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에 젖다 / 출품작
오지랖 세우든 겨울도 어느덧 간다. 봄 재촉하는 비 내리는가 싶었는데 벌써 여름 같은 날씨다. 제비가 찾아와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는다. 전깃줄에 앉아 풍년가를 시끄럽도록 잘도 조잘거렸는데 잊힌 이름이 되었다. 스산한 골목 바람만이 깡패처럼 돌아다닌다. 가게들은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다. 점점 길어진 그림자 따라 날도 어두워진다. 암묵적 중압감마저 든다. 경산시장의 중앙 통이라 할 수 있는 골목 사거리 풍경이다.
유통 업체가 운영하는 대형마트다. 손님들이 몰린다. 추위도 더위도 잊게 해주는 좋은 시설과 갖가지 신선한 물건을 제공한다. 주차장도 확보하고 있으니 편의성까지 좋다. 가격도 싸다. 시장가에 필요한 물건을 쉽게 싸게 구할 수 있게 큰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난전의 악착같은 유혹과 풍성한 인정 같은 그런 맛은 작다. 하지만 편리하게 물건 구하기가 쉬우니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막 옆을 지나간 이는 마트로 갈까? 난전에 갈까? 난전이 구경하는 눈요깃감으로 전락 될까 봐 겁이 난다. 이렇게 하루의 삶이 저림과 초조함이다.
자판 대 위나 길바닥에서 한 쪼가리라도 더 팔아 보려고 온갖 손짓으로 손님을 부르며 유혹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철에 맞는 물건 내놓는다. 올봄에는 봄 동 채소로 호주머니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워낙 시장경기가 바닥이다 보니 아련해진다. 쓸쓸함이 가득 찬 장꾼 뒷모습이 안타깝다. 국밥집 아주머니, 구이집 아주머니 몇 달 사이로 운명하시었다. 술잔에 의지한 고된 삶이라 한다. 우울증을 항상 안고 살고 있었다고도 하고. 귀천 알고는 있었을까. 십수 년 이상 옷가게 하던 부부가 가게 정리를 한다. 난전에서 과일류 가판대까지 운영했다. 더는 버티기 힘들단다. 가게 세 수백만 원 맞추기가 어렵다며 종잣돈 몇 푼이라도 거둘 수 있을 때 정리한다고 한다. 주방용 그릇 집도 문을 닫는다.
6월에 선거가 있다. 그나마 오는 손님마저 줄어든다. 다들 선거 유민이 되는지…. 묵시적 썰물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명절 때는 대목이 아니라 보름 전부터 써늘해진다. 개학 철이 되면 학비를 위해 비상이 걸린다. 농사철이 되면 일손이 달려 시장에 올 여력도 없다. 자인 단오 행사나 체육행사를 하면 행사장으로 몰린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바람 잘 날 없다. 정말 많은 이유 거리로 시장 거리는 한산해진다. 썰물 같은 현상은 안 일어나면 좋겠는데. 경기가 왜 이렇게 자꾸 움 추려지는지 갈수록 심해진다.
외팔로 가로 등 하나 들고 있다. 세월에 시달린 흔적은 있지만 불은 잘 켜진다. 한잔하신 분 취흥에 딱 좋은 주홍빛 등이다. 골목 안 어둑서니를 밀어내지 못한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마다 포근한 빛을 주고 싶어도 팔이 짧아 보내지 못한다. 방향 알려 주는 이정표 역할은 된다. 희망 빛이면 좋겠는데, 구부정하게 받쳐진 팔 대로 더 쏘아 보내 본다. 한쪽 팔 길이 정도의 밝기뿐이다. 헐렁한 앞치마 주머니 못 볼 정도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본다. 가게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횟집이 바로 앞에 있다. 저 집 간판이라도 잘 보일 수 있게 힘 내 본다.
주름살 일지 않는 체질이지만 저승사자표식이 호출 표식처럼 몸에 묻어있다. 난전에서 찌들어진 이들의 한풀이가 담긴 훌쩍임의 표시. 발에 차이고 콧물 발리고 손가락질 욕먹은 흔적. 한잔 걸친 이의 시원한 곳간. 난전 어느 한 사장은 속이 썩어서 말기 암 환자라 한다. 모든 화풀이 다 받아주고 싶다. ‘속병 살풀이로 이용해주시오!’ 누적 딱지가 되어도 좋다. 코 뿔 데기 문질러 발라도 된다. 날 선으로 세상사 모든 넋두리를 목줄처럼 꽉 묶어도 괜찮다. 개도 뒷다리 들고 시원하게 지른다. 적막만 걷힐 수 있다면 뭘 못 하랴. 수십 년 내공 있으니 건강 문제없다.
봄날은 있었었나 하듯이 단 숨이다. 난전의 풍요를 기대하면서 엄동설한을 버티었는데 봄맛 알기도 전에 덥다. 경기 체감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오월은 훈풍 이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올 한해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안타깝고 서럽다. 올 곳 게 힘 한번 내 본다. 나들이하는 이들이 잘 보고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높다랗게 똑바로 추겨 본다. 이리저리 엉겨 매어져 있는 많은 날 선에 정보도 얻는다. 광고 찌라 시와 얼룩진 때로 공부도 해본다. 무채색 전주 힘겨운 감상에 빠진다.
2018. 4. 25.
어름문학 8호 출품작 (21. 09.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