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아더 때문이었다 - 순진했던 미군정
https://www.khan.co.kr/article/201804011807001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① 맥아더 때문이었다···순진했던 미군정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우익은미군정의 딜레마였고중도 리더십을 원한 하지 사령관은30대 초반의 버치 중위에게좌우합작위원회 조정을 맡겼다 수많은 한국 정치인을 만난 버치는상부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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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 러브콜과 여운형의 거부
https://www.khan.co.kr/article/201804082215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②미 러브콜과 여운형의 거부
여운형이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미군정은 왜 그를 붙잡으려 했고 일부 요원들은 존경을 표했을까 하나는 그의 대중적 영향력이었다 38선 이남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여운형이 필요했다 미
3. '여운형 친일행적을 찾아라'
https://www.khan.co.kr/article/201804152158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③“여운형 친일행적 찾아라”
정치력 약화·타격 입히기 위해 친일행적 찾기 돌입한 미군정 여운형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그가 당수로 있었던 조선인민당에서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에게 탈당하도록 했던 미
4. 여운형 친일행위 조사 최종보고서
https://www.khan.co.kr/article/201804222201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④여운형 친일행위 조사 최종보고서
여운형의 친일행위에 대한 1947년 1월11일자 최종 조사보고서는 “여운형이 비밀 요원으로서 일본 정부를 위해 봉사했거나 다른 외국 정부의 밀사로서 활동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문장으로 시
5. 이승만과 그 친구들의 타락
https://www.khan.co.kr/article/201804292125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⑤이승만과 그 친구들의 타락
버치 중위가 한국에서 떠나온 지 4년이 지난 1952년 한 한국인이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의 이민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전쟁이 진행 중인 한국에서 한국인이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한다는 것은
6. 귀국을 막아라
https://www.khan.co.kr/article/201805062152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⑥귀국을 막아라
1947년 3월5일자 문서의 제목은 ‘이승만’이다. ‘이승만이 한국의 대통령직을 받아들였다. 서투른 방식의 노력이 이승만에 의해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그는 군정과 라이벌의 포지션으로 스스
7. 이승만과 김구
https://www.khan.co.kr/article/201805132143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⑦이승만과 김구
이승만에 대한 평가에서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문구가 있다. ‘이승만은 미국보다 더 앞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했던 인물이다.’ 이승만의 가까운 친구로서 그의 입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
8. 강용흘을 아시나요
https://www.khan.co.kr/article/201805202154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⑧강용흘을 아시나요
2004년 신동아에는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이라는 논픽션 공모 우수작이 실렸다. 1898년 함경남도 함원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강용흘이라
9. 줄어든 미군정의 선택지
https://www.khan.co.kr/article/201805272048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⑨줄어든 미군정의 선택지
미군정, 이승만·김구 잇단 대립 속보수세력 중 ‘장덕수’ 합리적 판단 장, 현역 경찰 가담 암살자에 희생배후엔 이승만·김구 연루 지목 진상조사 중 미군정 지시로 중단 1947년 12월2일 미군정
10. 김구의 권위를 떨어뜨려라
https://www.khan.co.kr/article/201806032151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⑩김구의 권위를 떨어뜨려라
‘단독정부 총선거’ 6개월 앞둔 상황사건 이후 ‘누가 이득일까’ 관심 속경쟁관계 있던 이승만도 의심 받아 ‘남한만의 선거에 불참’ 선언 전에이미 ‘김구 기소 가능성’ 언급미군정 요청
11. 서로 이용한 미군정, 경찰
https://www.khan.co.kr/article/201806102132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⑪서로 이용한 미군정·경찰
미군정에 뜨거운 감자는 이승만만이 아니었다. 경찰 역시 그러한 존재였다. 1946년 가을 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미군정은 이를 ‘추수폭동’이라고 불렀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미군정의
12. '한민당 코트'를 아시나요
13. 무너지는 좌우의 균형
https://www.khan.co.kr/article/201806242153005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⑬무너지는 좌·우의 균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생국가들은 예외없이 독재를 경험했다. 이는 결코 그들이 원한 체제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힘이 아닌 식민지를 통해 형성된 근대화의 과정으로 인
14. '서북청년단' 문제 일으키자 군정청은 '나치와 kkk 합친 것 같다 보고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012211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⑭‘서북청년단’ 문제 일으키자 군정청은 “나치와 KKK 합친 것 같다”
