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생각이 끊이지 않은 채로 대문 밖을 나선 지 한참이 지나고 시끌벅적한 곳이 다다르자 마차의 문을 조금 열어보는 은하다.
포장되지 않은 모랫길 양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채웠고 가끔가다 멈춘 사람들 앞에는 좌판에 깔린 야채며, 생선이며 다양하게 놓여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도 이곳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가..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저잣거리..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꿈에서 깨면 언제 또 와볼까 싶어 내리려고도 했지만 여전히 생각이 복잡한 은하는 그저 마차 문을 닫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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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훅-내려가더니 또 은하를 부른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마차 문 열겠습니다-’
문이 열리는 대로 발을 디뎌보면 으리으리한 궁 앞이다.
‘궁이…왜 이렇게 까매..’
눈에 보이는 곳은 온통 무채색으로 덮여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시꺼멓겠구나 훤히 알 것 같은 궁. 마차를 움직이던 아저씨 중 한 사람이 궁 앞에 창을 들고 지키는 사람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고 무어라 무어라 얘기를 나누더니 은하에게 온다.
‘아가씨. 이제부터는 혼자 움직이셔야 합니다’
‘저요? 저 혼자요?!’
‘아가씨. 감사했습니다. 몸 건강히 지내세요’
고개를 조아리더니 빈 마차를 들고 왔던 길을 돌아가는 아저씨들이 작게 궁시렁대던 말을 은하는 들었다.
‘아가씨 노여워서 어째..’
‘폭군이 다름없댜…’
‘우리 아가씨..살아서 다시 볼 수나 있으려나..’
‘..그런 소리하지마러..!아가씨 듣겄어’
‘아가씨가 왔으니 울음소리가 안나겠지..’
이미 다 들리는 아저씨들의 말에 내색않고 궁으로 다가서는 은하.
은하가 궁 앞에 서자 궁문이 열린다. 문에 가려져 있던 궁 내부는 생각과는 달리 흰색으로 눈이 아플 지경이다.
‘곧 도착할 거라는 서신을 받았는데 정말 금방 도착하셨네요. 은하 아가씨 맞으시죠?’
‘…헐 미호야!’
내 친구 미호다! 미호가 왜 여깄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은하는 방방 뛰고 만다.
‘제 이름을 어찌 아셨어요?!’
‘야~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요즘 미용실 바쁘다고 나랑 안 놀주더니 꿈에 놀러 왔냐?!’
은하는 그저 낯선 꿈에서 만난 미호가 반갑다.
‘저는 은하 아가씨를 모실 미호라고 합니다’
‘그래~ 나를 어디 한번 모시거라~’
은하는 미호를 만나자마자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미호야 근데 우리 어디가?’
‘전하부터 뵈셔야지요~!’
궁 안을 누빈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은하와 미호는 현실에서처럼 벌써 쿵짝이 잘 맞는다.
‘전하? 저~언하 납시오! 할 때 그 전하?’
‘그..쵸? 근데 아가씨..이제 내일이면 마마가 되실 건데 말투에 체통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어요..?’
‘내일? 야 꿈에 내일이 어딨어~ 깨면 끝이지’
‘아이참. 공주님. 전하 앞에서는 꼭 조심하셔야 해요..다왔습니다’
미호가 닫힌 문 앞에서 ‘전하~ 은하 아가씨께서 인사 올리십니다’ 하자 스르륵 하고 문이 열렸고 미호는 ‘아가씨. 말조심 또 말조심!’ 하더니 은하 등을 떠민다.
떠밀린 등에 들어온 방에는 안에서 문을 열어준 사람이..있었는데 없다. 아까 내가 들어오면서 나간 것 같다. 고로 이 방에는 자기와 전하라는 사람밖에 없고 그 사람이 앞은 얇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은하는 일단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 천을 걷는다.
그곳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아가씨 노여워서 어째..’
‘폭군이 다름없댜…’
‘우리 아가씨..살아서 다시 볼 수나 있으려나..’
‘..그런 소리하지마러..!아가씨 듣겄어’
‘아가씨가 왔으니 울음소리가 안나겠지..’ 라며 지나가던 아저씨들의 말이 생각나는 은하다.
왜냐하면…정말 폭군인가 싶었다.
무채색 한복에 무표정을 넘어 정색하는 듯한 무서운 얼굴에.. 말도 하루에 두 마디 이상은 안 할 것 같은데 한 마디는 죽여라 일것만 같은..
‘오는 길이 춥지 않았습니까’
아…이제 나머지 한 마디가 죽여라 이겠구나..
‘고단한 길 혼자 오게 해 미안합니다’
오는 길이 춥지 않았는지, 고단한 길을 혼자 오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그의 눈을 보는 은하는 꿈에서조차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궁 밖과 궁 안이 많이 달랐던 게 이 사람과 많이 닮아있다고.
