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코기토 논증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인류 중에 없다. 무언가를 느낀 사람은 있다. 그것은 직관이다. 직관과 논리 사이에 연결고리가 빠져 있다. 어색하다. 뇌가 가렵다. 사유가 격발된다.
왜 이 말이 유명해졌을까?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의심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틀렸다. 과학은 직관의 산물이다. 무언가를 느낀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 의심이다. 의심은 추론인데 직관이 추론에 앞선다.
의심은 거짓을 찾는다. 직관은 참을 찾는다. 무언가를 느꼈으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표현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찾지 못한다. 생각하는 것은 주체다. 의심되는 것은 객체다. 존재는 객체다. 객체는 나와 분리된다. 주체와 단절되어 맞은편에 있다.
생각하는 내가 주체이면 존재하는 나는 객체다. 내가 생각할 때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주체 속의 객체다. 객체는 나의 밖에 있지만 몸뚱이 밖이 아니라 자아의 밖이다. 생각하는 존재는 자아 안에 있다. 내 속에 내가 있다. 주체 나 속에서 객체 내가 복제된다.
뒤따르는 것은 선행하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진술은 전제를 의심할 수 없다. 아기는 엄마를 의심할 수 없다. 엄마는 자궁 속의 아기를 의심할 수 없다. 활 속의 화살을 의심할 수 없다. 총 속의 총알은 의심할 수 없다. 증명한다는 것은 곧 복제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