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갈등을 조절하는 조절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복종하면 평등으로 봐주고 대들면 차별로 조진다. 절대 카드를 버리지 않는다. 써먹지 않아도 협상용으로 들고 있다. 만인은 만인을 통제할 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려고 한다.
개고기 먹는 자들은 죽이려고 죽인다는 사실을 모른다. 조질 마음을 먹고 작정하고 조지는 것이다. 중요한건 타자냐 아니냐다. 유책주의는 한 편이라는 숨은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파탄주의는 적으로 간주한다. 적으로 선언되면 대상화 되고, 타자화 되고, 사물화 된다. 찍히면 죽는다. 개고기는 타자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극우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좌파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자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타자 = 사물 = 죽여도 되는 물체 =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물리적 대상.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성적 대상화라는 것이 있다. 대상화 한다는 것은 인격이 없는 방송용 소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법률로는 강아지나 고양이도 물건이다. 문제는 병사를 물건으로 보는 국힘이다. 그들의 눈에는 해병 사망이 장비파손이다.
문제는 숨은 전제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만인이 만인에 대해 선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적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믿는다. 북한이 침략하면?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 가족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족인가? 적이다. 서구에서는 만인이 만인을 잠재적 적군으로 간주한다. 적의 것은 당연히 훔친다. 유럽에 도둑이 많은 이유다.
교통사고를 냈을 때 피해자를 한 번 더 치어서 확실히 죽여야 형기가 줄어든다는 루머가 있다. 세상이 이렇게 살벌하다. 사고는 리스크다. 리스크는 무조건 증대된다. 아군이면 말을 들어야 하고 적군이면 일체의 연결을 끊어 추가피해를 막아야 한다. 선택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