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티움의 역사 이스탄불
(2006. 11. 14 - 11. 16)
▣ 여행 개요
◐ 여행 지역 : 터키 그리스 이집트
◐ 여행 기간 : 2006. 11. 14 (화) - 2006. 11. 24 (금) <10박 11일>
◐ 여행 알선 : K R T (김 앤드루 투어) 가이드 정진영 (010-3033-2116)
◐ 여행 인원 : 이종길 정순희 김문호 정진명 외 16인
◈ 일정별 시간별 관광 스케치
▣ 11. 14 (화)
- 10 : 30 콜밴으로 김 사장 내외와 죽전 집 출발
- 16 : 15 KE 955 편으로 인천공항 이륙
- 20 : 35 이스탄불 공항 착륙(이하 현지 시간) <터키 현지 가이드 안 현정 0537-862-0009 >
- 22 : 00 Seres Hotel 507호실 투숙
◆ 터키 고대 유적이 집중 산재된 술 탄 마호메트 지역 호텔 인근 호프집에서 켄 맥주 2 컵을 마시고 여행 첫 밤을 맞음
※ 이스탄불의 역사
▶ BC 7세기 경 그리스 지도자 비지스 가 “눈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아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그리스 문화를 대표하는 지명인 비잔티움으로 불렀다.
▶ AD 4세기 초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 AD 330년 5월 11일 히포 드럼에서 새로운 도시로 면모를 갖추고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태어나 1230년 동안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기독교 문화를 대표하였다.
▶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터키 제국의 마호메트 2세에 의하여 비잔틴 제국이 망하고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이라는 이슬람식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 1923년 10월 29일 무스타파 케말 대통령이 나라 이름을 터키공화국으로 선포하고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겼음
▶ 세계를 지배한 3대 강국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2000년에 걸친 수도 이스탄불은 12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이며 동양과 서양 문화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고도이다.
▣ 11. 15 (수)
- 04 : 50 기상
- 06 ; 30 새벽의 이스탄불 시내 관광
◆ 오리엔탈 특급 유럽 시발 및 종착역 시르케즈 앞 보스포러스 해협의 낚시꾼 즐비한 아타튀르크 다리를 건너 유럽 쪽 이스탄불 고색 찬연한 거리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미국적 호화 유람선 Golden prince 호의 거대한 위용에 감탄하다.
- 07 : 30 뷔페식 호텔 조식
- 09 : 30 버스관광 출발
- 10 : 15 히포 드럼 광장 관람
◆ 히포 드럼은 196년 로마 황제 세비 루스에 의해 세워진 검투상으로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는 금지되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으로 전차 경기가 벌어지는 트랙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권력투쟁과 폭동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광장에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로서 이집트의 투투 모스 3세가 히타이트의 군대를 물리친 기념으로 기원전 15세기에 만든 것으로 비잔틴제국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룩소르 나일강가에 있는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에서 옮겨온 핑크색 단일 화강암 대리석에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조각품 오벨리스크 가 있다. 이 조각품의 원래 길이는 32.5m이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40%가 깨어져나가 현재는 높이 20m 무게 300톤에 달한다.
◆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와 팔라 테마 전투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거둔 승리를 기 념 하기 위하여 아폴로 신전에 세웠던 것을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가져온 뱀 3마리가 서로 몸을 꼬고 올라가는 모습을 한 셀펜타인 기둥, 이 기둥의 머리 위 에는 지름 2m의 황금 트로피가 있었으나 옮겨 오기 전 분실되었고 머리는 오스만 시대 돌에 맞아 부서 젓다 고 한다.
또 콘스탄틴 7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바실 레우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10세기에 세 어진 높이 32m의 돌기둥 외부에 청동이 입혀 저 있었든 콘스탄틴 기둥 은 13세기 초 라틴 군이 이곳을 점령한 후 청동을 떼어 내어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 하였 다고 하며 1894년 지진으로 심하게 부서 젓 으나 최근 다시 복구되었다.
1898년 빌헬름 카이저 2세가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동맹을 축하하기 위하여 헌정 한 팔각지붕의 분수대, 등 수많은 유물이 역사의 증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 10 : 40 보스포러스(소가 지나간 자리) 해협 크루즈 시작
◆ 보스포러스 해협 아시아 쪽 → 별장 주거 지역 중심
유럽 쪽 → 상업 중심지 유적지
◆ 해협 전체가 그리스와 전쟁에 패한 후 주변국 강요로 공해 선포
○ 시르케즈 역 앞에서 여객선을 타고 포스포러스 해협의 아시아 쪽과 유럽 쪽을 번갈아 왕래하면서 고색창연한 이스탄불의 절경을 감상하는데 여객선 앞 쪽 갑판에는 일본 방송 매체의 사진 촬영으로 분주함을 떨었다.
