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구름(네펠레)이 제자들의 그 눈들로부터 저를 가리웠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2) 제자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져야(먹구름) 깨달음의 눈이 열린다.
3) ‘속히 오리라, 오시옵소서.’가 아니라 현재 확실하게 나 자신으로 등장한다는 내용이다.
4) 하나님의 일은 창 1:1~계시록 22:20까지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여정이다.
나. 본론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바라 : 마음 밭을 개간)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레브 : 속사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문장 역시 번역이 잘못되었다.
(카이 네펠레 휘펠라벤 아우톤 아포 톤 옵달몬 아우톤) :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라고 번역한 부분이다. ‘보이지 않게’가 아니다.
‘보이지 않게’로 번역한 ‘옵달몬’은 ‘눈들(복수)’이다. ‘아포’는 전치사이며 ‘~로부터’다.
그러므로 ‘휘페라벤 아우톤 아포 톤 옵달몬 아우톤’은 ‘구름(네펠레)이 제자들의 그 눈들로부터 저를 가리웠다.’다.
1) ‘구름(네펠레)이 제자들의 그 눈들로부터 저를 가리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눈들 곧 제자들의 마음 상태가 아직 확실하게 주님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지칭한다. 얼굴에 달린 눈(안구)이 아니다. 제자들의 마음 상태는 주님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아직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2) 제자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면(먹구름) 깨달음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 자신의 마음 상태가 구름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상태는 깨끗한 구름이 아니다. 깨끗한(흰) 구름 안에서만 무지개(퀘세트 :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이후에 제자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고(먹구름이 걷히고) 깨달음의 눈이 열리자 자신들 안에서 다시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 것이다(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계 22:2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번역이 잘못 되었다.
(나이 애르코마이 타퀴, 아멘. 나이,에르쿠, 퀴리에 예수) : “진실로(참으로) 내가 현재 빠르게 오고(나타나고) 있다. 아멘. 진실로(참으로) 현재 오고(나타나고) 있는 주 예수.”
3) ‘속히 오리라, 오시옵소서.’가 아니라 현재 나 자신으로 확실하게 등장하는 내용이다.
‘속히 오리라, 오시옵소서.’가 아니다. 전혀 다른 뜻으로 오역하고 있다. 현재 확실하게 아주 빠르게 나 자신으로 등장하는 내용을 잘못 표현하고 있다.
‘내가 오리라’로 번역한 ‘에르코마이’가 현재 중, 수디포넌트 동사 1인칭으로 되어 있다. 디포넌트 동사는 ‘~한 상태로 있어지라’의 뜻이다.
나의 몸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나타나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1인칭은 내 안에서의 일이다.
깨달음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 나(예수 차원의 나) 자신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오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 오실 몸 밖의 예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씀으로 깨닫게 되어 내가 하나님과 아주 신속하게 하나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 모두는 이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알아차리기에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몸 밖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대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기다리는 어이없는 현상이 계속 되고 있다. 모두 술에 취해 있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미 자신 안에 임재해 계신 그 하나님을 배격한다.
4) 하나님의 일은 창 1:1~계시록 22:20까지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여정이다.
창 1:1 말씀의 시작으로 계시록 22:20까지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마음이 정과 욕심으로 가득한 처음 그 하늘과 처음 그 땅을 갈아엎으시고 옥토 밭으로 가꾸어 말씀(진리)의 씨를 뿌려서 열매(아들)를 얻기 위함이다. 이 열매가 내가 아들(단독자) 됨이며, 아버지와 하나 됨이다.
창 1;1부터 시작하여 계시록 20:22의 말씀이 내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무수한 내면의 전쟁을 겪어야 한다. 겉 사람의 속성인 감각적 욕망이 모두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시록에 수많은 전쟁과 죽음이 등장하고 있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두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기뻐해야 할 일이다.
나의 겉 사람의 속성들이 빠르게 죽게 되면 그만큼 깨달음이 빨리 오는 것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