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시 제3강: 묘사와 진술
석가모니의 '행복한 고뇌'
나무를 소재로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무는 영어로 tree, 한문으로 木이다. 우리의 한글은 나와 무의 음운합성으로 되어 있다. 백지에 '나무'라 쓴다. 나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뭘까? 아무런 형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잠시 뒤, 각자가 체험하거나 경험한 나무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낸 그 어떤 사물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시에서 적용이 된다면 추상적인 이미지 즉 추상명사가 아닐 수 없다.
시의 맥락은 묘사와 진술로 되어 있다고, 구성의 원리를 말하지만 아무도 구체적인 묘사의 개념을 지적하지 않고 있어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물과 행위에 있어서, 묘사는 필수적인 관념의 이미지화가 바로 시의 함축을 일으키는 시발점이면서 개념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그 뜻이 선명하게 타자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통로라 하겠다.
이러한 묘사의 관점에서 '나무'라는 단어의 의미를 형상화해 보도록 하겠다. 나무에 이름을 붙이면 보다 선명한 이미지가 돌출된다. 나이 든 나무, 어린나무, 꽃이 핀 나무, 고목, 묘목, 죽은 나무, 잎이 진 나무, 그늘을 주는 나무, 밤에 빛나는 나무, 물가 나무, 이렇게 수많은 나무라는 이미지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여기에 조금 더 선을 그어 형체를 알아보게 하자. 나무에 이름을 붙이면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깨죽 나무, 참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산딸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은행나무, 이렇게 명명되면서 이미지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짐작을 할 수 없는 오점이 발생한다. 여기에 시인의 마음(시적 상상)이 가미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정상인이면 누구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예술이란 곳에 적용되는 사고의 소산이다. 눈을 감아도 시적 상상은 계속 일어나고, 또 일으킬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 보이지 않는 바람과 햇빛을 작중 속 화자의 눈빛과 감성을 보태보면 어떻게 독자에게 이미지가 전달되는지 살펴보자. 눈가에 어린 사과나무가 말을 건다. 바람이 손을 내밀면 감나무는 말없이 제 열매를 내어준다. 미운 바람에 고개를 젓는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놀라서 움츠린다. 소나기 마냥 내리쬐는 햇살에도 밤나무는 그늘을 베고 잠이 든다. 익어가는 산딸나무를 바라보는 소년의 입가에 침이 흐른다.
이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그 사물의 행위를 시적 메타포, 즉 비유나 의인화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나무'라는 의미를 창출해 내고, 그것을 독자에게 선명하게 '나무'의 살아있는 생각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
시적 이미지는 묘사를 기본으로 하지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흑과 백의 원리로 서로 간의 벽을 두어서는 의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보인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생각과 가시화, 기호화된 세상의 낮과 밤이 하루라는 나의 관념 속에서 각자의 결핍과 욕망과 희열을 잘 버무릴 수 있도록 무의식의 세계, 즉 자는 동안에도 불침번을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늘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 꾸준히 관찰하면서, 왜? 라는 의문점을 스스로 불러내고,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
나무는 나무이기 전에 싹이고, 가지였으며, 잎의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나무의 아들이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나무는 그늘을 주지만 빛을 받아 열매로 환원하는 보물이기도 하다. 연인의 놀이터이면서 먼 미래의 약속 장소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제 몸을 잘라 인간들의 가구가 되기도 하지만 날을 세워 파괴하는 포식자가 되기도 한다.
나무가 갖은 의미론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습도 보아야 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면에는 커갈수록 더 깊은 곳의 어둠을 안고, 헤매는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의 세계를 살아가는 뿌리의 희로애락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을 나무와 비교하는 것은 시적 의인화 기법이지만 유독 나무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생과 사가 나무고, 잎이고, 가지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나무에 대한 의미는 이렇다 하고 다 말할 수 없음은 ‘왜’라고 반문하는 시인이 있어서 ‘시의 정의’와 함께 ‘무한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일이 시인이 느끼는 '희로애락'이라 하겠다. 자신 속에 있는 시심으로 시신詩神인 자아 정체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석가모니의 '행복한 고뇌'가 보인다.
(심천深泉 김은수 시인)
김은수 시인 약력:
경북 의성군 출생.『시사문단』시 부문 등단(2003).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화선양위원회 위원.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경상북도문인협회 회원,
은점시문학회 회장. 반년간『은점시학당』주간, 발행인.
시집:『모래꽃의 꿈』『하늘 연못』『염화미소』『발바닥 지도』
시선집:『무화과나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