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1. 개요
이 시는 평이한 언어와 표현으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냈다. 여기 담긴 감정의 추이 과정은 인간 체험의 보편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기에 이 시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안할 수 있었다.
- 이숭원, '백석을 만나다'-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고백적, 반성적, 의지적, 토속적
제재: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떠돌이로 사는 이의 삶
화자는 드러나 있으며 상실과 방황 끝에 어느 목수의 집에 셋방을 얻어 살고 있다. 무기력한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는 주제이고, 편지 형식을 빌어 화자의 근황과 내면을 표현하였으며, 사투리, 토속적 소재를 통해 향토성을 드러내었고, 고백적, 산문적 어조를 취하며 슬픔과 고통을 내면에서 승화시키는 시이다.
2. 본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1]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2].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3]에 북덕불[4]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5],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6]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7]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8]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9] 먼 산 뒷옆에 바우 섶[10]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11] 갈매나무[12]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3. 시상 전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이며,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3.1. 9~ 19행
좌절과 실의 속에 무기력하게 살면서 죽음까지 생각하는 절망적 상황에 이른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 마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며 지식인으로서 무료함과 지루함을 표현하고,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과 암울한 현실에 대한 절망과 화자의 번민과 고통을 표현한다.
3.2. 20~ 23행
그러나를 기점으로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운명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무기력한 자아를 인식하는 한편, 긍정적 시상의 전환을 암시하며 현실적 한계를 수용한다.
3.3. 24~ 32행
겸허한 자세로 무기력한 삶을 반성하며 다시 운명을 긍정하고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대목이다. 마음의 진정과 내면의 안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통과 시련, 반성과 성찰, 그리고 의지적인 모습을 표현하며, 이 때 고난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인 갈매나무로 나타낸다.
4. 해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백석
* 평안북도의 도시인 '남신의주(신의주 남쪽)' '유동(동 이름) '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집( 방)이라는 뜻
막막하고 절망적인 방황(1-8행)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센)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헤매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1, 갈대자리]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2].(주인 집에 세들었다)
*삿: 갈대를 엮어만든 자리
화자는 어찌 하다 보니(어느 사이에) 아내와 집을 잃었다.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객지에서 혼자 떠돌게 됐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집도 없어지고) 바람 부는 거리를 떠돌다 날도 저물고 추위도 점점 심해지는데 목수(박시봉)네 집의 허름한 방 하나를 얻었다(쥔을 붙이었다). 박시봉이라는 사람은 목수 일도 하고 세도 놓는 모양이다
현실적 고난과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감(9~19행)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3,질옹배기]에 북덕불[4]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베게)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5,구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6,계속하여] 쌔김질(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 습내;습기 냄새
* 누긋한; 축축한 기운이 약간 있어 눅눅함
* 딜옹배기 ; 질옹배기.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벌 어진 작은 질그릇
* 북덕불; 북데기(짚이나 풀 따위)로 피운 불
* 굴기도 ; 뒹굴다(누워서 이리저리 구르다 / 빈둥 빈둥 놀다)
시적 화자는 혈혈단신이 되어 객지를 떠돌다 겨우 춥고 습기 차는 방 하나를 얻어 지내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슬프다. 혼자인 처지가 너무 쓸쓸하고 막 막하여 '나 혼자도 많은 것 같이' 여기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하릴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왜 이런 처지가 됐는 지 계속 곱씹어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슬픔은 커지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으며 자책한다. 다 자신의 어리석음 으로 여겨지는 커다란 슬픔과 부끄러움 때문에 심 적 고통이 너무 크다. 그래서 죽음까지 생각한다
내적 갈등 해소를 위한 운명론(20행~23행)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7,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19행까지 화자는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을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여겨져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20행의 '그러나'로 시상이 전환된다. 화자는 자신이 바라고 뜻하는 대로 인생이 끌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들(자신의 뜻과 힘)보다 더 크고 높은 것(운명) 이 자신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마음대로) 인생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며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는 스스로 이겨내기 힘든 절망적인 현실에 계속 빠져 있으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그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위안이자 극복의지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현실극복을 위한 표상(24~32행)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8,저녁무렵]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9,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10, 옆]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11,깨끗하고 바른] 갈매나무[12]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나줏손;저녁 때
* 쌀랑쌀랑 ;'살랑살랑'의 센 말(음성 상징어. 의태어
* 바우섶;바위 옆
* 하이야니; 하얗게(시적 허용. 색채어)
* 정한;정하다(맑고 깨끗함)
* 갈매나무 ; 갈매나무 과의 낙엽활엽 관목
여러 날을 보내며 화자는 차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외로운 생각도 들고 당장 처해 있는 고난과 시련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싸락눈이 문창을 치기도) 괴로운 심정을 이겨내려는(화로를 다가 끼며) 의지를 갖는다. 싸락눈'은 고난과 시련을 상징한다
그리고는 당면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객관적 상관물인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혼자 외롭게 (먼 산~따로 외로이) 바람 속에서 눈을 맞으면서도 곧게 서서 추위를 이겨내는 '갈매나무'를 표상으로 삼는다
[1]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2] 주인집에 세 들었다
[3] 작은 질그릇
[4] 짚이나 풀 따위가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에서 피운 불
[5] 구르기도 하면서
[6] 행위나 현상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7] 천정, 지붕의 안쪽인 천장(天障)
[8] 저녁 무렵, '나주'는 '저녁'의 평안 방언이다.
[9] '어느'의 평안 방언이다.
[10] 바위 옆
[11] 깨끗하고 바른
[12]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