○ 마르마라 해협(남측) → 보스포러스 해협(총 길이 36 km 평균수심 70m) → 보스포러스 제1대 교 (전장 1.2 km 사장교),→ 보스포러스 제2 대교 (파티슐탄 마호메트 대교,) → 흑해 (북측)
○ 해가 뜨는 곳의 요새 아나돌루히사르 성체
○ 150년 전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궁전 돌마바흐체
○ 이스탄불 북쪽 탁심 거리 바시티 시 축구장
○ Grub Saray Restrant에서 우루다케 케밥으로 점심 식사
◆ 터키제국의 융성 발전
▶ 비잔틴 제국 → 콘스탄티노플 → 이스탄불 → 터키 →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적지 (서남 부분)
- 14 : 15 TOKAPI SARAY 관람
○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마흐메드 2세 건립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하여 유물 전시관 관람
1. 황제의 문 → 2. 경의의 문 → 3. 행복의 문 → 중국 일본 도자기 관(1700년경) → 황동 주조 조각물 관 → 의복 관 → 보석 관 → 할레 관 → 타일과(청, 백, 황, 록) → 할렘 관(왕족 회의 관)
- 16 : 30 Grand bazaar 쇼핑
○ 이스탄불의 남대문시장으로 천정으로 덮인 30,700 ㎡ 건물에 3000여 개의 점포가 질서 정연하게 바둑판처럼 자리 잡고 온갖 물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제품의 품질은 보증받지 못하지만 가격 깎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60$짜리 혁대 2개를 25$에 구입하다)
- 17 : 45 한사랑 한식당에서 우거지국밥 저녁식사
- 18 : 30 호텔 체크인
◆ 터키 민족의 모든 행동은 느긋한 편이나 운전할 때만은 급하고 과격 해진다. 차선 표식 없는 복잡한 길에서 깻잎 한 장 사이로 통과하는 버스 운전기사의 운전 실력은 신의 경지에 이른다.
○ 공동 경비 가이드에게 지불 → 현지 가이드 및 기사 팁 등 220 EUR → 이집트 입국 비자 수수료 15$
▣ 11. 16 (목)
- 05 : 00 기상
○ 히포 드럼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외관 관람 및 보스포러스 해의 일출 감상
○ 산책길 도로변에 빨간 1층 기와지붕의 영남호텔 간판이 어릴 시절 자란 고향처럼 반가움을 주었다.
- 07 : 30 호텔 조식
- 09 : 00 호텔 체크아웃
- 09 : 30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관람
○ 술 탄 마호메트 사원(Blue Mosque)
비잔틴문화의 표상인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아야소피아)을 누르고 이슬람이 비잔틴 보다 우월한 문화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맞은편 언덕에 다재다능한 마흐멧 아가에 의하여 1609년에 착공 1616년에 완공한 건축물로 가로 64, 세로 74, 높이 43미터로 4개의 큰 기둥으로 중앙 돔을 바치고 있다.
햇빛이 잘 들게끔 창문을 많이 내고 유리 색상도 다양해 안으로 들어가는 빛이 여러 색깔을 나타내도록 돼 있으며 사원 내부 벽은 21,043 개의 터키 전통 문양의 푸른 타일로 장식되어 블루 모스크 라 불리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각각의 색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했으며 돔의 봉대는 다른 나라 왕들의 선물인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같은 보석으로 장식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담아 놓고 들어가면 바닥에 전통 무늬로 짠 카펫이 한 사람씩 엎드려 기도할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다.
신학교, 목욕탕, 시장, 병원 등을 갖춘 이슬람 사 원 중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을 가진 블루 모스크는 세기적인 건축물이 분명하며 무료입장이다.