1946년 ‘이승만의 양아들’니콜스는 첩보부대를 만들고공산주의자 처형을 시작했다청년단과 관계는 ‘불문가지’ 그런데 보고서엔 언급이 없다문서와 실상은 같지 않았다버치도 잘 알고 있었
15. '친일파의 악행을 고발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082133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⑮“친일파의 악행을 고발한다”
1947년 한국독립당으로부터 민주한국독립당이 분리되어 나왔다. 한국독립당은 김구를 지도자로 하는 정당이었지만, 그 안에 있었던 중도 우파 세력들이 분당해 나온 것이다. 이들은 강력한 반탁
16. 우익 정치자금은 어디서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152129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16)우익 정치자금은 어디서
좌익·우익 모두 돈이 필요군정, 좌파는 지원하지 않고우파엔 의원 비서 월급도 제공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정치를 할 수 없다. 해방 직후 미군정하에서나 민주화가 된 이후의 한국 사회나
17. 어떻게 음식을 확보할까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222125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17)어떻게 음식을 확보할까
해방이 되었지만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적 안전은 전혀 담보되지 않았으며, 생활필수품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
18. 미군정 발간 '당신과 한국'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292034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18)미군정 발간 ‘당신과 한국’
한국 역사·관습·생활문화 자료교통·날씨·풍토병·홍수 정보도‘미군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오랜 지배 우려…곱잖은 눈길’한국인의 미군에 대한 감정 등하지 사령관 솔직한 평가 담겨 미군
19. 1947년 '복권' 최초 발행
https://www.khan.co.kr/article/201808052054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19)1947년 ‘복권’ 최초 발행
해방 후 팍팍한 삶 속에서도 기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서윤복 선수가 국제마라톤대회인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처
20. 김두한, 장군의아들인가 - 테러리스트인가
https://www.khan.co.kr/article/201808122131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0)김두한, 장군의 아들인가…테러리스트인가
버치가 남긴 문서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김두한이다. 한국의 장년 세대들에게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인물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는 긴또깡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면
21. 여운형의 죽음과 친일 경찰
https://www.khan.co.kr/article/201808192142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1)여운형의 죽음과 친일경찰
경찰행정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김두한이 언급된 ‘경찰과 여운형’이라는 문서는 여운형이 암살되고 이틀 후 작성되었다.(버치문서 박스 1) 여기에는 그동안 여운형의
22. 해방 직후 최초 헌법 초안
https://www.khan.co.kr/article/201808262052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2)해방 직후 최초 헌법 초안
잘 알려져 있듯 미국과 소련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만나 한국문제에 대해 합의했다. 조선인들로 하여금 ‘임시조선민주정부’(임시조선정부)를 조직하도록 하고, 이 조직을 원조하기 위해
23. '버치와 한국민주당의 갈등'이 내각책임제 실패 불렀을까
https://www.khan.co.kr/article/201809022123005
24. '우리 목적에 가장 근접한 리더' - 버치, 김규식을 가장 많이 접촉
https://www.khan.co.kr/article/201809091521001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4)“우리 목적에 가장 근접한 리더”…버치, 김규식을 가장 많이 접촉
여운형이 암살되기 직전 버치는 한국민주당과 연결돼 있던 한 지식인을 만났다. 그 지식인은 김규식과 여운형이 조선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야 하되, 정치조직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25.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809162133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5)“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948년에 들어서 김규식은 남북의 지도자회담을 적극 추진했다. 회담 추진 초기에 김구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 좌우합작위원회에 참여했던 정치적 신념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일부 학자
26. 버치의 통치과정 평가
https://www.khan.co.kr/article/201809302137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6)버치의 통치과정 평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인가? 미군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리에서 하지는 미군정이 시작부터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기에는 미군의 수가 모
27. 한국 정치 '흑역사'의 기원
https://www.khan.co.kr/article/201810072142005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27)한국 정치 ‘흑역사’의 기원
하지와 버치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번번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순조롭게 진행되지