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분의 기적
가을이 창 앞에 와 있었다. 오래 기억될 만한 좀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 보통 운전하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고 기차 여행을 계획하던 중이라서 여러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벼르던 중 한국에서 문학평론가 교수님들을 초빙하여 동행하는 문학기행이라는 소식을 늦게야 들었다. 여행 3일을 앞두고 부랴부랴 뉴욕행 비행기 표를 사고 짐을 꾸렸다. 43명의 문학기행단이 뉴욕에서 매사추세츠를 향해 떠났다. 아직 이른 단풍이었지만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글자 그대로 문학기행이었다. 유명한 미국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갔다. Henly David Thoreau가 <월든>을 집필한 오두막을 들여다보면서 울렁거리는 가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정리하느라 한참을 서성거렸다. 오두막이라면 내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지붕이 늘어져 있고 흙 담벼락에 봉창이 있는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는 흙집이다. 그러나 미국식 오두막은 우리나라의 판잣집 같았다. 너무 오래전에 한국을 떠났기에 지금도 그런 판잣집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마른오징어나 작은 병에 담긴 소주나 껌 따위를 파는 판자로 만든 판잣집 말이다. 이것이 바로 1845년 Thoreau가 손수 지은 다섯 평짜리 오두막이다. 이 공간에서 2년 2개월을 살면서 그 기록을 남긴 작품이 바로 <월든>이란다. 환기통이라 할 만한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꼭 한 사람이 기거할 만한 넓이였다. 이상한 애착이 가는 답답한 공간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 있었다. Thoreau의 정갈한 서정성에 대한 경애심이었다. 무욕한 정신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그의 순수성이 내 심금을 건드려 주었다. 이 월든의 숲속 오두막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썼다니 자연 문학의 본향, 즉 그 글의 산실 앞이라는 감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월든> 중에 쓰인 말이다. 창세기의 호수처럼 조용하고 먼 바람 소리 오가는 Walden 호수 변을 거닐면서 Thorau는 때 묻은 인간사를 고민했겠지. 나는 오싹하기까지 한 찔림을 당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고독하고 외로웠을 작가의 심중을 헤아리며 한참 맥을 놓고 있었다. 다음으로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uthone)의 고향 셀럼으로 향했다. 인간의 죄와 위선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는 그의 작품 의식을 상기하는 기회였다. 마녀재판에서 억울하게 사라져가야 했던 영혼들의 사연 때문에 순간이나마 가슴 타는 분노를 의식했던 소설 ‘주홍글씨’를 읽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야만성에 절망하면서 많은 것을 회의했던 풋풋한 시절의 감회는 지금도 나의 어디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Emily Dickinson이 낳고 자란 저택에도 들렸다. 누리고 산 당대의 흔적이 역력했다. 명예와 권세와 부를 자랑하던 아버지 그늘에서 일생을 미혼으로 살면서 자기를 감추고 살았던 에밀리에게 짙은 연민을 느꼈다. 내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한계까지 전해 주고 싶은 온기였을까? 아버지의 친구를 흠모했다니. 그녀의 시는 어디에서 잉태되었을까. 디킨슨은 생시에 익명으로 7편의 시를 출판했을 뿐이지만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발견되어 주목받게 되었다 한다. 에밀리의 시는 조용한 열정으로 불타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기타 색다른 구도의 그림 갤러리 등 알찬 여행이었다. 애초에 비행기표를 rmsgdmf 때부터 여행 마지막 날 메사츄세스 Stockbridge에서 뉴욕으로 들어서면서 라과디아 공항으로 직행하여 시카고행 밤 비행기를 타는 스케줄로 짰었다. 버스 운행에 따른 변수를 감안하여 밤 10시 최종 편 비행기 표였다. 10시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오후 8~9시쯤에는 비행장에 들어서야 하는 게 상례다. 매사추세츠에서 출발할 때 가이드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짐받은 바 있다. 허나 버스는 안타까운 내 가슴은 아랑곳없이 거북이처럼 굼뜨기가 그지없었다. 나는 애가 탔지만 내색하면 요란하게 보일 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하여 입을 꼭 다물고 벙어리냉가슴을 앓듯 했다. 초조함을 감추느라 초주검이 되어가면서 태연자약하려 안간힘을 썼다. 시간은 촉박한데 뉴욕은 아직 요원하고 해가 진 지는 이미 오래 밖은 깜깜 절벽이다. 