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방향전환을 못한다. 그러므로 다르마를 따라야 한다.
인간만 방향전환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방향전환은 우주 안에 없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이다. 에너지는 계를 이루고 안정될때까지 움직이므로 자연의 어떤 상태는 계의 안정된 상태다. 거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불안정해진다. 불안정은 에너지를 단절시키므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계 전체의 방향전환은 불가능하지만 부분의 방향전환은 가능하다. 그 경우는 에너지가 연결된 계 혹은 집단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몸통이 중심을 잡아주므로 우리는 오른팔과 왼팔을 움직일 수 있다. 전체가 중심을 잡아주면 부분이 대칭을 이용하여 방향전환을 할 수 있다. 집단은 대집단에 의지해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다.
방향전환을 하려면 지렛대가 필요하다. 지렛대는 대칭에 의해 조달된다. 대칭된 둘을 통일하는 상부구조가 있어야 방향전환을 할 수 있다. 세상이 상대성 이원론으로 보이는 이유는 대칭성 때문이다. 그러나 대칭이 공유하는 에너지로 보면 절대성 일원론이다.
에너지 전체 - 절대성 일원론
대칭성 부분 - 상대성 이원론
개인은 가족에 의해 결혼하고, 가족은 부족에 의해 자립하고, 부족은 국가에 의해 자립하고, 국가는 문명의 진보에 의해 자립한다. 움직이는 것은 항상 상위집단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 남녀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도 단순하다. 인간은 원래 가족이 결혼을 시켜주지 않으면 못하는 존재다.
몸을 움직이려면 중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중력이라는 다르마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개인은 집단의 결속력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팀 플레이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문제는 대칭성이다. 대칭은 반대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려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부분을 움직이려면 전체의 반대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개인은 집단의 반대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그것은 배반과 같다. 모든 의사결정은 일정부분 다르마를 배반한다. 개인은 집단을 배반하고 부분은 전체를 배반한다.
배반하면 배반할 수 없다. 배반하면 분리되고 분리되면 지렛대를 이용할 수 없다. 기생충이 숙주를 떠나면 숙주를 이용할 수 없다. 다르마를 배반하는 것이 의사결정인데 다르마를 배반하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인생에 한번만 배반할 수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한 번은 부모를 떠나서 독립해야 한다. 한 번은 집단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 가족을 배반하려면 부족에 의지해야 한다. 부족을 배반하려면 국가에 의지해야 한다. 국가를 배반하려면 문명에 의지해야 한다. 더 큰 전체에 의지해서 작게 한 번 배반할 수 있다.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은 관성의 법칙이다. 그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방향을 틀어 뒤로 가는 것이 방향전환이다. 뒤로 가면 분리되고 분리되면 영원히 방향전환을 할 수 없게 된다. 일생에 한 번만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면 부모가 의지하는 것에 의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다. 바퀴가 회전하려면 바퀴축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엔진과 연결되어야 한다. 손발을 움직이려면 몸통과 분리되어야 한다. 대신 중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개인은 국가에 소속되는 방법으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더 큰 단위에 소속되는 방법으로 작은 단위에서 독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