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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주 테마여행 / 2차 산행후기
1. 일 시 : 2010. 03. 14(일) / 6시10분출발
3. 장 소 : 고창군 선운산(336m) / 선운사 / 고인돌/ 서정주 문학관
3. 참여인원 : 23명
4. 이동코스 : 무양청사-남상주IC- 청원간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정읍 내장산IC-고창군-고인돌유적지 - 해리면소재지-하연재(등산)-선운사 주차장 - 서정주 문학관- 우리수산- 고창-호남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청원 상주고속도로- 남상주IC- 무양청사
5. 테마여행 일정
◇등산소요시간 : 해리면 하연재(10:45)- 청룡산(11:17)-낙조대(12:03)-천마봉(중식/12:45분출발)-용문골-마애불상-도솔암-진흥굴-선운사-주차장(03:00) /4 시간 15분 소요
◇문화탐방 : 선운사 / 고인돌 / 서정주 문학관
◇별미탐방
☞ 상 호 : 우리수산 / 063)564-9848 / 선운사-동호해수욕장 사이
☞ 특기사항 :◎우리수산은 도로에서 300M정도 바닷가로 진입을 해서 위치하였는데 식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넓지 않아 관광버스는 조금 주의를 하면서 진입을 하여야 합니다
◎가격은 1KG당 35,000원으로 가격도 일반적으로 저렴하고 장어의 비린내가 나지
않아 생각 했던 것 보다 모든 회원들이 만족하여 아주 맛있는 풍천장어의 별미와
복분자로 테마여행의 묘미를 더 했습니다
6. 테마여행 후기
고인돌 군락지 주변을 잘 정비해서 관광 상품화한 고창군입니다 / 고인돌 공원 들머리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주변에는 깨끗히 정비된 문화마을이 인상적 이였습니다 / 앞으로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자명한 진리가 될 것 같습니다
고인돌 군락지에 단체사진 입니다 / 가랑비가 내려서 오늘 일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질까 걱정을 하면서 고인돌 관람을 마치고 산행지로 이동하였습니다
해리면 소재지에서 선운사 방향의 산을 바라보면 큰배모양의 돌이 있는곳으로 이동하면 하연재에 있는 저수지가 나온다 / 저수지 초입에서 50m 정도 지점에 우측으로 돌계단과 시그널이 부착 된 곳이 청룡산 오르는 들머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행 들머리를 몰라 선운사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산행을 한다고 하네요 / 이사진을 잘보시고 들머리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청룡산 오르는 등산길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너무나 고저늑한 산길입니다 /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하기는 쉽 습니다 / 하연제에서 30분정도 오르면 청룡산 정상으로 배맨바위와 지바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청룡산 정상입니다 / 청룡산 정상의 조망은 선운산의 모든 방향으로 조망이 다 가능 합니다
청룡산 정상에서 낙조대 방향으로 조망하는 고문님
배모양을 한 배맨바위 모습입니다 / 해리면에서 보면 가장 눈에 잘띄는 바위입니다
낙조대 입니다 / 높아 아찔합니다만 사진구도가 예술입니다 / 대장금 드라마에서 최상궁이 자살한 바위로 유명 하답니다 / 부회장님 사진 구도 예술입니다
용문굴입니다 / 대장금의 어머니가 숨진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 굴모양이 거대한 고인돌 같습니다 / 기출암터 계곡을 지나 산등성이에 있고 의운국사가 우전국에서 보내온 나한상을 모실 절을 지으려는데 그곳에 용추가 있어 이무기(용처럼 생겼어도 뿔이 없다)가 살고 있었다.
사자를 시켜 매질하여 내쫓으니 쏜살같이 달아나면서 이곳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검단리에서 소금을 들여오면 이무기가 장난을 쳐서 비를 내려 소금을 녹게 하므로 검단선사가 내쫓은 것으로도 전한다. 바위가 훤히 뚫리어 문을 이루고 그 안에 암자가 있어 용문암이라 했는데, 암자는 없어지고 용문만 남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문을 통과하여 아름답게 굽어 올라가는 바위계단을 올라가면 천애의 암벽위에 자리잡은 도솔천내원궁 즉 상도솔이 나온다
도솔암 오르는 계단입니다 / 이계단의 끝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도솔천의 세계인 도솔암이 있답니다
도솔천 내원궁에는 보물 280호인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고려후기 불사의 걸작품으로 뽑히는데 이 불상은 머리에 두건을 썼으며 이마에는 폭이 좁은 테를 둘렀다
천년기념물인 장사송입니다 / 선운사에서 도솔암을 올라가는 길가의 진흥굴 바로 앞에서 자라고 있다. 수령(樹齡)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3m, 둘레는 2.95m이다. 높이 2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둘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진흥굴입니다 / 천연동굴인 진흥굴은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 도솔과 공주 중애를 데리고 수도한 장소이다. 어느날 미륵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타나 현몽했다고 하여 열석굴이라고도 하고 좌변굴(진흥왕을 좌변왕이라 불렀다)이라고도 한다.
