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호라오(보이셨다)’는 각자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깨어나심)이다.
2) ‘호 그라페(그 기록)’는 원래부터 마음 너머에 있는 베레쉬트가 거하시는 지성소다.
나. 본론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카타 호 그라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카타 호 그라페) 사흘만(테 트리테 헤메라)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호라오),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호나오)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호나오)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호라오). (고전 15:3~8)“
우리는 이 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게바에게와 열두 제자에게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그리고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내용은 역사적인 내용이 아니다.
1) ‘호라오(보이셨다)’는 각자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깨어나심)이다.
여기 쓰인 ‘호라오(보이셨다)’는 각자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깨어나심)을 말씀하고 있다. 몸 밖의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제자들 안에 오셔서 속사람의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게 된 것이 ‘호라오’다.
쉽게 표현하면 각자 자기 내면으로 나타나신(깨어남)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고 만지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와 엘로힘’의 일이 실현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시제가 없는 내용으로서 역사적인 일로 보면 종교행위가 된다.
자신 안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을 보고 만지는 것이다. 각자 내면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휘장)으로부터 벗어나 고난의 과정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된다. 대 자유인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종교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모두 그러한 씨앗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올바른 가르침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내신 큰 은혜다. 이것을 ‘성경대로’로 번역한 ‘카타 호 그라페’로서 ‘그 기록을 따라서’다.
2) ‘호 그라페(그 기록)’는 원래부터 마음 너머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다.
‘호 그라페(그 기록)’는 원래부터 마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를 말씀하고 있다. 몸 밖의 표면적인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 곧 진리(알레데이아)를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반드시 비사와 비유로 되어 있는 원전 성경을 봐야 한다. 시제(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현대어로 보는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짜다.
이렇게 보는 성경 때문에 이천년 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고, 지금도 무서운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반인들에게는 비사와 비유로 기록된 원전 성경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바로 번역되고 바로 해석한 문서나 이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생명의 빛을 전하는 사도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될 것이다.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전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가짜 복음이 되고 말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