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陟州東海碑 및 竹西樓 서예 답사 ☞
<2007.01.12 (금) 경기대 미술 아카데미 한문 서예반>
지난 월요일 방학 중 학교 서실에 수련 차 모여 의논한 강릉 경포대 나들이가 확정되어 오늘이 출발일이다. 시간을 맞추어 학교로 나가니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주차장에 월요일 이외에 출입하면 주차료를 물어야 한다는 학교 관계자의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
이윽고 檀軒과 栢巖이 나오고 如泉 회장과 靑河 선생이 나타난다.
회원들의 나들이 초청에 기꺼이 동참하여 주는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又峰 박사와 草民 埠林이 합류하고 마지막으로 기다리던 德庵이 와서 여니 때와 같이 우봉 박사와 초민의 승용차 2대에 정원을 채우고 오후로 접어드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려간다. 벽산 선생은 서울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강릉까지 직행을 하기로 했다.
평창(속사) 휴게소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내처 달려 우봉 박사 후배가 한 시간 전에 긴급히 주선한 경포대 입구에 격식을 차릴 마음도 먹지 않고 아무렇게나 지어진 한옥 기와지붕 밑으로 찾아들었다.
한참 후에 도착한 벽산 선생과 함께 주문진 횟집으로 가서 서울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양식 어종 보다 동해 바다에서 한창 잘 잡히는 복어 회를 시켰는데 서비스로 먼저 나온 양식 생선회로 참 이슬 소주를 숨 가쁘게 먹어 대다가 정녕 특별 주문한 복어 회를 남기고 말았다.
모두들 흡족하게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돌아가면서 휘호를 쓰는데 취기에 못 이긴 나는 지금까지 학습한 安勤來碑 楷書 대신에 해서도 아니고 行書도 아닌 제멋대로 필법으로 "人生無常“이라는 글귀를 휘두르고 나니 보는 이가 민망할 따름이었다. 술김이라도 서도를 잃어버린 처신에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 새해 첫 서예 답사 여행의 하루 일정을 끝마쳤다.
丹憲의 방안을 진동하는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깨어서 새벽바람을 마시고 어제 눈여겨보아둔 서문장 입구 꿕저구탕 집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어린 시절 한 겨울 자보 개울에서 친구들과 시린 손을 불면서 잡아내 대파와 고추장을 넣어 찌개를 끓여 먹던 추억이 깃들어 있던 뿌리리에 시래기와 각종 양념을 넣고 끓인 꾹저구탕은 폭주로 뒤틀린 속을 웬만큼 달래 주었다. 술이 덜 깨어난 단헌을 대신해서 초민의 차를 운전하여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삼척 이십 천변의 竹西樓를 찾았다.
< 죽서루 현판 >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죽서루는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창건하였으며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 효손이 고쳐 세워 900년이라는 세월을 면면히 이어 내려온 관동팔경 중 제1경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오십천의 깊고 푸른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진 건물 안에는 이이 율곡 선생을 비롯한 명사들과 무수한 시인 묵객들이 담론과 시화를 즐기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현종 3년 (1662)에 허 목 선생이 쓴 “第一溪亭”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쓴 “關東第一樓”그리고 헌종 3년에 이 규현이 쓴 “海仙遊戱之所”라는 현판이 걸려있어 서예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머물게 한다.
죽서루 구경을 마치고 가깝게 자리한 강원도 유형문화재 33호 “陟州東海碑 ”를 찾았다. 이 비는 조선 현종 2년 (1661) 삼척부사 허 목이 세운 것으로 그 당시 삼척은 해파가 심하여 조수가 읍내에까지 올라오고 홍수 때는 오십천이 범람하여 백성들은 인명과 재산을 잃어버리는 큰 재앙에 시달렸다. 백성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긴 허 미수 부사는 東海頌을 지어 그 글을 스스로 창안한 독특한 篆書體로 汀羅津 앞의 萬里島에 세웠는데 이것이 척주동해 비다. 이 비를 세운 후 신기하게도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바닷물이 넘치는 일은 없었다 한다. 그 후 비가 파손되어 조수가 다시 일자 숙종 36년 (1710) 이를 모사하여 현재의 정상리 유항산에 다시 세워 조수를 막았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여 조수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졌다 하여 退潮碑라고도 하는 이 비문을 보고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허 목 선생의 위민 정신에 감동하면서 전서체에서 동방 제1의 필치라는 선생의 비문 글씨를 다시 한번 눈여겨보았다.
< 척주동해 비 안내 비문 >
< 척주동해비 >
나의 초행길을 선도에서 속도를 제한하며 달리는 우봉 박사의 뒤를 따라 삼척에서 정선으로 가는 해발 780m의 백복령 휴게소 헐렁한 집에서 걸걸한 경상도 아줌마의 향토 음식과 공예품 예찬을 들으며 솔잎차를 마시고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임계 쪽을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하여 어우러진다는 남한강 뗏목 천리 물길의 시발점인 정선 아우라지에 잠시 멈추어 정선아리랑 가사에 배태된 애환과 사랑을 여 송장과 처녀상을 통하여 음미하며,
정선 시내로 들어와 담헌이 쏜다고 약속한 시장 골목 2층 좁은 방에서 토속 막걸리에 메밀 전병 도토리묵에 콧등 치기 국수 곤드레 나물밥과 열목어 튀김 등 가지가지 별미를 맛보고 귀경 시간이 지연되어 모처럼 약속한 일심회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송구한 마음을 전하고 이틀간 세워둔 주차료 걱정은 주차관리인이 퇴근하고 없어 깨끗이 날려 버리고 9시가 넘은 시간에 귀가를 했다.
2007. 1. 14 檀皐 가
[출처] [ 04 - 07 - 02 ] 척주동해비 죽서루 답사|작성자 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