선운사 전경입니다 /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의 평균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로서, 절 뒷쪽 비스듬한 산 아래에 30m 넓이의 가느다란 띠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천년기념물 송악입니다/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은 채 뻗어 올라 자라는데, 정확한
수령(樹齡)은 알 수 없으나 보기 드물 정도의 크기로 보아 6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3m, 가슴높
이 둘레 2.95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ㆍ서쪽이 16.8m, 남ㆍ북쪽이 16.7m이다. 송악은 두릅나무 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 또는 다른 나무 위에 붙어 자라며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나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등단해 같은 해 김광균(金光均)·김달진(金達鎭)·김동인(金東仁)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역임하였다.1941년 〈화사(花蛇)〉〈자화상(自畵像)〉〈문둥이〉등 24편의 시를 묶어 첫시집 《화사집》을 출간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과 토속적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인간의 원죄(原罪)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다.
그러나 1942년 7월 《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창씨 명으로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1944년까지 친일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인보(隣保)의 정신》(1943), 《스무 살 된 벗에게》(1943)와 일본어로 쓴 시 〈항공일에〉(1943), 단편소설 《최체부의 군속 지망》(1943), 시 《헌시(獻詩)》(1943),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등 여러 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는 시집 《귀촉도》, 1955년에는 《서정주 시선》을 출간해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신라초》(1961), 《동천》(1969), 토속적·주술적이며 원시적 샤머니즘을 노래한 《질마재 신화》(1975)와 《떠돌이의 시》(1976) 외에 《노래》(1984),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을 출간하였다.
작품 활동 외에 19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국장을 거쳐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후 조선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1959~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2000년 12월 24일 사망하였다.
저작에는 《한국의 현대시》《시문학원론》《세계민화집》(전5권) 등이 있으며, 시집에는 위의 시집 외에 《흑산호》(1953), 《국화 옆에서》(1975),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 5·16 민족상, 자유문학상 등을 받았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2년 2월 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자체 조사를 통해 발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 708명에 문화예술계 인물에 포함되어 친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인천강(仁川江)은 풍천강이라 하는데 고창군 고수면 명지리 두평리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상, 고창읍 도산리를 통과한 후 아산면의 대동리에 이르렀을 때 무장면에서 북상하는 지류와 합류 삼인리(三仁里)까지 북상을 계속한 후 서해(줄포만)로 흘러갑니다.
산란기를 맞은 뱀장어는 생식기관이 성숙되는 반면, 소화기관이 퇴화되어 절식을 하며 바다로 들어갑니다. 뱀장어는 알을 낳기 위해 장장 6,400km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다가 마침내 수심 400m가 넘는 심해로 이르러 산란합니다.
이때 뱀장어는 강에서 곧바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염분의 영향이 강한 기수역에서 고된 적응 훈련을 거듭하여 체질을 변화시킨 다음 심해를 찾아갑니다.
이때의 훈련장이 바로 선운산 입구 인천강(풍천강)입니다./ 그래서 풍천장어라 불리우게 되었답니다
1kg 35,000원이고 마리수는 3마리랍니다 / 복분자술은 1.8l당 25,000입니다
고창 풍천장어와 복분자로 저녁을 대신하고 9시에 상주에 도착하여 3월 테마여행을 무탈하게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 다음달 테마여행은 충주로 정했습니다 / 참여하신 회원여러분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첫댓글 많이 수고 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산행계획 부탁합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다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벽에 잠도 덜 깬채 뿌시시 일어나 어떨결에 가서 덕분에 등산도 잘 하고 구경도 잘하고 또 몸 보신까지 챙겨 그날 김에 싸서 먹은 풍천장어는 너무 담백했고, 복분자 맛도 끝내조요. 산행 후기까지 여러모로 수고가 너무 많습니다. 다음 산행이 기대가 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