○ 성 소피아 성당(Aya Sophia)
500년간 이스탄불과 함께 역사를 잘 대변해 주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
서기 537년 동 로마의 황제 유스티 아티누스 가 세운 사원으로 50만 명의 인원이 6 년 동안에 만든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비잔틴제국에서는 오랫동안 정교회 총주교가 있는 주교 대성당(537-1459) 역할을 하다가 1453 년 마호메드 2세에 의해 오스만 트루크 제국에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된 이후 주위에 4개의 미니 래이 세워져 1922년까지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가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이끈 터키(1935)에서는 이곳을 비잔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공존을 위하여 일체의 종교행위를 금지하는 국립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성당 내부에는 동서 31.8 m, 남북 30.9m, 중앙에 높이 56m의 원형에 가까운 반구형 거대한 돔 지붕이 지탱하는 기둥 없이 벽으로 만 버티고 있다. 내부 벽 한쪽에 “마리아의 손 모양”이라고 불리는 기둥이 있는 데 기둥의 움푹 파인 곳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고정시킨 채 몸을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여러 사람이 소원을 빌기 위하여 줄을 서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이 경사진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것은 왕비의 기도 행차에 가마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며 돔 천장은 모자이크로 표현한 판토스 레이토(우주 지배자로서의 그리스도)로 장 식 되었고 그 하단에는 40개의 창을 통하여 빛을 끌어들여 돔 천장을 구석구석 비춰준다. 1453년 오스만제국에 함락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벽은 곳곳이 훼손됐는데 모두 성화(모자이크) 기 있던 자리다. 사람 형상은 모두 “우상숭배”로 간주해 철거되었다. 노란색 바탕에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장식의 돔 천장은 일부가 뜯겨 나가고 거기에 빛바랜 판토크레이토 모자이크 화가 보인다. 술탄은 이것을 가리기 위해 그 위에 회분 칠을 한 뒤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했다. 두 종교 틈에서 힘겨운 역사를 보낸 아야 소피아, 현재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이스탄불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관심 속에 잘 보존되고 있다. 1932년 미국 비잔틴 연구소의 복원작업이 개시되었지만 “복원” 자체를 이슬람권에서는 또 다른“훼손”으로 간주하고 있다. 금년 로마교황의 터키 방문도 화해와 용서를 비는 종교 행사지만 아야소피아 방문은 터키인의 반대에 부닥쳐 종교 간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짐작게 한다.
- 11 : 30 이스탄불 수산시장 건너 노천 식당가 Patara 식당에서 고등어구이 케밥 식사
- 12 : 15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차량(버스)이동
○ 구시가지(유럽)에서 전장 1.2 km에 교각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현수교인 FAPTH 마호메트슐탄 대교를 건너 → 신시가지(아시아)로 이동 → 왕복 6 차선 고속도로 진입
- 13 : 30 이스탄불 시가지 벗어나 교외로 진입
○ 20m 미만의 낮은 송전탑이 교외로 뻗어나간 낮은 구릉과 넓게 자리 잡은 3 - 5 층의 다세대주택과 낮은 아파트, 기둥이 높이 솟은 이슬람 사원 도로변에 포플러 가 숲을 이루고 낮은 산 가장자리에 작은 수목이 엉성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풍경은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롭다.
○ 철강공장 등의 공업 지역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커다란 호수(마르 마르 해협의 끝자락) 긴 터널 2개를 지나니 이즈미르 시가지에 넓게 자리 잡은 현대자동차 공장이 세계로 뻗어가는 국력을 실감케 하고 오른편 1300m 높은 산에는 외롭게 솟은 안테나 아래로 눈이 쌓여 있고 곳 이어 나타난 사파타 호수에는 식인 물고기 출현으로 수영이 금지되고 드넓은 호수에 조각배 하나 없는 한적함을 간직하고 있다.
- 14 ; 00 Ber Seste 휴게소 휴식(앙카라 279km 남은 지점)
○ 유료 화장실(1$/3인)을 처음으로 가보고 터키산 포도 1kg/2$ 구입 옥수수밭 농토 주변에 여전히 파푸라 숲이 널려 있다.
※ 버스에서는 20명 여행객의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용인 촌놈이라고 인사하고 얼떨결에 마누라 소개를 하지 않고 넘어가 화근을 만들었다.
- 18 : 18 앙카라 시내에 진입
○ 시내 입구에서부터 각국 자동차 판매장이 앞을 다투어 자리 잡아 국력을 과시하고 문화의 유적이 드문 시내에는 낮은 다세대 주택이 거리를 덮고 있다.
- 18 : 40 Hotel STAR Gap에 투숙
○ 저녁식사 후 김 사장과 양주 2컵을 마시고 KO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