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럼버스의 스페인 함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쿠바는 다른 중남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디언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스페인의 지배가 19세기 말까지 이어지는 사이 원주민은 점차 사라져 갔고, 그 자리는
물라토(Mulato)라고 불리우는 혼혈과 유럽계 백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들이 메우게 되었다. 19세기 초반 무렵,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후에도 쿠바는 여전히 식민지로 남아있었다. 쿠바의 경제가 거의 스페인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그런 움직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이 가속됨에 따라 새롭게 쿠바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마찰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결국 1898년 두 나라는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푸에트리코와, 필리핀, 괌을 양도받았고, 쿠바에서 군정을 실시하게 된다. 그 뒤 1902년 쿠바는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아 공화국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지속적인 내정간섭을 받았다.
1956년 피엘 카스트로, 체 게바라를 위시한 80여명의 반군이 쿠바에 상륙했다. 이들은
군사정권의 독재와 경제적 핍박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게 되었고, 결국 1959년에 정권을 잡게 된다. 이윽고 1961년에 쿠바
정부가 공산정권을 선언하면서, 일찌감치 동맹국인 소련과 동구권으로 이어지는 대외 무역관계를 구축한다. 이때부터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공산국가로서 미국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어왔다.
카스트로의 혁명이후 1980년대 말까지 쿠바는 3%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쿠바의 주요 수출품은 사탕수수와 커피, 담배등이었고, 연료와 농산물, 기타 생필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냉전시대의 소련에게는 미국 바로
아래에서 그 코 밑을 간지르는 듯한 쿠바의 존재가 매우 사랑스러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소련은 쿠바의 수출품은 비싼값에 사주면서 자국의
수출품은 값싸게 공급하는 등 무역상의 특혜를 주면서 쿠바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이대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정치적 부패가 만연했던 소련은 개혁파의 선두주자였던 고르바초프를 지도자로
선택하게 된다. 1985년에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앞세우며 강력한 개혁 정책을 주도했지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오히려 소련과 동구권에서 공산주의의 물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따라서 소련과 동구권에 치우친 협력과 의존관계는
쿠바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게다가 미국은 이참에 쿠바를 길들일 속셈이었는지, 쿠바에 대해 지속적인 경제 봉쇄체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쿠바의 수출입 모두가 80%이상 감소하는 지경에 이르고, 국민의 삶은 직접적인 식량난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쿠바 국민의 추정 인당 칼로리 소비량은 1980년대에 2600 정도였던 것이 1990년대 초에는 1000에서 1500정도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쿠바 정권은 1989년을 시작으로 특별기간(special period)이라는 일종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제를 자립 경제
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사탕수수를 비롯한 농산물의 생산이 주력산업인 쿠바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농업이 중요했다. 이미
화석연료와 화학비료의 조달이 급감한 상태였으므로, 기존의 수확량을 재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쿠바정부는 고심하기 시작했고, 그 답은
유기농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렁이(earthworm)는 흙 속에서 그 안의 다양한 유기물들로 식사를 마친 후 식물들이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질소,
인등이 풍부한 분비물들을 배출한다. 쿠바의 과학자들은 일반 퇴비보다 지렁이를 이용한 퇴비가 비료 성분이 더 많으며, 그 지속력도 수 년에
이르는등 장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쿠바의 지렁이 농법에 대한 연구는 이미 위기를 감지한 1986년에 두 종류의 실지렁이
(Eisenia foetida, Lumbricus rubellus)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이 연구는 쿠바의 토양비료국(Institute of
Soils and Fertilizers)과 국립 농업과학국(National Institite of Agricultural Sciences)과
같은 기관에서 정부 주도로 출발하였으나, 효과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기관과 기업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유기농법의 도입과 함께 농업 구조도 급진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했다. 수출용 작물의 생산은 중단되고 작물은 모두 식량용으로
변경되었다. 유류 수입이 중단되었으므로 트랙터는 황소로 대체되었고, 농약을 쓰지않고 해충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었다. 또한 윤작을
도입했고 대규모 퇴비생산에 박차를 가하였다. 도시민들의 지방 이주가 장려되기도 했지만, 도시 자체를 농지화하는 농업 정책이 사용되기도
했다.
쿠바에는 오가니포코(organipoco)라고 불리우는 독특한 도심 농지가 있다. 지금도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의
전체 면적중 약 8%가 오가니포코 또는 개인이 경작하는 소규모 농지인 우에르토(huerto)가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도시
전체 수요의 90%를 충당할 정도라고 한다. 쿠바의 도시농지 사업을 통해 1990년대 중반에 이미 25,000 개의 우에르토와 수 십 개의
오가니포코가 만들어졌다. 이들 농지에서는 철저하게 유기농 농법이 시행되었고, 2000년대에 초에 이르면 수백만톤의 유기농 농산물이 재배되었으며,
그 시점에서 쿠바의 인당 일 일 칼로리 소비량은 다시 2600 칼로리로 복구되게 된다.
