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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서 인과의 이치를 통달한 도인으로 주저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양산 김중묵 법사님이십니다. 젊은시절, 정산종사 앞에서 인고의 이치를 부정하다가 혼이 났지요. "어느 정도 수양이 되어야 인과의 이치를 온전하게 깨닫습니까? "입정이 삼개월은 쉬지 않고 되어야 한다." 그 말씀에 정신이 번쩍 나서 정진을 하셨다는 법사님이십니다.
양산 김중묵 종사가 열반하기 나흘 전, 양산 종사님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도로 전무출신을 올곧게 해왔던 진안교당 심창덕 교무님이 교도들과 함께 더덕무침을 해놓고 원로원에 간다고 연락을 드렸답니다. 원로원 교무는 이 사실을 알리려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법사님은 늘 그러셨듯이 미륵산을 가시려고 행장을 차리고 계셨습니다. "창덕 교무가 교도님들과 함께 법사님께 인사올리러 온답니다. 미륵산에는 창덕 교무 보고 나서 가시는 게 어떨가요?" "그래? 그럼 조금 기다리지." 한 시간여 뒤, 심창덕 교무와 교도들이 원로원을 찾아 2층 응접실에서 양산 법사님을 뵈었습니다.
양산 법사님은 심 교무를 모시고 온 김희진 교무에게 "김 교무, 내 방에 가면 창덕 교무 주려고 봉투에 넣어둔 것 있거든. 그것 가져올랑가." 희진 교무는 양산 법사님 방에 가서 노란 봉투에 "창덕 스님"이라고 쓰여있는 봉투를 가져왔습니다. "이것 창덕 교무 주려고 준비해둔 것이니까 갖고가." 봉투는 아무도 못 열어보게 봉해두었습니다.
심창덕 교무는 원로원에 오면서 심중에 법사님을 모시고 강습을 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청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도들에게 강습을 한번 해주시죠." "뭘. 그럴 것까지 있겠어?" "이제 자주 기회를 가질 수 있겠어요. 저한테는 마지막이다 생각하시고 한번만 기회를 주시지요." "됐어. 조금 지나면 알게 돼." 교도님들과 함께 몇번 청을 더 드렸지만, 법사님은 한사코 사양하시면서 조금 지나면 알게 된다고만 하셨습니다.
1층까지 내려오셔서 배웅하시는 법사님께 인사를 올리고 진안교당으로 돌아오는 차안, 심창덕 교무님은 교당에서 열어볼까 생각했던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속에는 스카치테이프, 볼펜, 휴대용 경옥고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물건이 들어있기에 다른 사람도 못보게 봉해놓으셨나고 의문심이 났던 심창덕 교무님은 봉투 속의 물건을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양산 법사님은 당신 방에서 당신 육성으로 정전과 대종경을 녹음한 테이프를 틀어 놓고 좌탈입망(坐脫入亡)을 하셨습니다. 방안에 남아있는 수용품이라고는 녹음기와 테이프, 입고 계신 옷가지 정도였습니다. 열반 소식을 들은 심창덕 교무는 "곧 알게 된다."는 말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양산 종사님은 말년에 늘 하신 말씀이 "노모님이 돌아가시고 49재를 지내고 나면 가실 것이다."고 하셨지요. 그 때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열반하신 노모님 종재를 마치고 당신의 예금통장 등 모든 수용품을 정리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후진의 마음에는 해탈도인이신 양산 법사님의 모습이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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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사해탈하신 법사님의 삶이 감동을 주네요.. 살면서 중요하지않은 것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반성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