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만나는 할머니가 있다. 플라스틱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팔을 직각으로 꺾는다. 걸음도 느린데 겨드랑이에 붙은 팔이 왜 움직이는지 의아해서 웃었다. 웃은 죄로 벌을 받았다.
대낮에 길에서 ‘직각 할머니’를 만났다. 장을 본 보따리를 들었다 내렸다 했다. 휴머니즘에 빛나는 나의 오지랖이 사달을 내고 말았다.
“할머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보통 짐을 들어준다면 한 보따리를 넘긴다. 그녀는 내게 두 보따리를 다 안겨주었다. 황당했지만 나의 무쇠팔을 믿었다. 낑낑거리며 현관 앞에 내려놨더니 주방까지 갖다 달라고 했다. 나의 휴머니즘 철학에 따른 행동 강령은 이랬다.
“애를 봐줄 때는 애 엄마 올 때까지!”
그녀가 나의 철학을 알았는지 다시 부탁했다.
“새댁, 기운이 없어 그러는데 싱크대 양재기에 생선 좀 담아줘.”
새댁! 장성한 아들을 둔 나를 새댁이라 부르다니! 응차, 나는 새댁의 기운으로 보따리를 들었다. 그러나 빈 양재기는 없었고 개수대에 씻지 않은 그릇이 산더미였다. 잠시 나의 철학에 회의를 느꼈다.
그냥 나갈까? 한두 개만 씻을까? 나는 호구인 걸까? 할머니는 봉을 잡았을까?
중도에 그만두면 아니함만 못하리라는 경구가 무쇠팔을 움직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싱크대인 것이다! 단순노동의 묘미는 무념무상이다. 처음엔 성질났는데 생각 없는 무쇠팔이 자동으로 태산 같은 그릇을 씻었다. 행주질까지 끝내고 보따리를 해체해서 냉장고에 분류까지 했다.
‘에휴~ 내 집구석도 지금 엉망인데...’
할머니는 계속 떠들었다.
전에는 며느리가 자주 왔는데 무슨 일로 발길을 끊었으며, 그 무슨 일이 무엇이냐면 영감 죽고 재산을 큰아들에게 작은아들보다 조금 더 줬는데, 그 조금이 무엇이냐면 대대로 내려온 논과 밭인데, 그 논과 밭이 전라도 고흥에 있는데, 그런데 아. 그 논밭 때문에 작은며느리가 삐져서 발길을 끊었는데, 원래 큰며느리는 못된 년이라 오지도 않았는데, 그 년이 없이 사는 집안의 딸이라 이 혼인은 안 된다고 그렇게 반대를 했었는데...
나는 가락이 실린 사설을 듣다가 인내심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했다. 재산아 아니라 시어머니의 수다에 질려서 안 오는 것 같았다. 가겠다고 나서니 밥 먹고 가라고 했다. 독거노인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양심과 호구로서 느끼는 불쾌함이 정면충돌했다. 결과적으로 밥 먹고 다시 설거지한 후 할머니가 꾸벅꾸벅 졸아서 집에 왔다,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계단을 걸어 올라오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애를 맡기는 애 엄마가 없나, 설거지를 시키는 할머니가 없나, 이러다 동네 호구 되는 건 아닐까?
현관문 앞에 메모지와 딸기 그릇이 있었다.
‘감사드려요! 우리 아이들이 아줌마 좋대요!’
어제 잠시 봐준 아이들의 엄마였다.
다 때려챠!
살아보니 정말 좋은 사람은 잘 까먹는 사람이다. 다 잊어버려야 한다.
첫댓글 오랫만에 재밋는 글 감사드립니다.
어느 글이나 끝을 어떻게 맺나 걱정하면서 읽으니 나야말로 걱정도 팔자인 인생. 제목과 매치되어 무난히 넘어사는 맺음이라 안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