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생활의 시작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고 어머니는 도쿄에 있는 한국 사찰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그 때 일본에 처음으로 한국교회가 들어왔었다. 위치는 도쿄타워 인근이었는데 집에서는 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아담한 2층집 단독주택을 교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가 바로 ‘순복음동경교회’였다.
교회는 성장하여 이듬해인 1979년에 신주쿠로 이전을 하게 되는데, 정확한 경위는 불분명하나 어느새 어머니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훗날 어머니로부터 흥미로운 일화를 들었다. 아직 초신자 시절이었을 무렵, 얼마 뒤 부흥회가 있어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외가가 본래 기독교 집안도 아니었기에 목사님 이름 하나 알지 못했던 어머니였는데, 부흥회 당일 오신 그 유명하다던 목사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서울역 인근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여고시절 전차에서 내려 학교로 가다 보면 매일 아침 서울역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큰 소리로 전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날 오신 목사님이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다름아닌 조용기 목사님이셨다.
교회 출석에 있어서 걸림돌은 아버지였다. 내가 교회에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아무 말이 없었으나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는 것에 아버지는 반대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종교문제는 아니다. “남편이 집에 있는데 여자가 일요일에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매주 일요일은 부부싸움이 빈번했다.
2년 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아버지가 넥타이를 매고 계셨다. 직장 업무상 간혹 일요일에도 출근하시는 일이 있었기에 오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출근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말한다. “교회 가야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전도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는 도쿄에 있는 동경한국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는, 인생에 있어서 일본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일본학교로 진학을 했다.
아버지는 대사관 직원, 말하자면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퇴직을 하게 되면 귀국해야 하며,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대학 정도는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도 워낙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행을 택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 네가 먼저 가 있어라”고 하여 홀로 귀국했으나,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여전히 부모님은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1년간의 재수생활을 끝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자 일본에서 한 소식이 들려온다. 그 때까지 다니고 있던 교회에 직장인을 위한 신학교 야간과정이 신설되었는데 아버지가 그 과정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몇 년간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근하자 마자 교회로 가서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신학과정을 마친 아버지는 대사관을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의 길에 들어선다. 1년간의 오사카(大阪) 전도사 생활을 거처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 시로 파송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