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피조물'로 오역한 '크티시스'는 새롭게 됨의 뜻으로 피조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2) '크티시스'는 겉 사람의 정과 욕심을, 속사람의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3) 십자가 사건이 2천년 전의 일이지만, 원어로 보는 성경은 시제가 없는 오늘 나에 관한 생명의 말씀이다
나. 본론
1) '피조물'로 오역한 '크티시스'는 새롭게 됨의 뜻으로 피조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새사람)이 되었도다(고후 5:17)”
‘피조물’로 오역한 '크티시스'는 ‘새롭게 됨’이다.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피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빛(말씀)인 아들로 낳으셨다. 학자들이 번역의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에 창조로 번역한 참 뜻은 ‘바라’로서 개간하여 씨를 발아하는 과정을 비유한 말로 아들을 낳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심이다. 하나님이 아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겉 사람에게 보내서 마음 밭(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을 옥토 밭(속사람)으로 개간(바라)하여 생명의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아들)를 거두는 일이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바라) 하시니라’로 오역한 ‘창조하다’가 바라(개간)하여 옥토밭(좋은 밭)을 만들어 거기에서 아들을 낳음이다. 우주를 창조하는 단어가 아니라 내면에서 그 하늘들과 그 땅을 옥토밭으로 개간(크티시스)하는 내용으로서 말씀의 씨를 뿌려서 그 씨가 발아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서 아들을 낳기 위함이다. ‘크티시스(새롭게 됨)’는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겉 사람의 정과 욕심을 끝내는 내용이다. 몸과 마음의 그 실상을 깨달아 초월하는 내용이다.
2) '크티시스'는 겉 사람의 정과 욕심을, 속사람의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크티시스’는 겉 사람의 정과 욕심을 속사람의 제물이 되게 하는 첫걸음이며, 속사람과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겉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해서 옥토밭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티시스’는 ‘피조물’이 아니라 바라(개간)함이다. 종교인들이 잘못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겉 사람과 하나 된 속사람은 근원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기 위함이 크티시스(새롭게 됨)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은 새사람을 낳기 위해 개간(바라)하는 과정이다. 완성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가 된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 신부는 피조물이 아니라 아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번역한 것은 아무 잘못된 번역이다. 이를 위해 “엘로힘이 베레쉬트(근본)와 하나 되기 위해 정욕으로 가득한 마음의 그 하늘들과 마음의 그 땅을 개간하시느니라”라고 창세기 1:1에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개간(바라)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계시록 21:1~2에서 말씀하고 있다. 몸된 성전의 완성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생명의 그 빛이 어떻게 겉 사람의 세상(코스모스)에 임할 수 있는가? 달리 표현하자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십자가에서 휘장(몸과 마음)을 초월할 수 있을까다.
3) 십자가 사건이 2천년 전의 일이지만, 원어로 보는 성경은 시제가 없는 오늘 나에 관한 생명의 말씀이다
이천 년 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러나 원어로 보는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시제가 없다) 비사(파로이미아)와 비유(파라볼레)의 관계로 감추어진 말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 각자 안에서 일어나야 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 핵심을 알아내지 못하면 헛일이다. 이 일은 종교 행위가 아니다. 이 죽음은 단순한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휘장)을 초월하여 속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예수의 겉 사람을 죽이(휘장, 몸과 마음)는 과정이 아니면 육체는 죽일 수 있겠지만 마음은 죽이지 못해서 이 마음이 또 육체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고난의 과정을 계속 겪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휘장(마음)을 완전히 찢어 없애버려야 마음 너머(무아)에 계시는 그 생명의 그 빛과 하나 되어 속사람(천국, 아들)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