거기에 더하여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주륵주륵 나리고 있었다. 중간에 한번 가이드에게 다짐하였을 때 가능할 것 같다더니 급기야 뉴욕을 앞에 두고 가이드는 무책임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내렸다. 기막힌 실망감이 머리를 쳤다. 가이드와 냉정한 눈망울이 교차하는 그때의 기분은 손잡고 가던 친구가 최악의 위험지에서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것 같은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비행기가 연발이라도 하는 행운을 꿈꾸며 계속 긴장을 놓지 않았으나 그 흔한 연발 소식은 카톡에 뜨지 않았다. 10시 발 비행기면 적어도 9시 25분에 비행기 탑승을 해야 하는데 9시가 거의 되어가는 시각에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 어느 길가에 내려주며 택시를 타란다. 공항과의 거리가 요원하니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의견이 태반이었다. 낮이라도 분간할 수 없는 뉴욕의 거리를 하물며 비가 나리는 칠흑 같은 밤이었으니 기가 막혔다. 우선 앞에 선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 왈, 그 지점에서 조금이나마 빨리 가려면 비싼 톨비를 감당하고라도 톨게이트를 지나야 한단다. 그래도 불가능할 확률이 80%란다. 허나 포기하기에는 아직 20%의 가능성이 있다. 비행기를 놓치면 호텔을 찾아 헤매야 하고 이 비행기 표는 환불이 불가하며 다음날의 새로운 표는 두 배의 가격으로 구입해야 하고 더하여 다음 날 시카고 스케줄은 엉망이 된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것이 마지막 해답이었다. 빗속을 뚫고 톨게이트를 거쳐서 터미널을 외치며 공항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뛰었다. 휴대품 검사대를 통과하는데 코트를 벗어 박스에 넣지도 못하고 던진 채 통과시켰다, 게이트 D nine을 향하여 생명을 걸었다. 나에게 그토록 대단한 돌진력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극에 다다르면 다섯 살짜리가 엎어진 차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마력에 대한 연구결과가 사실인 듯싶었다. 탑승 입구에 도착하니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개찰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무료한 표정으로 서 있던 개찰원이 숨을 몰아쉬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나를 측은하다는 듯 멀거니 바라보았다. 시간은 이미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무모한 노력이 가소로웠다. 아예 차분히 포기하고 잔류 일행들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당찮은 노력을 해가면서 일행들까지 번거롭게 했었구나. 온갖 것이 후회스럽고 말도 안 되는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여러 방법 중 내가 택한 상황판단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자괴감뿐이었다.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가본다는 결심이 억지스러웠다는 생각까지 기승을 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한 없이 최선을 다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고 나를 달래면서 한참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물어지듯 멀거니 서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달려와서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설 수는 없었다. 숨을 돌리고 나서이다. 그때의 나의 얼굴은 넋 잃은 칠푼이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모자란 척 비굴하다 할 만큼 기죽은 소리로 사연을 설명하면서 나를 좀 도와 줄 수 없겠느냐 물었더니 개찰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35분 연발이라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으니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곳에 기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버스에서 내리면서까지 비행기 연발을 고대하며 셀 폰을 뒤졌을 때도, 택시 안에서 점검했을 때도 엄혹하게 정시 발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게이트를 향해 달리는 순간에 35분의 기적이 일어난 모양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틴 질기고 질긴 나의 미련한 집념이 꽃을 피웠구나. 최후까지 실망하지 않았음을 칭찬하시는 어떤 미지의 힘이 나를 힘껏 안아주었다. 오호라, 행운이야. 35분의 기적이여! 분에 넘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