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강
황보림
몽골의 대하소설이다. 요동치는 강물에서 들려오는 함성, 군사를 몰고 호라즘 정벌에 나선 칭기스칸의 호령이 검붉게 흐른다.
펑펑 쏟아내는 저 긴 여운의 속내, 강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역사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유유히 흐르는 이국의 언어들, 난독의 페이지 페이지를 다 읽어내지 못한 수천 킬로미터 강줄기 한 권.
삭여내지 못한 유목민의 사연도 퍼렇게 흐른다. 메마른 땅 강줄기가 긴긴 이야기로 흐르는 것은 침묵하던 역사가 언 가슴을 녹여내기 때문, 맺혔던 수천 년의 세월이 굽이굽이 풀어진다.
몽골의 대동맥 톨강, 칭기스칸의 푸른 심장이 아직도 역사의 활자를 뿜어내고 있다.
호라즘 : 중앙아시아, 아무다리야 강 하류 지역. 아랄 해 남쪽에 있으며, 고대 문명의 중심지
쌍봉낙타
하늘로 솟은 젖가슴이다
비얀고비 쌍봉낙타를 타고가다
물컹, 등에 솟은 붉은 살덩어리를 만져보았다
모래바람 쟁여진 젖무덤이 뭉툭하다
누구를 키워낸 가슴일까
사철, 젖을 먹고 자란 무지개가 초원위에 내걸리고
푹푹 패여도 아무 일 없는 듯 새살 채워지는 모래밭이 뜨겁다
붉은 젖무덤에서 모래가 흐른다
달아오른 옹이도 녹아 흐른다
모래바람을 걸러내는 속눈썹이 주파수를 감지한다
아직 자라지 못하는 어린 것들을 향하여
퉁퉁 불은 젖가슴 잔등에 지고
모래언덕을 넘는다
풀 한 포기 키워내지 못하는 모래밭이
촉촉하게 젖는다
좀처럼 달리지 않는 낙타
낙타가 달린다
어미 낙타가 달린다
무장 해제
몽골의 대평원에 와서
무장해제 되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시간을 재고
거리를 재며
버스를 타고 다음 정거장
그다음 정거장을 체크하며
지름길만 고집하는 생
꼭꼭 채워져 열리지 않는 문
나는 어디에도 풀어질 수 없는 포로
수천 킬로를 달리고 달려도
이정표 하나 없는 초원에
내 몸 구석구석에 쌓아 두었던
무형의 무기들을 훨훨 날려버린다
무장이 해제된 텅 빈 가슴에
수백만 평의 초원이 자라고
들꽃 우북이 피어나고 있다
곡선이 펼쳐진 들녘
비얀 고비에 달이 켜지듯
내 가슴에도 달이 켜진다.
몽골 들녘
거대한 바둑판이다
흩뿌려진 아스피린처럼
초원을 누비는 양떼들의 행렬이
몽골 대륙을 이동 시킨다
저 멀리
높고 낮은 능선이 그래프처럼 출렁인다
온종일 달려도 승부없는 게임
먹이를 찾아나서는 가축들
바둑알처럼 들녘이 희뿌옇다
화이트 그리고 블랙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물결이
운하의 대장정처럼 장엄하다
선한 인간의 눈빛을 닮은 포유류
본시 그들은 순하고 순한 회백색이었을 것이다
굽이굽이 억세어진 발굽 소리가 능선을 넘는다
빈 내장 채워 줄 드넓은 초원
생존의 법칙을 익히기 위하여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그리하여 훗날
퉁퉁 불은 젖가슴 안고
본향으로 본향으로
발굽, 힘차게 달려올 것이다
내일은 초원
아가리
허옇게 벌리고 있는 턱뼈
움푹 패인 눈
비얀고비 후미진 곳에서
백골의 짐승 무리를 보았다
한 세월 달리고 달렸을
마디마디
몇 가닥의 털이
바람에 현을 켜며 파열음을 낸다
해가 돋지 않는다고
싹이 돋지 않는다고
누런 벌판을 생각하지 마
혈관에 피가 돌지 않을 때
달동네 지친 꽃처럼 우울해 있을 때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야
치렁치렁한 어둠을 털어내고
긴긴 터널을 빠져나와
황무지를 갈아엎고
자 이제 다시 씨앗을 뿌려봐
드넓은 초원
비릿한 바람을 걸러내며
새봄을 기다리는 야크 떼들
오치르
능선을 넘고 넘어
수백만 평의 초원을 달리는 사내
대한민국 어느 귀퉁이 이주노동자로
흙바람 속에서 모은 돈
고향에 멋진 집 한 채 장만했다는
몽골의 뚝심 깊은 운전기사
오 치 르
오! 치르고 싶었을까
얼마나 값진 값을 치르고 싶었을까
대한민국 관광객을 이끌고
몽골초원을 누빈다
허허벌판 가슴들에
게르처럼 둥그런 집 한 채 지을 수 있게
수천 수만리 초원을 펼쳐주었다
첫댓글 광활한 초원을 달리고 별이 쏟아지는 몽골의 밤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히 감상합니다.^^
2018년에 다녀와 쓴 시들인데
광할한 초원에서 해맑았던 유목민들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드넓은 초원에 우북이 피어나던 들꽃이며 풀을 뜯던 야크 떼들!!!
다시 가고픈 그곳이 펼쳐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