‘..네. 안힘들었어요..아니 안힘들었습니다-..’
왜인지모르게 원래 말투를 못 쓰게 된 은하다.
‘다행입니다. 내일 혼인식이 일찍부터 시작될 테니 돌아가 어서 몸을 편히 하십쇼’
‘저..이제..나가요? 아니..나가봅니까?’
사극 드라마를 보면 뭐 하나.. 나가봅니까? 어디 시비 털러 온 광대마냥 말하는 본인 말투에 꿈인데도 창피한 은하다.
근데..저 사람 웃었다. 은하의 질문을 듣더니 전하라는 사람이 웃었다. 근데 안 웃은 척 헛기침을 한다. 꿈에서도 이미지 챙기나.. 그냥 웃으면 되지..
‘..크흠- 여기 더 있고 싶으십니까’
‘나가보겠습니다’
은하 드라마에서 보던 내시마냥 뒷걸음질로 방을 나선다.
은하가 나간 방안에서 전하라는 사람은 그날 내내 나랏일의 서신을 해결하다가도 피식하며 웃어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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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이상하네 꿈인데도 묘-하게..피곤하네’
‘은하 아가씨!’
‘어! 미호야! 여기여기!’
‘혼자 돌아다니시면 어떡해요! 제가 모시러 온다니까요!’
‘너가 안 모시러 왔잖아!’
‘…따라오세요. 아가씨 방은 이쪽입니다’
어딘가 삐진 듯한 발걸음을 털레털레 은하를 안내하는 미호를 은하는 웃으면서 따라간다.
‘이야~ 아가씨 방이라고 으리으리하다~내 월세방보다 좋네’
‘공주님 오늘은 일찍 주무셔요- 내일 해가 뜨는 대로 혼인식 거행한답니다. 일찍 주무셔야 피부가 곱죠’
내일 깨면 피부과나 가야겠다 생각하며 쉬이 넘기는 은하다.
‘공주님 이제 곧 저녁상 준비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셔요’
‘저녁? 저녁도 먹어? 오냐 내오거라~’
‘꿈에서나 이렇게 부려 먹지 언제 또 이렇게 부려 먹어’ 하며 여전히 친구와의 역할극이 재밌는 은하다.
‘공주님~ 저녁 드셔요’
푸릇푸릇한 채소에 통통하게 오른 조기가 구워져 올라와 있다. 나물들이 비벼진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생선의 비릿한 냄새.. 고소한 쌀 밥 냄새 어느 것 하나 맛없어 보이는 게 없다.
자취하면서도 이렇게 챙겨 먹어본 적이 없는데 꿈에서나마 이렇게 진수성찬을 먹는다는 게
은하는 그저 웃긴다.
‘아 이거 진짜 꿈에서 깨도 챙겨가고 싶다’하며 열심히 먹는 은하가 문득 생각한다.
‘근데…꿈에서 냄새도 났었나..?’
아침부터 점심저녁까지 정말 흐르는 시간처럼 보낸 은하는 저녁까지 먹으니 하루가 고되다. 솔솔 잠이오자 이제 진짜 꿈에서 깨려나 보다. 깨면 안 잊어버리게 일기에 써놔야겠다며 잠에드는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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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뭐야..나..아직도 꿈에서 안 깼어?
‘아가씨-! 일어나세요!’
‘..뭐야..저녁 먹고 간식,, 뭐 이런 거야?’
‘무슨 소리세요..! 해떠요 해!’
이게 무슨소리야 하면서 일어난 은하..밖은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녁이다.
하루가 지났고 지금도 나는 여기 있고.. 여전히 아가씨인 은하는 이제 점점 더 이 꿈이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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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분주하게 챙기던 미호를 따라와 보니 은하는 세상 제일 무겁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채 광장에 나와 있었다.
여전히 은하는 혼란스럽다.
‘지금도 꿈이야?’ 그럴 리가 꿈이 자다 깨도 안 꺤다고? 그러고보니 어제 밥 냄새도 나고..먹으니가 배도 불렀다.
‘그럼 지금이 현실이야?’ 그럴 리가..분명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은하와 친구들 유튜브 찍었던 게 생생한데?
‘그럼..지금 이게 뭐야’ 하는 순간 은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외친다.
‘전하 납시오’
풍악이 울린다. 어제 방에서 본 그 남자와 나와 비슷한 한복을 입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 내가 진짜 전하랑 결혼을 한다고?’
어느새 은하 코 앞까지 온 전하는 어제처럼 묻는다. 은하에게만 들리도록 묻는다.
‘아침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은하는 알았다. 어쩌면 전하라는 사람의 질문이 몇 번이고 있어야 이 꿈이 끝나든 삶이 끝나든 끝나겠다고. 그리고 은하는 그대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