시면, 모양도, 이름도 없어야 할 자리에 "모양도 없고 ... 끊어졌다"는 글이 존재를 하고 있으니, 이는 틀렸지요.
* 그래서 제가 위쪽에서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고, 다 끊어져 없다"는 말이나 글씨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 아무것도 없지만,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존재를 하고 있으니, 없던 나무 가지에 지금 매화꽃이 활짝 피고 있는 것입니다.
* 거울에 앙상했던 나무가지에서 지금 매화가 피고 있는 것입니다.
매화 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겠습니다.(출처 : 안녕 마음아)
( 이것을 촬영하신 안녕님은 집안 대대로 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아무것도 없던 가지(공)에서 매화꽃(색)이 피어 납니다. 이게 공즉시색입니다.
*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이렇게 모양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공이 곧 색이라는 겁니다.
* 반대로 모양이 있는 매화꽃(색)으로 나왔지만, 잠시후면 곧 사라져서 본래에 없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색즉시공입니다.
*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러니 색과 공은 다르지 않고 같다는 것입니다.
부처의 눈엔 색과 공이 다르지 않고 같다, 즉 하나로 보이지만, 중생의 눈에 다르게 보입니다.(예수님은 이 하나자리를 "홀로, 또는 독생"이라고 하였습니다)
* 위 동영상을 잘보시면 금방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 중생의 눈(기독교는 죽은자)엔 색인 건물로 보이지만, 잠시후면 색과 공이 다르지 않음을 금방 아실 겁니다.
* 우주 일체가 이렇게 다 존재를 합니다. 모양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잠시입니다, 멀지 않아서 본래 없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중생의 구분은 누가 만들었는가?
* 중생의 구분에는 위 내용처럼 9가지가 있다고 보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 문제는 저런 구분을 하게 만드는 근본은 바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 중생의 마음에 저런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 부처의 마음에는 저런 기준이 없기에,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성불하게 제도했지만, 진작 제도를 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 만약에 내가 중생을 제도 했다고 한다면, 그의 마음에는 중생과 나라는 구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를 제도했다고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는 아직 부처가 아닙니다.
* 부처의 마음은 나와 남이 없이 텅 비어 홀로(독생) 존재를 합니다.
* 그런데 나와 중생이라는 두가지 상대적인 마음이 있으면 이는 홀로의 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 그래서 부처님이 누군가를 제도했다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 바로 아무것도 없어서 텅비어 있어야할 마음자리에,
* 내가 누군가를 제도 했다는 나가 있고, 제도할 상대인 너라는 마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보살이 아니고 중생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내용을 뭐라고 했을까요?
* 남의 단점이 보이는 것은 단점의 기준이 바로 자기의 눈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 남이 중생으로 보이는 것은 내 속에 중생은 이런 것이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 본래의 마음, 온전한 마음처럼 기준이 없다면, 남을 심판할 대상도 없고, 중생이라고 볼 대상도 없다는 것입니다.
* 자기의 마음속에 어떠한 기준이 없이 본래의 마음(온전한 마음)처럼 비어 있다면, 누구를 심판할 대상도 없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온전한 마음을 참하나님이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참 하나님은 누구를 심판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 여호와처럼 간음만 했다고 해서 심판을 해서 돌로 쳐 죽이라는 여호와는 살인자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해를 돕기 위하여
* 내 마음속에 어떠한 기준이 있느냐에 따라서, 상대가 큰지, 작은지가 보이는 것이지.
* 내 마음속에 어떠한 기준도 없다면, 누구를 심판할 대상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 남의 눈에 티가 보이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속에 어떠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 비유를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옆에 아무 사람도 세워놓지 않고, 일반인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할까요?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 고통에 헤메이는 사람을 인도해서, 부처가 되게 했습니다.
* 예수님처럼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자들을 전도해서, 진리를 깨달아서 대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 유대인들이 진리가 뭔지 모르는 중생(죽은 자)들이니,
* 살인자인 여호와가 시키는대로, 동물을 잡아서 불에 태우고, 피를 사방에 뿌리면 인간의 죄가 없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처럼 매일 동물을 잡아서 숯불에 구워서 바치라고 하는 것이 진리로 보이는지요?
* 여러분들도 원시인처럼 동물을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내장을 불에 태우면, 인간의 죄가 없어진다고 보시는지요.
* 원시인처럼 이런 짓을 시킨 것이, 바로 예수님이 살인자라고 하는 여호와의 짓거리 입니다.
* 여러분들도 원시인처럼 동물을 잡아서 불에 태우면 정말 인간의 죄가 없어진다고 믿는지요.
* 예수님은 이런 짓거리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 여러분은 저런 짓거리가 정말 자신을 자유스럽게 하는 진리라고 보시는지요.
진리를 모르면, 온전한 마음을 몰라서, 저런 짓거리를 진리라고 믿게 됩니다.
* 부디 자신의 안에 있는 온전한 마음, 본래의 마음을 찾아서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얻기 바랍니다.
끝으로
* 세상 모양이 있는 모든 것에는 절대적인 나가 없습니다.
* 단단한 태산도 절대적인 산이 아니기에, 큰 화산의 폭발로 인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 산이 정말 절대적인 것이라면, 어떠한 힘에도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를 할 것입니다.
* 모양으로 존래하는 것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기에, 교회가 저렇게 불에타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 절도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영원할 수가 없으니, 저렇게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 진리가 뭔지 모르는 스님들은 신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자꾸 사라지는 절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본래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사라져서 허공이 나타난 것일까요?
* 허공은 늘 그대로 있었습니다.
* 단지 검은 구름이 사라지는 맑은 허공이 드러난 것처럼 생각을 할 뿐입니다.
* 누군가를 인도해서 제도를 한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에 있는 중생심이 사라졌을 뿐입니다.
* 그는 중생이 되기 전에 이미 늘 부처로 존재를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제도 했다고 할 수가 있는지요.
* 예수님은 위 내용을 아래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 나는 아부라함이 존재하기 전부터 늘 존재했었다"
* 이 때의 나는 육체의 예수가 아니라, 영원한 온전한 마음 즉 영을 두고 나라고 하는 겁니다.
부디 진리로 이끈다는 가짜의 목자들에게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