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와 목마 / 출품작
건조되어서 허옇다. 몇 시간 째 칼 두 자루만 덜렁 있다. 흰 플라스틱 재질인 도마다. 섭씨 30도 육박하는 6월 중순 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향한다. 마음의 더위까지 가해진다. 가게 안은 텅 빈 공터가 된 지 벌써 몇 시간째. 여름의 더운 날 세균 번식이 높다는 편견으로 회 선호도가 좋지 않다고들 한다지만 너무 한산하다. 날 선 칼이 그늘 밑으로 숨은 것 같다. 분위기 확 바꿀 수도가랑이 한바탕 “쏴”하고 블루스 춤을 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이 염치없이 골목길을 나 된다. 홍보용 문구에 포장 2만 원, 물 회 만원 적힌 안내판이 바람을 탄다. 뱅뱅 돈다. 몸을 맡긴 체 세상을 잊는 건지 살랑되는 바람결이 좋은지 정신이 없다. 도마 쪽을 다시 쳐다본다. 거친 표면의 칼자국이 깊은 한숨으로 다가온다.
텃밭인 비내골에도 있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작업대다. 도마라고는 하지 않는다. 목마라고 하고 싶다. 만든 지가 10여 일 지났다. 재활용 동바리로 만들어서 처음부터 흠 다리가 많다. 작업 공구인 칼의 자국도 새겨진다. 지금 작업 중인 일은 솟대 용 새 만들기다. 몇 개 만들었다. 배움 없이 처음으로 멋대로 만들어 본 나무새다. 사진도 찍어 인지 분에게 보내 주기도 했다. 목마는 말이 없다. 다소곳이 앉아서 받쳐 주기만 한다. 호적한 비내골에서 나무 다듬기가 집중의 망각 느낌이라서 미더워서 그런가 보다. 잘려 나가는 나무 조각에 마음속 못된 때도 같이 딸려 나간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부언을 해 본다.
목마는 잡아 준다. 복잡한 생각을 가려 준다가 맞다. 나무새를 만든다. 모양새야 어찌되었든 만드는 동안 집중한다. 또, 작은 괴 목을 다듬는다. 올려놓고 짓눌려도 힘을 그대로 받아 준다. 목덜미가 뻐근하다. 한 자세로 계속 작업하다 보니 몸이 굳어졌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는 나이지. 육순 중반에 청춘을 어찌 누릴 수 있으리. 팔을 올리고 돌리며 어깨와 목 부분 근육을 풀었다. 깍지를 끼고 손가락도 풀어 주었다. 다리 운동도 한다. 뻐근하게 고착되어가던 몸 근육이 조금씩 풀렸다. 목마 위에 올려 져 있는 물건이 ‘할비요?’하고 웃는 것 같다.
나이 쌓는 귀신은 낌새도 없다. 촌음도 봐주지 않는다. 하루가 가고 있다. 그 시간은 나이가 되어서 몸을 둔하게 하는 미약으로 작용한다. 저승사자가 얼굴 손등에다 증명하고 있다. 머리는 벌써 허옇게 되었지만, 좋은 세상이라 염색약 덕으로 젊음의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몸은 아닐 세다. 20kg쌀 포대를 거뜬히 들던 두 팔은 힘을 잃어 이제 온몸으로 안아 들어도 킹킹 된다. 저리는 다리가 허리까지 당겨서 ‘아이고’ 하는 비명이 저절로 나온다.
도마는 일용을 만들기 위해서 왔다. 물고기의 두려운 아우성을 모른 체하면서 붉은 피를 받는다. 몸서리나는 목숨 질이 자신의 업보라며 대신 받는다. 피보다 더 독한 때 거리 때문에 희생을 하고 있다. 한 치 앞 운명도 모르는 수족관 물고기들이 편안 수영으로 호객 질까지 해 된다. 홍보물은 아직도 정신없이 돌아간다. 빈집 처마 끝에 미끼로 매달려 있는 형상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도마는 이 또한 자신의 책임이란다.
받침용으로 이용하는 용도는 같다. 물고기 잡이용이고 목 작업용이다. 하루라는 시간에서 목마는 오전으로, 도마는 오후로 나랑 놀고 있다. 도마는 잡고 목마는 비우고 있다. 물고기와 나뭇가지로 동참을 하면서다. 이 물건에 시간이 묶여 있다고 억지를 부려 본다. 하루하루가 힘에 부친다. 세월에 날치기당하기 때문이라고 우겨도 본다. 워낙 신출귀몰 한 시간이라는 괴물이니까. 도마도 목마도 힘겨워한다. 무언으로 버티면서 희로애락을 찾지만, 나이 숫자가 바위얼굴보다 크게 보인다.
기운이 천천히 세 나간다. 세월이라는 동무가 범인 줄 알지만 속수무책이다.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어김없다. 먹 거리 얻기 위해서 오만가지 감정이 들어 왔다 갔다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 일당을 벌 수 있을까 부터 운영비만이라도 아니 가게세라도 하다 보면 어둠에 묻히고 만다. 몇 분의 손님이 와도 남은 이윤은 남 좋은 일 만한다 라고 몇 번을 중얼거렸다. 세월과의 아귀다툼이라 치부하며 마음을 추슬러 보기도 한다. 오후가 지겹고 두렵지만, 촌음으로 느껴지는 게 더 무섭다.
며칠 전 고무 물통에 괴 목을 담가 두었었다. 나무를 불리기 위해서다. 공구를 챙겨서 다듬는다. 혹 두기가 많은 나무다. 쉽지 않다. 참을 인忍자가 여기에도 필요하다. 천천히 형태를 파악해 가며 나뭇결을 찾는다. 볼품없는 버려진 나무에서 칼질로 세월의 흔적을 판다. 시간과 싸움이고 참기를 하는 극기 같은 오기가 들어 있다. 오전 시간으로 3일간을 작업했다. 반도 다듬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푸근하다. 젊을 때라면 호연지기 채웠다고 떠들어 됐을 텐데. 시원한 산야 한 켜에서 일락하는 한 풍경으로 있다.
도마와 목마는 나랑 동무가 되었다. 세월을 두고 시간과 줄 당기기를 같이 한다. 인간 욕심의 표본인 아귀를 위한 싸움질에 도마는 하얀 살 판때기로 도운 다. 목마는 피부가 상하지만, 인내로 비움을 거든다. 바둑판처럼 복잡한 세상과 조용한 산상에서의 동반이다. 솔직히 도마를 놓아야 한다. 칠갑 팔순의 세월을 위한 발버둥이니 애가 타고 있다. 목마를 잡아야 한다. 원래로 돌아갈 때는 다 빈손이다. 한 번쯤 사납게 흔들어 털면 먹 거리 욕심이 떨어질까? 목마는 기다리고 있다. 오후시간대를 도마에 양보하면서 바라기로. 아직은 싸울 기운이 있어서 고집을 부려본다. 머리가 허여도, 저승사자가 손등에 있어도, 새어 나가는 젊음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해보자는 이기적인 마음이기도 하다.
도둑질당하는 세월을 두고서 시간이란 괴물과 전쟁이 날로 치열해 진다. 도마와 목마를 좌우 보위 장군으로 임명했다. 날카로운 칼에다 힘을 팍 넣었다. 곧은 눈빛으로 앞을 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좌 장군 도마! 공격 앞으로! 대성바다횟집을 점령하라! 우 장군 목마는 전투태세를 갖춰라.” 소리 없는 천둥 같은 고함이 비내골을 흔든다. 힘이 든 주먹을 쥐면서.
2019. 6. 16.
경산 문협 36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