지렁이 퇴비는 쿠바의 여러 정책 중에서도 쿠바의 농업 혁명을 이끈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쿠바는 여전히 지렁이 퇴비를
생산하고 있으며, 퇴비와 지렁이는 쿠바의 주 수출 항목이기도 하다. 쿠바의 지렁이 퇴비는 주로 수확 후 쓰레기로 남은 사탕수수나 바나나 짚단에
가측의 배설물을 섞은 후, 거기에 흙과 함께 살아있는 지렁이를 넣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퇴비에는 주기적으로 물을 주어서 항상 적당한 수분과
온도를 유지시키고 어느 정도 높이에 이를 때까지 계속 새로운 층을 만들어 주는데, 이때 지렁이는 주로 위쪽에 모여 있고 그 분비물은 자연스럽게
아래 쪽으로 쌓이게 된다. 지렁이는 퇴비안에서 증식하여 두 세달이면 그 수가 배로 늘어난다. 이렇게 90일쯤 지나면 1미터 정도 높이의 퇴비가
완성되는데, 이 때 맨 위층의 지렁이는 회수되거나 퇴비에 그대로 섞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지렁이 퇴비는 오가니포코에서 유기농 비료로
바로 사용되며 일부는 수출된다.
지렁이가 농업에 사용된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도 농사를 위해 지렁이를 보호하는
것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지렁이가 많은 땅은 농사짓기 좋은 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렁이는 종에 따라 지표면
바로 아래 또는 수 미터 깊이까지 들어가 사는데, 이들은 지표와 땅 속을 오가면서 흙을 순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지렁이는 천연의
경운기로 불리기도 한다. 지렁이는 지표면에 있는 낙옆등과 같은 다양한 유기물질들을 끌고 들어가 땅 속에서 흙과 함께 섭취한다. 이가 없는
지렁이는 사낭이라는 소화 기관에서 음식물을 흙의 도움을 받아 잘게 부순다. 지렁이는 다시 지표면에 올라와 소화 잔여물을 지표면에 배설하는데,
이를 분변토라고 부른다. 분변토 대부분의 성분은 흙이지만, 지렁이의 소화효소와 분비물이 포함되어 흙의 성질이 좋아지고 질소와 같은 영양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변토는 우리나라에서도 농사나 원예용으로 판매된다.
지렁이가 땅에서 뚫은 터널들은 흙의 통기성과 배수성을 좋게 하기도 하지만, 지렁이가 만들어낸 분변토는 지표와 땅속의 흙을
뒤섞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으로 지렁이가 순환시키는 흙의 양은 토지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1 헥타당 연간 수십 톤에서 수백톤에 이르는 것으로
각종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또한 지렁이는 내장에서 석회를 모았다가 배설하므로, 산성화된 토양을 중성화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렁이가
있는 땅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옥해지지만, 인간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수확하는 경작지는 반대로 황폐해진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댓글 밭에 지렁이가 빨리 살게하고 싶은데, 외부에서 가져 오는게 좋을까요, 아님 자연발생하게 느긋하게 기다리는게 좋을까요?
옆 논 할배들이 제초제를 하도 뿌려대니 자연발생이 가능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 외부에서 가져 온다면 어디서 가져와야 할까요?
퇴비더미에서 파오고 싶은데, 요즘은 볏짚과 소똥을 섞어 퇴비 만드시는분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네요.
퇴비더미에 있는 지렁이는 밭에서 살지 못할것입니다 .
구하신다면 묵밭에 보면 굵은 지렁이가 보이는데 붉지않고 날렵하게 생긴 지렁이를 구하셔야 하실것 같습니다 .
지렁이도 환경에 따른 몇종류가 있는것 같습니다 .
@운곡 또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지렁이가 팔긴 하네여~~이 지렁이가 밭에서도 운영 될지 모르지만여~~
수명이 ...
@운곡 지렁이 좀 만져본 ~ ㅋㅋ
@장준식 붕어들이 억수로 좋아하게 생겼네예^^
근데, 집에서 키우는 사람도 있나보네요. 애완지렁이 ㅋㅋ
@대물로망 그런가본데여...초등애들 학습용 . 우리같은 농업용 등 여러 사연으로 하지 않을까여?
지렁이 보니 낚시가~~~생각나네여
@장준식 야는 퇴비에서 잘 자라는 지렁이
밭에서는 아마도 살아나기 어려울듯합니다 .
붕어는 좋아할듯 ^^
@운곡 지렁이는 붕어에게~
지렁이 똥은 퇴비로~~
밭에 지렁이가 많으면 두더쥐가 지렁이를 먹기위해 땅속에 헤집고 다녀
작물이 뜨게되면서 저성장하거나 고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랑 가에 빈 박카스병을 박아놓아 땅속 울림을 통해 두더쥐의 접근을 막기도 합니다.
지렁이는 따로 지렁이상자나 퇴비장에서 흙과 염분이 없는 음식물 찌꺼기를 주어 기르면서
분변토를 수거하여 밭에 뿌리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 방법이 쿠바에서 하는 방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직접 밭 이랑에 지렁이가 있다고 해도 분변토를 모아 이랑에 넣어주는 것보다 도움이 덜 될것 같습니다.
*중남미는 대다수 나라가 스페인어(에스파니아어)를 사용하는데,
브라질만 포르투칼어를 사용한다네요.
네네 분변토 !!! 지렁이와 두더지의 관계가 있었네여 잘 배웠습니다
또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분변토는 매우 이로운데, 두더지는 해롭고.... 난제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지렁이로 보면 농작물 피해도 안주는거라 매우 이로운 생물이나
지렁이가 있는 땅엔 두더지가 꼬이며 땅강아지도 시글시글 어찌나 땅을 파헤치는지
씨앗뿌려 곱게 자랄 틈을 안줍니다.
저희는 4년째 쌓아둔 퇴비자리에 지렁이가 많습니다
우와~~~다들 농사 짓는데 인껏 힘을 다모으네여~~멋지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