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평은 하늘에서 진한 땅 표암봉에 내려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기원전 117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69년 , 6촌장이 알천의 둑 위에 모여 나라를 세울 것을 논하였다.
마침 남쪽 양산 밑의 나정에서 혁거세 거서간을 발견하여 왕으로 삼기로 하고
함께 양육하여 기원전 57년에 왕위에 추대하고
신라이씨(李氏) 성을 사성(賜姓)받았다고 한다.
이알평은 기원전 117년이라 전한다.
혁거세 거서간 때에 개국 좌명공신에 녹훈되고 각간, 아찬 등을 역임하였으며
군무를 주관하였다고 전한다.
알평은 화백회의 의장으로 향년 200세의 향수(享壽)를 누렸다고 한다.
사후 법흥왕23년(서기 535년)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이라 하였고,
태종 무열왕 3년(서기 656년) 은열왕에 추봉 되었다
배위는 태화공주 기씨(泰華公主 箕氏) 마한 태조(太祖) 기준(箕準)의 딸이다
아들 이유(李侑)이고 손자는 이타(李它)이다
부인 박씨(夫人 朴氏)는 혁거세의 딸로서 개국공신 이알평(李謁平)의 후처로 하가하였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찬한 익재 이제현묘지(墓誌)에
신라말 진골(眞骨) 출신으로 소판(蘇判) 관직에 오른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계보가 밝혀짐으로써
경주이씨의 중시조는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