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目楗連)
사리불과 더불어 초기불교 교단의 쌍벽을 이룬 인물이 목건련 존자다.
좌 사리불 우 목건련이라고나 할까, 이 두 사람은 부처님의 왼팔과 오른팔이었던 것이다.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사리불과 목건련은 이지적인 청년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가정 환경과 교육 수준, 그리고 아름다운 우정으로 언제나 자리를 함께했으며, 청년으로 성장한 후에도 학문과 인생, 종교적 진리에 대해서 서로 진지하게 토론해 가면서 구도의 길을 걸었다.
목건련은 마가다 국 왕사성 근처의 콜리타(Kolita)라는 마을의 한 부유한 브라만 사제의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름도 역시 콜리타였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의 어릴 적 이름도 역시 콜리타로 불렸다 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 환경과 바라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특권, 그리고 영민한 두뇌로 4베다를 비롯해 당시 고도의 학문 세계를 훌륭하게 학습하였다.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선 콜리타는 모계(母系)의 성(姓)을 따서 마우드갈라야야나(Maudgalyayana)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음역이 목건련(目楗連) 혹은 목련(目連)이다. 그는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온 후 맹렬하게 수행한 결과 진리를 깨닫고 십대 제자의 반열에 끼게 된다. 열명의 제자 중 목건련의 두드러진 특기는 신통력이었다.
그는 신통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날아 다니는 물체를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처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래서 <증일 아
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나의 제자 중에 신통 제일은 목건련이다."라고 하셨다.
신통력의 진정한 의미
사실 신통력이란 요가 등의 선정 수행으로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다 보면 생겨나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부처님 역시 이 신통력을 획득했다. 신통력에는 모두 6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를 일러 육신통(六神通)이라 한다.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족통(神足通), 누진통(漏盡通)이 그것이다.
천안통이란 가시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멀리까지도 볼 수 있을 뿐더러, 일상적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차원을 뛰어넘은 세계마저 보는 눈이다.
천이통이란 천안통의 신비한 능력처럼 듣는 데 뛰어나고 비범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소리를 다 듣는다.
타심통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 차리는 능력이다.
숙명통이란 인간의 과거 운명을 꿰뚫는 능력을 말한다.
신족통은 생각하는 대로 모습을 바꾸고 마음 먹은 대로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는 신통력이다.
마지막으로 누진통이란 번뇌를 모두 끊어 사바 세계에서 결코 고통을 당하지 않는 능력이다.
이러한 6가지 신통력 중 누진통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는 다른 종교적 수행을 통해서도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따라서 누진통을 통과한 다음의 신통력과 그렇지 못한 신통력에는 차이가 있다.
번뇌를 끊지 못한 자의 신통력은 잘못 쓰여 혹세무민하는 삿된 길을 조장할 수 있다. 그러한 폐해를 막고자 부처님은 신통력의 사용을 자제시킬 정도였다.
목건련은 육신통을 적절하게 발휘하여 포교와 부처님 교단 유지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사실 오늘날도 신통력이 미치는 불가사의한 힘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는 마당에, 아주 먼 그 옛날 인지가 발달되지 못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신령스러운 능력이 끼치는 사회적 파장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건련은 오직 중생을 교화하는데만 신통력을 쓸 뿐 삿된 목적으로 악용한 적이 없었다.
우란분절과 목건련
목건련은 효성 또한 지극했다. 중국에서 찬술된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그는 어머니를 아귀도(餓鬼道)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효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
목건련의 어머니는 출가 사문을 비방하며, 미신을 믿어 축생을 함부로 죽여 귀신에게 바치고, 바른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효심이 지극한 목건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신통력으로 천상계와 인간계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어머니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옥계를 돌아보자, 느닷없이 거기서 아귀도의 굴레에 묶여 고통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귀란 배는 남산만큼 큰데 입은 바늘구멍만큼 좁아 배가 고파도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아우성치는 중생을 말한다. 그는 생각다 못해 음식을 장만해서 지옥계로 내려가 어머니를 먹이려 했으나, 순간 갑자기 아귀도의 고통을 받는 어머니 입에서 불길이 솟아나와 준비해 간 음식을 깡그리 태워 버렸다.
목건련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그러한 사태에 직면해서 별 도리가 없음을 직감하고 부처님께 도움을 청한다.
"네 어머니의 죄가 너무나 커서 너의 신통력으로도 구제할 방도가 없다.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출가 사문들이 하안거를 마치고 자유스러운 수행에 들어가는 음력 보름 7월 15일에 시방의 여러 부처님과 사문들에게 진수성찬과 그 해에 농사 지은 신선한 햇과일들로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인해 일곱 생 동안의 선친과 현세의 부모들이 모두 재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들은 장수와 복을 누리게 된다."
이 말씀을 듣고 그는 스 님들께 공양을 올려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해내게 되었다.
이 '우란분경'의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우리 사찰에서는 돌아가신 선조들을 천도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가 열리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49재를 올리며 사자(死者)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는 천도재(薦度齋)를 우란분재라 한다.
우란분재는 다른 말로 백중(百衆) 또는 백종(百鐘), 중원(中元)이라 불리면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 명절로 자리잡아 왔었다. 백중 혹은 백종이라는 말은 100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께 공양을 올려 저 세상으로 간 부모님들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법회에서 나온 것이다.(우란분(盂蘭盆)은 음식을 담아 공양하는 쟁반(盆)이라는 뜻도 있다.)
이러한 우란분재 행사가 중국에서 찬술된 '우란분경'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목건련의 지극한 효성이 그 만큼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사리불과의 우정
목건련 역시 사리불처럼 부처님 대신 설법할 정도로 부처님의 신뢰를 받았다.
장아함 제1 '대본경'에서는 말한다.
"나에게 두 제자가 있는데, 첫째는 사리불이요, 둘째는 목건련으로서 모두 제자 중에 제일이다."
또한 목건련은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을 배반한 데바닷타의 무리 500명을 부처님 품안으로 귀의시키는 등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 데 매진했다. 심지어 그들이 한때 포교의 길을 떠나 1년 이상 정도 걸리는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갔다고 했으니, 둘 사이의 우정도 우정이려니와 진리를 전하려는 그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목건련은 불행하게도 포교의 길에 나서다 난폭한 이교도에게 매를 맞아 순교한다. 신통력이 으뜸인 그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첫 번째 그런 위기에 접하여 신통력으로 죽음을 모면했지만,
두 번째는 이것이 자신의 업인 줄 알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목건련이 이렇게 비명에 저 세상으로 떠나자 그와 절친했던 사리불도 "목건련과 함께 입멸을 맞고 싶다."고 부처님께 간청할 정도로 애절해 하다가 이승을 떠난다.
석가모니는 이렇듯 아끼는 두 제자를 보내고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한다.
"비구들이여, 사리불과 목건련이 세상을 뜬 후 이 모임이 텅빈 것 같구나. 그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쓸쓸하기 그지없구나."
그러나 부처님은 그러한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간 이들 두 제자를 예를 들어 자기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 수행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
"커다란 나무가 있어 때로는 그 가지 몇 개가 먼저 시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두 사람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되,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되,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상응부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