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인생 바디프로필 사진 한 장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인생 사진으로 바디프로필 하나를 남기는 게 그들의 바디챌린지가 되었다. 미션 성공을 위해 집 근처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한 장의 사진틀 속에는 우리들의 희로애락이 함께 거주한다. 반세기 전 ‘이산가족 찾기’는 한반도를 울음바다의 쓰나미로 만들었다.
얼굴도 모른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들이 들고나온 사진 한 장. 결혼과 동시에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을 찾고자 아내가 들고나온 흑백의 결혼사진이 눈에 선하다.
이들의 사진 한 장 속 사연에는 가슴을 움켜쥐고 고뇌와 슬픔과 기쁨의 눈물로 짜낸 사골육수처럼 찐하다.
연쇄살인범의 미제사건이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무렵 목격자의 증언으로 그려진 몽타주 사진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쾌거도 있다.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그곳으로 떠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소록도 나병환자의 사진을 보고 20대 아가씨가 평생을 바쳐 그들에게 헌신하는 간호사도 있다.
어느 병원에 근무할 때다. 사진 기술의 발전은 의료분야 진단에 드론과 같다. 어떤 환자가 지속적인 기침과 고열로 감기라 생각하고 내원했다. 내과 의사는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었는데 호흡이 불규칙하여 흉부 X-ray를 찍자고 한다.
사진상에 명암이 분명하지 않아 폐 C-T를 찍게 되었다. 혹시 ‘암이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감이 휘몰아쳤다. 원통 안에서 들리는 기계소음은 지옥문 앞에서 부르는 저승사자의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모니터 사진을 오랫동안 쳐다보던 의사의 선고가 내려진다.
“다행히 만성기관지염입니다.”
결혼 5년 차 부부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산부인과에 자주 들른다. 한번은 들뜬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한다.
의사는 초음파 프로브에 젤을 흠뻑 바른다. 그는 부인의 복부 위를 보물찾기하듯 원을 그리며 살핀다. 아기 주머니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의사는 초음파 모니터를 보면서 웅크린 태아의 인생 첫 사진을 찍는다.
삼신할매와 같은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다.
“축하합니다. 드디어 임신 4주입니다.”
병원 직원들도 부부에게 박수갈채로 기뻐했다. 그들은 어렵게 임신한 아기 초음파 사진을 소중히 간직할 것 같다.
내가 소속된 의료단체와 수협이 봉사에 참여했다. 마을회관에서 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무료 진료와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것이다.
수협 직원들은 어르신께 인생의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을 정성 들여 찍고 있다. 어떤 할머니는 최고의 옷으로 단장하고 논두렁 같은 가르마로 나타나셨다.
한평생 살아온 삶을 축약이라도 하듯 인자한 모습으로 카메라 렌즈를 주시한다. 인생의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을 찍는 할머니 얼굴은 거룩하고 편안해 보였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의 발달은 일명 ‘뽀샵’으로 원판보다 더 좋게 한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가 보편화되어 어떤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찍을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추억의 아날로그 흑백사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일 년 동안 걸음마로 다져진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찍혀버렸다. 전라의 바디프로필 흑백사진 한 장이 벽에 걸려있다. 이차 성징이 발달 되면서 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검은색 볼펜을 불끈 쥐고 벽을 응시한다. 남성의 중요 부위를 망설임 없이 모자이크 처리했다.
첫댓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담은 사진의 의미,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찍힌 순간, 낡은 흑백 사진 한장이
희망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 웃음을 갖고 있으니
사진은 자신의 역사이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사진 한 장의 여러 의미를 담아 봤습니다.
줌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