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을 보는 눈
우리는 보이는 만큼 본다. 얼마 전 남해안 끝자락 신안에 여행을 가서 자은도에 있는 수석박물관을 들렀다. 그곳에서 평생 돌을 수집해 온 관장님과 대화 중 나온 말이다.
그럴 것이다. 탐석(探石)을 하러 가서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이 어느 눈 밝은 이에게 발견되어 명품 수석의 반열에 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은 시각 인지능력이 제한되어 눈앞에서 일어난 일도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의 두뇌는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보고 듣고 싶은 것 위주로 듣는다.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친다고 하는데 정작 자신은 자신이 본 것이 전부라고 굳게 믿으며 착각하고 산다. 수억의 세월 속에 비와 바람과 물에 갈고 다듬어져 더는 버릴 게 없는 예술작품이 된 돌이 옆에 있더라도 보는 눈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평생을 돌에 미치다시피 하며 전국과 심지어 해외에까지 나가 맘에 드는 돌을 수집한 사람도 심미안을 가지고 보는 눈이 없으면 명석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 이득이라는 돌의 가치에 집착하는 욕심이 더해지면 짱돌이 명품 수석으로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수석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여 우리나라에 전래한 것으로 신라의 승전법사가 갈황사에 80여 점의 수석을 수집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양반가에는 도자기와 함께 집안 어디쯤 수석 몇 점은 가져다 놓고 감상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지금도 전국에 수석 마니아들이 수석 전용 TV도 운용하고 경매도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 박두진 시인은 스스로 500여 점의 수석을 수집하고 300여 편의 수석에 대한 시를 썼으며 3권의 수석 열전 시집을 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수석을 자연이 빚어낸 조형예술로 사상과 감정, 정신과 꿈이 모두 담겨있는 생명체라 하였다. 수석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수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때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수석과 일체감 속에 시가 쓰인다고 했다.
충주댐이 생기기 전에는 남한강을 따라 단양에서 충주를 거쳐 여주 이포까지 좋은 수석이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재질이 단단한 검은 오석(烏石)이 주로 발견되곤 했는데 충주에서 자란 나도 수석 수집이 취미인 친구 아버님과 몇 번 돌을 주우러 동행한 적이 있다. 탄금대 합수머리와 목행 다리 근처, 목계 등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강변을 따라 돌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곤 했다. 종일 돌을 뒤집으며 모양과 무늬를 살피고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돌 속에 숨어있는 예술성과 가치를 찾고자 했으나 쉬운 게 아니었다. 어쩌다 맘에 드는 돌을 주워 친구 아버님께 보여드리면
“화단에 갖다 놓으면 마당이 살겠다.”
하시며 대수롭지 않게, 그래도 실망하지 않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서
“김 군, 저렇게 많은 둘 중에 쓸만한 돌이 몇 개나 되겠나?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 나?”
라고 하셨다.
오후 해거름까지 발품을 팔다가 배낭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돌들을 몇 점 넣고 집에 오면 피곤할 만도 한데 그때부터 그분은 돌을 씻어 좌대에 앉힐 모양을 이리저리 놓아보며 많은 시간 공을 들이셨다. 그러나 정작 집안에 그 돌에 맞는 좌대에 앉혀 가지고 들어오는 작품은 일 년에 몇 개 없었고 꽃밭과 장독대 주변에 쓸모없는 돌만 자꾸 쌓이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분 덕분에 수석을 보는 눈과 수석의 기초인 모양, 재질, 크기, 무늬, 구도 등을 건성으로나마 감상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냇가에 가거나 강과 계곡에 훈련 나가서도 심심하면 돌들을 뒤집고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는 그분이 평생 아끼며 진열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감상하던 수석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내게로 와 있다. 자식들에게는 이미 몇 점씩 주셔서 그 돌은 내가 간직하면 아버님이 좋아하실 거라며 친구가 준 것이다. 상당히 큰 오석 재질의 수석인데 곰이 잠이 든 듯도 하고 능선이 부드럽게 뻗어 나간 듯도 한 좋은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수석에 문외한 티는 벗은 터라 병사들에게 정신교육을 할 때 돌에 비유를 자주 하곤 했다. 각자 집에서는 가장 귀한 보석인 병사들이 군에 들어오면 강가에 굴러다니는 막돌 취급을 받는다. 귀한 것은 희소성이 생명인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인 옆 전우를 몰라보고 일체화, 규격화된 군 문화에서는 다 같은 돌로 보이고 그렇게 대접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석을 감상할 때 그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찾고 그 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려고 자세히 본다. 그런데 군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장점보다 단점을 찾아 지적하고 어떻게 하든 꼬투리를 잡아 소위 군기라는 핑계를 대며 괴롭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상대방이 게으르거나 미숙하여 잘못하면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사전에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닦달하는 예도 많다.
심지어 “ 야! 이 돌대가리야.”하고 심한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오묘한 말이다. 돌에 글자를 새기면 천년을 가듯이 돌머리에 자신의 나쁜 말을 새기면 평생 간다는 이야기이다. 안도현의 시 ‘연탄불’을 패러디하여 ‘돌머리라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 돌에 새긴 이의 말은 천 년 동안 기억되리니.’라고 우스갯소릴 하였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전우가 아주 귀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라고 생각하고 잘 지내라는 이야기를 했다. 눈은 보려고 하는 것만 보이기 때문에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보는 눈을 가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같은 수석이라도 보는 눈에 따라 무수한 변화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듯이 옆 전우의 인간 내면까지 깊숙이 들어가 바라보면 그가 하는 행동이 이해되면서 잘 보듬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곤 했었다.
신안에서 만난 수석박물관 관장님은 수석을 보고 감상할 뿐 아니라, 수석이 말하는 내력과 전설을 듣는다고도 하였다. 하찮은 작은 돌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역사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수석 감상에서 배운 대로 세상 모든 만물과 이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돌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숨 쉬는 돌의 심장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첫댓글 대신 올렸는데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