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천만에. 언어가 생각한다. 언어가 생각한다는 믿음은 틀렸다. 언어는 사건을 해석한다. 사실은 사건이 생각한다. 사건 속에 권력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사실은 권력이라는 이름의 관성력이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반응한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한 이유는 환경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쏠림효과라는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거기서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능동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권력에 붙잡히는 존재다. 외부의 부는 바람에 휩쓸리고 내부의 조여오는 초조함에 쫓긴다.
늑대 무리에게 쫓기는 사슴은 직진만 계속하다가 잡아먹힌다. 달리는 사슴은 속도를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장 늑대가 산모퉁이 반대편을 돌아와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인간이 권력의 관성력에 잡히면 그냥 하던 짓을 반복하며 루틴을 지키려 할 뿐 방향전환을 못한다.
외부 권력에 잡히면 외부 도움을 받아 탈출하면 되는데 내부 권력에 잡히면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탈출할 수 없고 루틴에 중독되면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잡아먹히면 어쩔 수 없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주술을 걸기 때문이다.
여럿이 하나처럼 행세하는게 권력 메커니즘이다. 양이 열 마리 모여 떼를 이루면 거기에 권력이 발생한다. 여럿이 모이면 관성이 생긴다. 내부의 관성력을 깨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집단은 관성력 손실을 방지하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한다.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면 이긴다. 유리한 지점을 장악하려면 병사들을 넓은 공간에 흩어야 한다. 흩어지면 권력이 깨진다. 인간은 권력의 파탄을 두려워한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려면 잘 훈련된 군대가 필요하다. 원팀을 이루고 팀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연결상태를 유지하려면 묶어야 한다. 한신의 배수진은 보이는 지형으로 묶고 잔다르크의 종교적 열정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는다. 보이는 끈으로 묶으면 리스크가 따른다. 좁은 공간에 밀집하여 궁지에 몰린다. 집단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는게 전략이다. 생각은 전략이다.
건축가의 설계도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목수들이 흩어져서 자유롭게 일하지만 설계도가 정해준 규칙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다. 집단이 연결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구성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 전략이다. 엄마의 지켜보는 시선 안에서 아기는 평화롭다.
구조로 묶어야 한다. 자연의 지정학적 구조든,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든, 개인의 심리적 구조든 구조가 존재의 속성을 결정한다. 묶어서는 내부에 관성력을 조직하고 풀어서는 관성력을 이용한다. 먼저 묶고 나중에 풀어야 한다. 묶이는 깔때기 입구와 푸는 깔때기 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