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용어로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본인의 행위에서 의도를 따져보는 것이다. 틀렸다. 의도는 조작된다. 권리를 따져봐야 한다. 의도 중심 사고는 잘못된 것이고 권력 중심 사고가 옳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이건 바르지 않다. 내게 이럴 권리가 있는가? 이곳은 나의 영역에 속하는가? 이곳은 나의 세력권인가? 내가 이래도 되는가? 이게 나의 의무인가? 다르마를 따지는게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다르마인지다. 축구선수는 슛을 하기 전에 혹시 남의 골대에 슛을 하고 있는게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형이상학 곧 메타피직스는 2300년 전에 나온 말이지만 현실에서 써먹을 일이 별로 없다. 형이하학만으로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 메타는 매개다. 매개는 붙잡는 것이다. 형태를 붙잡아주는 것은? 그것이 형이상학이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이는 것을 뒤에서 붙잡아준다. 총알은 날아가지 않는 총에 의지해서 날아간다. 화살은 날아가지 않는 활에 의지해서 날아간다. 모든 움직이는 것 뒤에는 받쳐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인지를 뒤에서 붙잡아주는 것은 권력이다. 메타인지는 권력인지다. 사회에서는 권력이고 자연에서는 압력이다. 다르마는 유체의 압력이다. 물은 수압이 걸려 있고, 공기는 기압이 걸려 있고, 사회는 민심압이 걸려 있다. 압력은 깔때기에 모인다.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으면 결국 그렇게 된다. 다르마를 지는 것이다. 짐을 지듯이, 책임을 지고, 의무를 지고, 다르마를 진다. 계속 짊어지고 있을 수 없다. 내려놓아야 한다. 정해진 길을 가게 된다. 빚을 지면 갚아야 한다. 삶을 짊어지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이 다르마다.
다르마를 어기는 행동은 결과 측에 개입한다. 그것은 등에 짊어진 것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남의 성과를 가로챈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올린다. 그럴 권리가 없는데 말이다. 등에 짐을 진 사람은 무게에 의해 자연히 내려놓게 되지만 짊어진 다르마가 없는 사람은 흥분해서 그것을 하게 된다. 흥분해서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집적댄다. 남북한이 삐라를 보내고 대북방송을 하는게 영화 황산벌의 신경전이다. 그러다가 휘말린다. 일본은 미국의 간을 보려고 수작을 부리다가 전쟁에 휘말렸다.
일본은 독일의 눈치를 보며 목적이 없는 전쟁을 했다. 진주만을 습격하고 그 다음 계획이 없었다.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독일과 이탈리아가 장에 가니까 거름 지고 장에 간 것이다. 그것은 등에 진 짐을 내려놓은게 아니다. 미국 역시 프랑스를 도와줘서 공치사를 들으려고 하다가 베트남과의 전쟁에 휘말렸다. 그들 역시 짊어진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해서 독일의 전쟁을 끝내도록 도우려고 했고 미국은 베트남에 개입해서 프랑스의 식민지 청산 끝내기를 도와주려고 했다. 남의 짐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